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ir Time is up!

2018년 골든 글로브, 오프라 윈프리의 세실 B. 드밀 수상소감.

by 버드나무

오프라 윈프리가 2018년 골든 글로브에서 세실 B. 드밀 상(일종의 공로상)을 받고 한 수상 소감을 보고 약간 울었다. 울었으니까 남들도 울라고 번역해봤음... 이런 스피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전문은 텔레그래프에서. 오역은 물론 있을 테고, 글이 아니라 스피치를 옮긴 것이다 보니까 내가 아는 문법에서 좀 더 자유로운, 그러니까 본 내추럴 수능영어자인 나로서는 번역하기 어려운 문장들은 의미에 맞게 옮겼다. 이해를 돕기 위한 부분들은 []로 표시. 다른 분이 번역한 게 있더라. 여기서 볼 수 있음.



1964년, 저는 어린 소녀였습니다. 밀워키에 있는 어머니 집의 리놀륨 바닥에 앉아서, 앤 밴크로프트가 36번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발표하는 걸 보고 있었죠. 그녀가 봉투를 열었고, 문자 그대로 역사에 기록된 다섯 단어를 말했습니다. “올해 수상자는 바로 시드니 포이티어입니다.” 무대 위로 여태껏 본 가장 품격 있는 남성이 올라 왔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의 타이는 하얀색이었고, 물론 그의 피부는 검은색이었죠. 저는 그처럼 축하받는 흑인 남성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 순간이 어린 소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설명해보려고 노력했죠.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집을 청소해주고 지칠 대로 지친 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값싼 바닥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던 꼬마에게 말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들백합 Lillies of the Field>[시드니 포이티어가 주연한 영화]에서 시드니 포이티어가 연기한 대사를 인용하는 것뿐이었어요. “아멘, 아멘, 아멘, 아멘.” 1982년, 시드니는 바로 여기, 골든 글로브에서 세실 B. 드밀 상을 받았습니다. 그건 저한테 의미가 없지 않은데, 지금 제가 같은 상을 받은 첫 번째 흑인 여성이 된 순간을 지켜보는 어린 소녀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을 받은 것은] 영광이고, 또한 이 저녁을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특권입니다. 제게 영감을 주고, 도전정신을 불어넣어 주고, 살아있게 만들고, 또 이 무대로 오기까지의 여정을 만들어준 놀라운 사람들과 함께 말입니다. 제게 A.M. 시카고를 진행할 기회를 준 데니스 스완슨, 그 쇼에서 저를 보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그녀가 바로 <컬러퍼플 The Color Purple>[오프라 윈프리가 배우로 데뷔한 영화]의 소피아야!”라고 추천해준 퀸시 존스, ‘친구’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게 해주는 게일[게일 킹, 배우], 그리고 나의 믿을 수 있는 사람, 스테드먼[스테드먼 그레이엄, 오프라 윈프리의 파트너], 이 이름들은 그 모든 사람들 중에 고작 몇 사람일 뿐이죠. 헐리우드 외신기자협회에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날 언론이 공격받고(under siege) 있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poy-final-cover.jpg


하지만 우리는 또한 알고 있어요. 우리가 부패와 부정의를 마주할 수 있도록 명백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언론의] 끝없는 헌신을요. (참고) 폭군들과 피해자들과 비밀들과 거짓말들에 대한 것들이죠. 이 복잡한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지금, 제가 어느 때보다도 언론을 값지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것이죠. 저는 특히 충분히 용감하게 말했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눠준 모든 여성들이 자랑스럽고 그들에게 감명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들 모두는 우리가 전한 이야기로 축하 받아야 합니다. 올해, 우리는 이야기(story)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만 영향을 준 이야기는 아니죠. 문화와 지역과 인종과 종교와 정치 또는 직장을 초월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밤 지난 학대와 폭력의 시대를 견뎌온 모든 여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제 어머니처럼, 먹여살릴 아이들이 있었고, 내야 할 세금이 있었고, 이뤄야 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결코 이름을 알지 못할 여성들이에요. 그녀들은 노동자이고 농민들입니다. 공장에서 일하고 식당에서 일하죠. 학계에서 일하고, 또한 공학과 제약과 과학계에서 일합니다. 그녀들은 기술과 정치와 비즈니스 세계의 일부예요. 그녀들은 올림픽에서 뛰는 우리의 선수들이고, 또 우리의 군인들이기도 합니다.


636483438381720847-recy2.jpg 레시 테일러, 출처 AP.


또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이기도 하죠. 레시 테일러(Recy Taylor), 제가 알고, 여러분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름입니다. 1944년, 레시 테일러는 젊은 부인이었고 엄마였어요. 그녀는 그저 앨라배마주 아브빌에 있는 교회 예배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섯 명의 무장한 백인 남성들에게 납치되고, 강간당한 뒤,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 눈가리개를 한 채 버려졌습니다. 그들은 만약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미국 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에 보고됐어요. 로자 파크스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노동자가 이 사건을 주도적으로 조사했고 함께 정의를 찾으려고 했죠.


하지만 정의는 짐크로우법[흑인차별정책, 참고]의 영역에서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를 파괴한 그 남자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았어요. 레시 테일러는 98번째 생일을 며칠 앞둔 열흘 전에 생을 마쳤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것처럼, 야만적이고 힘 있는 남성들이 망가뜨린 그 문화에서 아주 오랜 세월을 그녀는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여성들은 이 같은 남성들의 권력에 대해 감히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믿어본 적도 없었죠. 하지만 이제 그들[남성들]의 시간은 끝났습니다(Their time is up). 그들의 시간은 끝났어요! 그들의 시간은 끝났어요. (#Timesup)


레시 테일러가 그녀의 진실이 밝혀지고 있음을 알면서 생을 마쳤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세월 고통 받아왔고, 지금 이 시간조차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다른 여성들과 같은 진실이죠. 로자 파크스가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백인만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일어나지 않는 결정(참고)을 내리기까지, 이 진실은 거의 11년 가까이 로자 파크스의 가슴에 남아 있었습니다.


171201094504-rosa-parks-bus-restricted-super-tease.jpg 로자 파크스.


그리고 여기, “Me too”(참고)라고 말하기를 선택한 모든 여성들에게도요. 또한 [그 말을] 듣기로 한 모든 남성들에게도요. 텔레비전이건 영화건, 제 경력 내내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것은, 남성과 여성들이 정말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관해 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수치심을 느끼는지, 어떻게 사랑하는지, 어떻게 분노하는지, 어떻게 실패하는지, 어떻게 물러서는지, 어떻게 인내하는지, 또한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삶이 던지는 가장 험난한 일들을 견뎌내 온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표현해왔어요. 그들 모두가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던 하나의 자질은, 가장 어두운 밤에도, 더 밝은 아침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고수하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소녀들이 지금 이곳을 지켜보고, 새 시대가 지평선에 있음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새 시대가 밝았을 때, 그것은 수많은 훌륭한(magnificent) 여성들과, 오늘 바로 이곳에 모인 여러 사람들과, 몇몇 훌륭한(phenomenal) 남성들이, 그 소녀들이 더 이상 “Me too”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로 우리를 데려가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싸워왔기 때문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미국이 전쟁을 얘기할 때, 남한은 몸서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