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도 마음속에 메트로놈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되는 거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때 정말 이해 못하는 게 하나 있었다. 소위 '연막치기'라고 하는 거. "시험공부 하나도 못했어!"라고 궁시렁대는 애가 알고보니 전날 밤새 공부해서 배신감 느끼는 뭐 그런 거. 나는 그런 게 왠지 싫어서, 누군가 물어보면 정말 솔직하게 답하곤 했다. '응, 이 과목은 시험 잘 봤고 A 받을 것 같은데.' 실제로 A를 받기는커녕 B+이나 받으면 다행인 대학생활이었지만, 어쨌거나 대답할 때만은 근거 모를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
그때는 '대외활동'에 대한 연막치기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에 지원했으면 지원했다고 말하고,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뭐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왜들 그러지? 그때는 내가 그렇게 될 줄 몰랐지. 언제까지나 대학에 다닐 것만 같았던 나한텐, 인턴에 지원하거나 공모전에 지원하거나 하는 게 그저 '일탈'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난 활동이니 망쳐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 비중 없는 무엇을 드러내는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언가에 지원하는 게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지금은 그때 좀 더 절박하지 못했던 걸 절실히 후회한다. 이제 나도 뭘 드러낼 자신이 없다. 취업하려면 백 번은 떨어져야 한다는 말들이 다 농담인 줄만 알았다. 아니, 내가 본 어떤 사람들 때문에 농담처럼만 보였다. 백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에 지원한 곳들이 모두 떨어졌다. 공채에 지원한 곳이 여럿 있고, 오늘은 일전에 지원한 공모전 결과가 발표됐다.
괴로운 건 내가 왜 떨어졌는지를 나 스스로 복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떨어졌지? 이력서가 한심해선가, 아니면 자기소개서를 못 써선가. 공모전엔 왜 떨어졌지? 내가 글을 너무 못 써서? 심사관의 마음에 들게 쓰는 법을 몰라서? 자꾸만 나한테 맘 편한 다른 이유를 찾으려 들다가도, 결국 냉정하게 내 실력의 문제로 결론내린다. 그게 합리적이고, 그게 미래지향적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할 줄 아는 게 글 쓰는 것밖엔 없다고 자부하는 나 같은 자에겐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기도 하다.
혹시, 하는 마음에 페북 모든 게시물을 다시 친구공개로 돌렸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고 적어둔 커버사진을 아무 의미 없는 사진으로 바꿨다. 주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남의 주관을 공유하는 것으로만 만족하고 있다. 혹시, 혹시 하는 마음에. 우습고 유치하고 한심한 일이다. 떨어지는 게 벌써부터 지겨운데, 그래도 계속 어딘가 지원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이 슬프다. 백 번을 떨어지려면 아직 멀었고, 백 번 떨어지는 동안 내 자존감이 버텨줄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