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이 부시게> 리뷰
<눈이 부시게>, 네이버 시리즈. 이제야 다 봤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중후반부쯤에야 이 드라마의 연출&극본팀이 <송곳>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이 팀의 작업이라면 맹신하고 봐도 좋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지금 시점에 필요한 것을 예민하게 포착해서 좋은 이야기로 만드는 재능.
<눈이 부시게>의 중반부까지는 청년세대의 시선에서 노년세대에 대한 무지함과 무관심을 깨트려가는 세대간 화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혜자가 자신의 노인됨을 인정하고 노년세대간의 소통과 연대를 그려내고, 10화의 반전 이후로는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살아내는 노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노인을 이해하기 위한 정확한 이야기 흐름이다. 많이 울었고, 할머니에게 못해드린 것들이 또 떠올라 슬펐다.
<눈이 부시게>는 장애나 쓸모의 문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모든 화가 좋았던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화를 꼽으라면 역시 10화다. 노인 어벤져스의 노인들 구출장면은 정말 훌륭했다. 물론 다분히 동화적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애초에 그러한 것을 구현하는 데 의도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 노인들이 사회로부터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저마다의 특성들을 활용해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장면은 정말 웃으면서도 눈물나는 장면들이었다. "내가 잘하는 건 주변을 모두 느리게 만드는 거예요."
그 중엔 앞을 볼 수 없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그가 마치 데어데블을 연상케 하는 초능력을 쓰는 장면도 좋았지만, 구출 성공 후 노을 지는 바다에 갔을 때 "바다가 아름답나요? 내게 묘사해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그 장면은 정말정말 너무 좋았다. 묘사가 없어도 (비장애인에게는) 충분히 성립할 수 있는 장면에서 시각 장애인에게 주목해 대사를 맡겼다는 것은 이 극본진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며 이 드라마를 만들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한 부분.
덧. 박근혜 탄핵 전후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조차 태극기 부대를 향해 '틀딱'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걸 보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낀 기억이 있다. 모든 사람들을 냉소하고 모욕하는 사람들이 노인들을 모욕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럴 이유도 없고 나름대로 '올바름'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당시엔 이유를 잘 몰랐는데, 조금 지나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조부모와 같이 사는 것은(혹은 살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정확히는 조부모와 같이 살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나는 '틀딱'이라는 말을 보면 가장 먼저 우리 할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에 그 말을 차마 쓸 수 없었지만, '틀딱'이라는 말에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신의 조부모와 거리가 먼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눈이 부시게>를 뒤늦게 보기 시작했다. 20대 청년이 어느날 60대 노인이 된다는 간단한 설정. 드라마는 20대 청년의 시선으로 60대 노인이 겪는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들을 군데군데 삽입함으로써 세대간의 이해를 꾀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사한 이야기다. 드라마 하나로 뭐 세상이 크게 바뀌지야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드라마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봐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