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은 계속 아픈 게 아니라 규칙적으로 최고점을 찍고 내려왔다가 진정됐다. 정말 미친 듯이 아팠다가도 다시 잠잠해졌는데, 그 순간은 아주 짧았다.
진통이 오는데 갑자기 무통주사가 듣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당연히 진통을 견뎌야 하는 건 줄 알았다. 무통이 안 듣는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 후 간호사들의 판단에 따라 더 센 무통주사를 맞은듯싶다. 그러자 다시 다리에 아무런 감각이 없어지고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졌다.
오후 1시쯤 의사가 내진하러 분만실에 왔다. 의사는 자궁문이 한 4cm 열렸지만 아직 멀었다고 했다. 맘카페에서 본 후기에서는 보통 엄마들이 자궁문이 4cm가 열리면 무통주사를 맞는다고 했다. 진통을 겪고 나니 '대체 그때까지 어떻게 견디는 걸까'란 의문이 들었다. 무통주사가 없었던 한 20분의 짧은 시간도 고통스러웠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산통을 '아프다'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어 답답할 노릇이다.
아무튼 의사는 더딘 진행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늘 아이를 낳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까지도 의사가 제왕절개를 권하지 않았다는 게 의문이다. 진행이 더디면 제왕절개를 권하는 의사도 많다던데. 내 담당의는 그렇지 않았다.
내일 낳을 수도 있겠다는 말에 남편과 나는 실의에 빠졌다. 물론 걱정이 돼서 한 시간마다 전화하던 우리 엄마도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을 터다. 나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란 생각으로 버텼다. 무통주사 덕분에 진통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참을 수 있었다.
의사가 오후 5시쯤 다시 내진을 했다. 의사는 갑자기 진행이 빨라졌다며 오늘 저녁 8시쯤에는 아이가 나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자궁문이 8cm 열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간호사와 함께 힘주기 연습이 시작됐다.
오후 6~7시. 내 담당의는 퇴근을 하고 당직 의사가 내 상황을 살피러 왔다.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는 당직의사가 받게 됐다. 황당했지만 어쩌랴. 의사들도 노동자인데. 아무튼 당직의사는 내진을 하더니 힘주기 연습을 시키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힘주기 연습. 유튜브에서도 찾아본 적이 없고 심지어 코로나19 탓에 산부인과나 구청에서 하는 임산부 호흡법 강좌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날 당일치기로 간호사에게 배웠다. 산도가 좁아지지 않게 다리는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내리고 허리를 붙이고 숨을 참으면서 상체를 들어 올린 채 응꼬에 힘을 주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는 잘하는 듯하면서도 못했다. 이유는 전날 오후 11시부터 입원한 탓에 금식해야 했기 때문에 힘이 없었기 때문. 진이 다 빠진 나는 더 이상 짜낼 힘이 없었다.
그래도 아이는 낳아야 했다. 자연분만의 길로 들어선 이상 제왕절개로 돌아설 순 없었다. 물론 너무 아파서 남편한테 '빨리 지금이라도 수술해달라고 해!'라며 울부짖었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남편은 진짜 간호사한테 지금 수술할 수 있냐고 물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안돼 보였나 보다.
아이는 아직 위에 있었다. 힘을 많이 줘야 했지만 나는힘이 없었다. 무통주사를 끊은 상황이어서 진통이 최고치를 찍었다. 무통 기운이 남아 있어 그나마 덜 아플 때 힘을 줘서 애를 낳아야 하는데, 무통 발에 기대기는 다 틀렸다.
힘주기 연습에 돌입하니 갑자기 출산에 필요한 장비들이 하나씩 들어왔다. 그리고 다리를 벌릴 수 있도록 침대가 바뀌었다. 오히려 몸에 힘을 주니 산통이 나아지는 것 같았다. 진통이 최고점을 찍을 때 힘을 '빡' 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내려올 수 있다. 간호사는 힘주기 연습을 하라며 잠시 나갔는데, 그전에 '남편 들어오라고 할까요?'라며 나에게 물었다. 나는 거절했다. 왠지 남편이 있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한의 고통 탓에 결국 남편은 내 호출을 받고 힘주는 중간 들어왔다.
계속해서 힘을 줬지만 역부족이었다.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 숙제 검사를 하는데 아이가 하나도 안 내려와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간호사가 내 배를 누르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아이가 너무 안 내려오자 아이 엉덩이 부분을 눌러 내려오게 하겠다고 했다.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바로 알았다고 했다. 간호사는 있는 힘껏 침대 위에 올라가 내 배를 눌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이가 3cm 내려왔다.
힘주는 그 시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죽다 살아났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원통할 뿐이다. 이때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 같은 난산은 옛날에도 있었을 거고, 더욱이 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한 숱한 여성들은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그 고통을 견디고 낳은 아이들. 사람은 본디 누구나 귀한 존재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힘은 여전히못줬다. 무통 발도 다 떨어지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곧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응꼬에 줘야 할 힘을 얼굴에 줬다. 그 마저도 힘을 못줘 숨을 참고 있으면 간호사들이 배를 꾹꾹 눌렀다. 아이를 낳고 분만실에서 휠체어를 타고 엘리베이터에서 처음으로 거울을 보는데 얼굴과 눈에 실핏줄이 다 터져 빨갰다. 얼굴과 몸은 두드려 맞은 듯 팅팅 불었다.
한 번은 힘을 주다가 정신을 잃었다. 있는 힘껏 힘을 주는데, 갑자기 블랙아웃이 되어버렸다. 이후 간호사가 "산모님 산모님!"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되찾았다. 간호사에게 '잠깐 정신을 잃었어요'라고 말하며 그 이후로부터 겁을 먹어서 더 힘을 주지 못했다.
오후 8시에 나온다던 아이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나왔다. 그때까지 간호사들이 많이 고생했다. 두 명이었던 간호사는 나의 출산을 돕기 위해 네 명으로 늘어났다. 간호사들은 땀을 뻘뻘 흘렸다. 전날 양수가 터져 병원에 왔을 때 있었던 간호사가 퇴근했다가 다시 출근해 나의 출산을 도왔다. 출산은 마치고 그 간호사는 나에게 '아직도 병원에 있어서 놀랐다'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는 산통 때문에 분만실에서 괴성도 많이 질렀다. 사람 소리가 아니라 동물의 울부짖음이랄까. 힘을 못주자 간호사들이 10분만 쉬자며 밖으로 나갔는데, 그때 너무 아파 소리를 꽥꽥 질렀다. 남편에게 간호사한테 무통 좀 다시 놔달라고 하라고 하며 비상벨을 눌러댔는데, 벨을 분명히 들었을 간호사는 모른 척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웃으면서 이렇게 글로 쓰지만 그땐 너무 아프고 힘들고 절박했다.
고마운 건, 늦어지는 출산에도 아이가 잘 견뎌줬다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힘을 못줘서 절절매고 있는 그 순간에도 심박수 하나 떨어지지 않고 잘 버텼다. 산도에 끼어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힘없는 엄마에게 힘내라고 다독이는 듯했다. 그때 우리 아이가 심박수가 떨어졌다면 아마 응급 수술을 했어야 했을 거다. 나중에 보니 아이가 많이 힘들었던지, 머리에 상처가 있었다. 태변을 봤다는 간호사들의 말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엄마만큼 우리 아이도 세상에 나오려고 부단히 노력한 모양이다.나는 우리 아이가 이미 태어날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존재 자체만으로 예쁘고 기특한 아이. 힘든 엄마 위해서 용감하게 버텨준 아이. 고마울 따름이다.
계속해서 힘을 주다가 아이가 낳을 때가 되자 의사가 올라왔다. 의사는 아이를 낳을 모든 준비가 됐을 때 올라오는 듯했다. 첫 번째 올라왔을 때 의사는 아직 낳을 준비가 안됐는지 야속하게 내려갔다. 욕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급히 한 구석에 남아있던 이성을 되찾아 욕은 하지 않았다.
의사가 두 번째 올라왔을 때는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간호사를 쳐다보더니, '힘주면 아이 머리가 나온다'는 간호사의 말에 아이를 받았다. 의사가 오니, 진짜 이제 몇 번만 하면 아이가 나오는구나란 확신이 들었다. 그 후 나는 실수 없이, 고성 한번 지르지 않고 세 번 만에 힘을 줘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오후 10시를 넘겨서 아이를 낳았다. 쑥 아이의 머리가 빠지더니 이후 슉 하고 단번에 아이가 나왔다. 아이는 내 배 위에 올려졌다. 아빠가 들어와 탯줄을 잘랐다. 그리고 아이는 분만실에서 깨끗이 씻겨 나의 품에 안겼다. 정말 작고 예쁜 아이. 아이는 정말 작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아이는 울 힘도 없었는지 '으엥 으엥'하고 염소소리 비슷하게 냈다. 아직도 나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이 기억이 난다.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했던 것 같다.
어떤 산모는 후처치가 너무 아팠다고 하는데 나는 난산이었어서 그런지, 후처치는 아무 느낌도 안 났다. 회음부를 절개하는지, 꿰매는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의사는 태반이 나온 것을 확인했고 제대혈을 뽑는 작업을 했다. 회음부열상방지주사도 맞은 것 같다. 엄마한테 전화를 제일 먼저 했다. 너무 아팠다고. 그리고 지금 제일 기억에 남는 의사의 마지막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