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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Dec 20. 2023

소:담백#봄 02 쑥국에 고추장 한 숟갈

소소하고 담백한 나의 두 번째 독백

Chapter 2. 쑥국에 고추장 한 숟갈


우리 집 식탁 위에 쑥국이 올라왔다는 건, 매서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바깥공기에 꽃향이 배어들기 시작하면, 할머니는 쑥을 담뿍 넣은 된장국을 끓여주시곤 했다.

집된장의 구수함과 풋풋한 쑥향이 어우러진 된장국을 한입 먹으면 입 안 가득 봄내음이 느껴졌다. 쑥국이 올라오면 아버지는 늘 고추장 한 숟가락 퍼올려 국물에 풀어내었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나도 고추장 한 숟가락을 듬뿍 푼다.


아야(얘야). 고추장 많이 여면(넣으면) 짜야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한마디에 고추장 삼분의 일만큼을 덜어낸다. 고추장을 마주한 쑥국이 불그죽죽해졌다.


고추장의 얼큰함이 더해진 뜨끈한 국물을 한입 머금으면, 식도를 따라 온몸이 뜨끈해지며 ‘크-’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땐 술이라곤 입에도 대보지 않은 미성년자였는데, 국물 한 모금에 속이 풀린다는 느낌을 왠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얼마 전 부모님 댁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쑥국 이야기가 나왔다. 냉장고 속 아무런 반찬이나 넣고 대충 쓱쓱 비빈 비빔밥에 곁들여도 좋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꾹꾹 말아 후루룩 먹는 것도 좋았던 국이었노라고. 가족들과 함께 도란도란 옛 추억을 나누고 있자니, 어디선가 쑥향기가 퍼져오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봄 쑥국을 맛보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그러하듯이 대부분의 끼니를 회사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게 되는데, 대량 조리를 해야 하는 식당 특성상 상당량의 쑥을 구하기 힘들어서인지 쑥국을 보기가 여간 어려워졌다. 이제는 ‘고추장을 넣은 쑥국은 그런 맛이었지’라고 어렴풋 떠오를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겨울이 왔다. 조금만 밖을 거닐어도 금세 코끝이 빨개질 만큼 아침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많은 양의 눈이 내리고 있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을 것이다. 영하의 온도에 얼어붙은 도로는 제법 미끄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겨울 매서운 추위가 땅을 꽁꽁 얼리고, 따스한 햇빛이 언 땅을 녹이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겨울은 저만큼 멀리 가 있겠지.


겨울이 지나갔음을 눈치챈 쑥이 땅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봄이 오면, 나는 어김없이 고추장 한 숟가락을 푼 쑥국과 함께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저녁에 쑥국 끼려 줄까?


내게 묻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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