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고 담백한 일곱 번째 이야기
기세 없이 치솟아 오르는 기온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한여름.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하교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앞다투어 교문을 벗어났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딱 15분. 거침없는 뜀박질에 등에 매달린 책가방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왼쪽으로 한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번 더 꺾으면 복도 맨 끝에 위치한 우리 집이 보인다.
“다녀왔습니다!”
신발이 나를 벗어나는 건지 내가 신발을 벗는 건지 헷갈릴 만큼 허겁지겁 집안으로 들어선다. 집으로 오는 동안 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 때문일까. 등에 가방 모양의 인이 새겨졌다. 끈적하고 축축한 느낌에 책가방과 옷을 훌러덩 벗어낸다. 옆에 있던 선풍기 바람에 땀이 차갑게 식어가며 오소소 소름이 돋아난다.
“덥지야. 국수 삶아줄랑께 가서 물 한번 찌끄러브러.”
라디오 볼륨을 높인 뒤 주방으로 향하는 할머니의 말에, 나는 욕실에 들어가 땀을 그리고 한여름의 무더위를 씻어 내린다. 찬물로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카락을 타고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쥐어짜며 선풍기 앞에 자리를 잡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를 바라보다 ’아-’하고 긴 호흡을 내뱉어 본다. 파형을 그리며 우스운 소리가 퍼져나간다.
주방에서는 할머니의 국수 준비가 한창이다. 팔팔 끓는 물에 소면 한 움큼을 던져 넣는다. 뜨거운 열기에 얇은 소면이 순식간에 흐물거린다. 면이 익어가며 하얀 거품이 올라오면 찬물을 한 컵 부어준다. 갑작스러운 찬물 세례에 수그러들었던 거품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올라오면 두 번째 찬물을 붓는다. 4분 정도 지나면 미리 준비해 둔 채반 위에 뜨거운 물과 소면을 냄비채 붓는다. 순식간에 물이 빠져나가고 소면만 남게 되면, 찬물에(가능하다면 얼음도 넣어서) 소면을 옮겨 담아 바락바락 씻어낸다. 조금 귀찮긴 하지만 전분기를 없애고 쫄깃한 면발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이다.
“아나, 먹어라”
작은 소반 위에는 할머니와 내 몫의 두 그릇이 놓여 있다. 그릇 안에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보리차 그리고 소면과 설탕 약간이 보인다. 오늘의 국수는 설탕국수인 모양이다. 그릇에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으며 고운 설탕을 녹여낸다. ‘잘 먹겠습니다!’ 짧게 외치고 양손으로 그릇을 들어 올려 국물을 먼저 삼킨다. 달콤하고 시원한 보리차가 목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푹푹 찌는 날씨에 송골송골 맺히던 땀이 보리차의 찬 기운에 잠시 주춤한다. 몸의 열이 식는 느낌에 뒤늦게 소면을 집어 들어 입안을 채운다. 별다른 양념 없이 설탕만 넣은 국수이기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땐 열무김치를 하나 집어 소면 위에 얹은 뒤 한입에 삼키면 된다. 국수의 단맛과 김치의 짠맛이 어우러져 부족했던 맛이 보완된다. 물론 열무김치뿐만 아니라 배추김치, 파김치와도 잘 어울리기 때문에 모든 김치는 옵션이 된다.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허겁지겁 먹다 보면 젓가락에 걸리는 소면이 없는 순간이 온다. 아쉬운 마음에 애꿎은 젓가락만 휘적일 필요 없다. 설탕국수는 리필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미리 여유 있게 삶아둔 소면에 보리차와 설탕만 있다면 두 번째 그릇도 문제없다. 여유분의 소면까지 해치운 뒤, 조금 남은 보리차물은 그릇을 기울여 한데 그러모아 한숨에 삼킨다. 입안 가득 달달한 설탕물, 라디오 DJ의 익숙한 목소리, 미적지근한 선풍기 바람에 기분 좋은 포만감이 인다. 그대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솔솔 쏟아진다.
설탕과 국수라니…!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설탕국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설탕국수는 전라도 지역에서만 먹는 국수라고 한다. 일반적인 잔치국수, 비빔국수와는 비주얼부터 맛까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호불호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국수와 설탕의 만남이 논란 아닌 논란이 되는 경우가 또 있다. 바로 콩물국수에서 말이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은 여름의 어느 날, 친구들과 휴게실에 모여 중식집에 배달 주문을 했다. 한 친구는 콩물국수를 주문했는데, 하얀 가루가 담긴 작은 비닐봉지가 따라왔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저거 소금이지? “
다른 누군가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설탕이지. “
서로 다른 의견에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콩물국수엔 달달한 설탕이 들어가야 한다는 설탕파와, 감칠맛을 올려주는 소금을 넣어야 한다는 소금파가 나뉘자 때아닌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나 역시 늘 설탕을 넣어 먹어 왔기에 설탕파로 몸이 기울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유독 전국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설탕을 넣어 먹으며, 수도권 지역에서는 소금을 넣어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누구의 말이 정답이라고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났느냐고? 한순간의 논쟁이 무색하게 아주 간단명료하게 종결되었다.
‘먹는 사람 마음대로 먹자”로! 요즘 말마따나 ’ 취존(취향존중)‘도 중요하니까 말이다.
어렸을 적엔 유독 여름에 국수를 자주 먹었던 것 같다. 잘 익은 열무김치를 베이스로 만든 열무김치 국수, 채썬 오이와 쫑쫑 썰어낸 상추, 시큼한 신김치와 간장양념을 넣어 비벼낸 비빔국수, 콩가루를 물에 타서 소면을 말아먹던 콩가루국수까지 종류별로 말이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가스불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시원한 음식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예전만큼 국수를 찾지 않는다. 외식을 할 땐 콩물국수보단 파스타가 익숙해졌으며, 독립을 한 뒤론 소면 양조절이 힘들단 이유로 잘해 먹지 않게 되었다.
특히 설탕국수는 이십 대가 된 이후론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에는 설탕국수보다 자극적인 음식이 넘쳐났으며, 점차 집에서 밥을 먹는 시간도 줄어갔으니 당연한 이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만 되면 설탕국수가 떠오른다. 생수가 아닌 보리차를 끓여 먹던 우리 집만의 특별한 보리차 설탕국수. 나에게 있어 설탕국수는 단순히 식사를 위한 음식이 아닌, 추억을 양념 삼아 먹는 국수가 되었다. 슴슴한 국수에 달달한 추억 한 스푼. 이만한 양념이 또 있을까? 이번 주 토요일 점심은 설탕국수를 만들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