(feat. 따릉이와 함께라면)
시작은 '따릉이'에서부터였다.
하루종일 집에서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저녁식사 이후 '산책'이 정말 중요한 일과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무리 집순이라 하더라도, 하루종일 집안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가, 저녁식사 이후에 선선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아! 나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갈 때는 음료수도 챙기고, 나가는 길에 음식물쓰레기도 버릴 요량으로 봉지와 카드도 챙기고, 나름 하루 중 제일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선다. 가장 가까운 산책로는 롯데캐슬 주변의 뒷산으로 가기도 하고, 아니면 맞은편 아파트 단지를 크게 돌면서 백다방의 요거트스무디를 사 먹기도 하고, 만약 그것도 귀찮은 날에는 집에서 가까운 신대방 쪽으로 쓱 걸어서 마트에 들러 간단한 식재료를 사 오기도 하면서 저녁 산책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저녁 루틴이었다.
그러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처음으로 '따릉이'를 타게 되었다. 이전에도 '따릉이'가 있는 건 알았지만 실제 이용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자전거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매일 책상 앞에 앉아있고, 다른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은 나에게 (물론 저녁 산책은 이때도 거의 매일 하고 있었다.) 뭐랄까... 다른 무언가를 하나 더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계절은 이제 여름이다. 봄까지도 추위를 타는 나에게 있어 여름은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최애계절인데, 이 찬란한 여름밤에 따릉이를 타고 산책을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스쳤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기만 했지, 나는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많이 게으른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나에게 불씨를 댕긴 것은 바로 나의 오빠였고, 나의 미적거리는 습관을 아는 오빠는 바로 따릉이 6개월 이용권의 결제를 눌러버렸다. 즉 이제 나에게는 따릉이 이용권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이런 기쁨도 잠시, 실은 나는 자전거를 아주 잘 타는 사람이 아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배우기는 했는데, 누군가 나의 이쁜 빨간색 자전거(바구니도 달려 있었다.)를 훔쳐간 뒤로 그렇게 생각보다 자전거를 탈 기회는 많이 오지 않았다. 특히 내 자전거가 없다는 건 남에게 빌려서 이용을 해야 하는데, 굳이 남에게 빌리면서까지 자전거를 탈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따릉이'를 이용하는 지금의 시점의 나에게는 따릉이 연습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두둥!! 그런 나를 위해 오빠가 선택한 곳은 바로 '보라매 공원'이었다.
실제 보라매 공원은 우리 집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서 걸어서는 갈 수 없고, 버스나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 보라매공원까지는 거의 직선 코스이기 때문에 나는 앞만 보면서 달릴 수 있었고, 특히 오빠가 내 앞에서 미리 앞서면서 길을 터주기 때문에 두려움은 반으로 줄이고, 자신감을 두배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나만의 자전거 타기 연습루트가 될 수 있었다.
매일은 아니지만 이제 일주일에 2~3번은 따릉이를 몰고 보라매공원으로 가다 보니 그 길이 나름 익숙해졌고, 그러다 보니 보라매공원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공원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아주 큰 운동장 같은 공터에 아줌마와 할머니들이 예쁜 형광색 단체 티셔츠를 입고 모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실은 그때까지만 해도 난 별로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주 구성진 트로트 음악에 맞춰 단체 체조(운동)를 하고 계시는 분들의 연령도 상당히 높아 보였고, 난시로 인해 눈이 나쁜 나는 저 멀리 맨 앞에 있는 강사님이 보이지조차 않아 그냥 어른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고 계시는군... 하며 슬쩍 이곳을 지나쳐 가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오빠는 지나쳐 가지 않고 조용히 맨 뒤로 가서 할머니 옆에 서더니 갑자기 트로트에 맞춰 엉덩이를 실룩실룩 하기도 하고, 스트레칭 동작도 따라하면서 너무나 즐거워라 하는 것이었다. 아!! 오빠는 트로트도 맘에 들고 여기 계시는 분들과 운동하는 게 좋았던 것이다.
솔직히 난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즐겁지만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고, 트로트가 정말 옛날 (요즘 트로트 아님) 음악이다 보니 아는 노래도 하나 없고, 그냥 뻘쭘했다. 하지만 오빠는 그런 나에게 계속 오라고 손짓을 하며, 같이 하자고 부추기는 것이었다. (아! 마음 약한 나는 이럴 땐 남편을 버리고 갈 수도 없고...) 오빠 옆에 서기는 했는데, 다들 진심을 다해서 운동을 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또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몸치이기는 하지만 나도 오빠와 함께 트로트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이 난다는 것이었다. 맨 앞에 강사님은 잘 보이지 않아, 주변에 잘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계속 따라 했는데, 이게 정말 운동이 되는 건지 땀도 나고, 숨도 헐떡거리고, 그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난 이미 맷돌체조 회원님들과 이 운동을 몸과 마음으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다들 형광색 티셔츠에 '맷돌체조'라는 글자를 자랑스럽게 달고 계시던데, 지나가는 행인으로서 그들의 결속력이 대단해 보였고, 나도 모르게 그들 사이에서 스며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지막 운동이 끝나고 서로 박수를 쳐주며 체조를 마무리하면서 "여기를 또 와야겠구나!"라는 결심이 살짝 생기게 되었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매일 나온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처럼 따릉이 이용권이 있고, 저녁 식사를 먹은 다음에 선선한 바람에 라이딩 산책을 하고픈 날에는 보라매공원을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에게 저녁 루틴이 하나 더 추가되었을 뿐인데, 평범한 일상에 이벤트가 하나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슬쩍 좋아진다. 처음 시작은 따릉이였으나, 끝은 맷돌체조이니 나에게 있어 이런 소박한 하루하루가 소중한 일상인 것을 나는 너무 자랑하고 싶어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