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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Jan 11. 2021

내가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서 배운 것들

– 프롤로그 – 혹시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쓴다

나는 7년 전 뉴욕의 디자인 스쿨을 졸업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느 중소기업의 웹 개발자와 대기업의 영업 사원으로 오 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한 뒤 유학을 마음먹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왔기 때문인지 학교를 다니는 하루하루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아무리 시시한 것들이라도 교실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내 딴에는 대단한 것들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자 몸과 마음이 바빠졌고 책에 뻔히 다 쓰여있는 것들을 내가 굳이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배운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수 없이 많은 디자인 서적과 인터넷 동영상, 블로그 자료 등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같은 이야기 한 글자 더 적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3월부터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나가지 않은 채 완전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종종 가던 헬스장도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나는 집에서 유튜브를 통해 운동 동영상을 보고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하는 운동을 옆에서 따라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매일 동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따라 하면 할수록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과 내가 좋아하는 채널이 점차 갈렸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자 우리는 같은 채널을 보고 동시에 운동을 할 수 없을 만큼 취향이 달라져 있었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같은 이야기라도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맛과 느낌이 다르다는 점, 그것이 바로 동일한 내용의 컨텐츠가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나와 아내가 서로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는 같은 스트레칭 동영상이더라도 각기 다른 강사가 제작한 것들을 더 선호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들이 내 손으로 다시 쓰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내가 하게 될 소소한 이야기들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몇 가지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의 주제는 이 글의 제목과 같이 “내가 뉴욕의 디자인 스쿨에서 배운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짧지만 강렬했던 삼 년의 학교 생활은 사춘기 이후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 썼던 글에서 언급했던 내 친구처럼 어떠한 이유로 유학을 가거나 새로운 선택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내가 보고 느낀 점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디자인 스쿨에서는 디자인 이론과 미술사, 디자인 소프트웨어 다루는 법은 물론 새롭고 다양한 지식을 배웠고 경험했다. 동영상을 편집하는 법, 모바일 앱 설계하는 법, 손바느질로 책을 만드는 법도 배웠고 영문으로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의 <더블리너스  Dubliners>를 읽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디자인 이론이나 소프트웨어 다루는 법 같은 실용적 지식에 관한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런 배움의 과정 사이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찰나의 기억들에 관한 기록이다. 실용적인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큰 보편성을 가지고 있고 어쩌면 더 흥미 있는 이야기들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십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의 변화를 모색하던 시절, 유학을 가야 할지 매일 밤 고민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물어봤지만 아무도 속시원히 대답해 주지 못했다.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당시의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다. 유학을 생각하거나 디자인을 공부하려는 사람들, 혹은 인생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들이 생각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나에게는 더없이 큰 기쁨일 것이다.




다음 글:

1화 – 그림을 못 그려도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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