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아들 이름을 영옥이라 지었을까

영화나 책이나 아무거나2

by 이야기보따리

4.19는 혁명이다. 5.18은 민주화운동이다. 12.12는 군사반란이다. 6월은 민주항쟁이다. '부마'는 민주항쟁이다.


4.3은 이름이 없다. 그냥 '사건'이다. 어떻게 성격을 정할 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4.19는 1960년. 12.12는 1979년.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5.18은 1980년. 6월민주항쟁은 1987년이다. 4.3은 이들보다 훨씬 오래된 1948년에 벌어졌다.


벌써 8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는 건 참 이상한 일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확인 사망자 1만여명, 추정 사망자는 3만여명이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이토록 많은 지역민들을 살해한 사례는 전무하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제주4.3은 금기어로 치부되며 누구도 입에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입에 올리는 순간 '대한민국 부정' '좌파'라는 딱지가 붙었다.


공교육에서도 거의 다루지 않고, 그러다 보니 인지도 또한 매우 낮은 기이한 역사가 바로 제주4.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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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끔찍한 역사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시작해보자고 팔을 걷어붙인 이가 정지영 감독이다. 1946년생이니 어느덧 79세다. 나는 그가 만든 영화중 <남부군>(1990), <하얀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소년들>(2023)을 봤다.


만족하지 못한 영화가 단 한 편도 없었다. 정지영 감독은 1990년 <남부군> 이후 현실과 역사를 날카롭게 응시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이가 80이 가까워지지만 그 날카로움이 무뎌지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에 대한 신뢰 덕분에 이번 작품 <내 이름은>은 당연히 봐야 할 영화였다.


주인공 염혜란은 정지영 감독에 대한 신뢰에 날개를 달았다.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2016), <동백꽃 필 무렵>(2019), <더 글로리>(2022), <폭싹 속았수다>(2025)를 통해 그는 무조건 보고 싶은 배우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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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네 이름은>은 큰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국가는 자국민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가지는가

-국가는 자국민에 대해 무한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국가가 명분을 내걸면 자국민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는가

-국가가 명분을 내걸면 자국민에 대해 무한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만약 그러한 권한이 있다면 그 권한은 누가 준 것인가

-만약 그러한 권한을 행사했을 때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가


국가가 자국민에 대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무한한 폭력을 행사하면 그 권한은 아래로 내려온다. 가정에선 아빠가, 학교에선 교사가, 회사에선 사장이 그 권한을 가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국가의 또다른 대리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폭력적일 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폭력이 빈번해진다.


영화는 학교와 사회를 교차해서 보여준다. 사회에선 자국민을 둘로 나눈다. 국가에 찍힌 국민, 국가에 찍히지 않은 국민, 국가를 움직이는 권력자들, 그 위의 외국인 권력자들(영화와 역사에선 미군이다.)이 카스트제도처럼 서열이 나눠진다.


학교도 마찬가지. 교실에서도 권력자의 아들, 그 아들에 빌붙은 친구들, 빌붙지 않은 친구들이 교실에서 서열을 이룬다. 그 위론 당연히 어른이 있고, 교사와 학교의 권력자들이 등장한다.


그 시절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그게 우화가 아니라 현실임을 당연히 안다. 정지영 감독은 현실이었던 학교와 제주4.3을 교차해서 보여주며 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제주4.3이 과거의 역사라면 현재의 사람들은 상관이 없을까? 제주4.3이 제주도민의 역사라면 비제주도민들은 상관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학교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다 학교에서 살아간다. 사회가 폭력에 젖으면 학교 또한 폭력에 젖는다.


나 또한 1980년대 초 학생들끼리 뺨을 때리는 문화를 경험했다. 시험이 끝났을 때 우리반 순위가 지난번보다 떨어지면 반 학생들은 모두 복도에 나갔다. 두 줄로 나눈 뒤 서로 뺨을 때렸다. 교사가 신호를 주면 뺨 때리기가 시작된다.


사회의 폭력과 학교의 폭력은 별개 사건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 그 둘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이 기교 없이 담백하게 설명한다.


아역 배우로 귀여운 인상이 지금도 기억나는 박지빈이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훌륭히 소화했다. 신우빈, 최준우, 전승훈 등은 학생 역에 잘 녹아들었다. 교사역을 맡은 허동원은 찰떡 연기를 보여준다.


남자주인공인 신우빈은 극 중 이름이 '영옥'이다. 누가 봐도 여자 이름이다. 그래서 학교에선 놀림감이다. 개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엔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에 얽힌 비밀, 제주4.3에 얽힌 비밀이 '영옥'에서 이름에서 풀려나간다.


'영옥'이란 이름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영화 마지막 '영옥'에 얽힌 이름의 비밀이 풀리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극 중 주인공인 신우빈은 폭력에 대해 반응하는 우리를 보여준다. 폭력에 서서히 물들어가던 신우빈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두 가지 갈림길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을 저지른뒤 잘못을 강화하는 쪽으로 갈지, 잘못을 참회하는 쪽으로 갈지 자문하게 만든다.


12.3내란.jpg 12.3 내란. 2024년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 국민은 폭력을 막는 선택을 했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가 된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선택들이 모인 결과다. 잘못을 덮는 선택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못을 참회하면 어떻게 되는지 신우빈은 두 가지 다를 보여준다.


폭력이 행해질 때 폭력에 맞서는 건 무섭고 두렵다. 맞서는 건 항상 소수다. 그렇다면 다수의 선택은? 외면할 수도 있고, 맞서는 자에 박수를 보낼 수도 있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에 가담할 수도 있다.


정지영 감독은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자고 말한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를 후원한 수많은 개인들 이름이 올라간다. 노래가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 이름들이 빼곡하다. 그 이름들이 무려 9778명이다.


거대 자본의 도움 없이 오로지 개인들이 모은 4억여원으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 기적같은 영화다. 그 기적이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폭력을 밀어내는 대한민국을 결국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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