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 메리>를 꼭 봐야 할 몇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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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보따리

드디어 173만 관객 중 한 명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를 봤다는 게 영광스럽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 느낀 감정이다.


어린 시절 가장 먼저 접한 SF영화는 <E.T.>(1982)다. 크게 외계인을 착한 외계인, 나쁜 외계인으로 나눈다면 <E.T.>는 전자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3부작(1977~1983)에서 외계인은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선한 외계인, 의리 있는 외계인, 사기꾼 외계인, 겁 많은 외계인 등 외모만 다를 뿐 사실상 또 다른 인간이었다.


1985년 KBS 1TV를 통해 방영된 미국 드라마 <V>는 외계인에 대한 인식을 확 바꿨다. 음흉하고, 잔인하고 무서운 게 외계인이었다. 1986년 개봉된 <에이리언2>는 외계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 쐐기를 박았다.(※<에이리언2>가 크게 흥행하면서 <에이리언1>는 1987년 뒤늦게 국내에 개봉됐다.)


이후 다양한 SF 영화들이 외계인들을 다뤘는데, 부정적인 인식을 크게 바꾸진 못했다. 2024년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드라마 <삼체>(The Three-Body Problem)는 “그래, 외계인은 가능한 접촉하지 않는 게 좋아”라는 인식을 다시 한 번 굳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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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큰 기대감을 갖고 본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는 <E.T.>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친구가 되고 싶은 외계인이란 뜻이다.




인간이란 종족은 미지의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만 적대적이다. 새로운 종족을 만났을 때 일어난 역사를 보면 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남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원주민, 호주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의 친구가 되지 못했다. 새로운 종교가 들어올 때도 토착 종교와 큰 마찰을 빚는다. 새로운 이념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

만약 이게 무조건이었다면 인간은 지금 이 세상에 없어야 한다. 그 반대 경우가 존재한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인간은 더 큰 적이 나타나면 뭉친다. 공통의 더 큰 적이 나타날 때는 누구와도 손을 잡는다. 1차대전 때 독일과 오스만제국이 한편, 미국, 일본, 러시아가 한편이었다. 이런.


2차대전 때 독일과 일본이 한편,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한편이었다. 이런. 2차대전이 끝나고 한편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적대국이 됐다. 똑같은 이슬람이지만 사우디는 미국과 친하고, 이란과는 사이가 나쁘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에서 인간과 외계인은 자기 별의 생존이라는 과제를 갖고 만난다. 생존을 위해 서로가 죽어야 한다면 적대적이었겠지만 두 별을 위협하는 건 공통의 또 다른 무언가였다. 공통의 또 다른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 양측은 서로 나눌 것이 존재했다. 그건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이 영화는 조심스레 손을 내밀고, 대화하고, 교류하고 서로 협력하는 단계를 차근차근 잘 보여준다. 그 점이 참 설득력 있고 매력 넘치게 다가온다.


또 눈길을 끈 점은 대화방식. 두 편의 영화 <콘택트>(1997)와 <컨택트>(2016)는 외계인과 소통하는 과정을 다룬다. 특히 2016년작 컨택트는 말과 글 또는 수화 정도로 소통하는 걸 떠나서 대화방식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에게 참 신선했다. “아, 저렇게도 대화할 수 있구나” 하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에서는 서로 소통하는 과정이 꽤 길게 이어진다. 처음엔 어떻게 대화를 시도할지 막막하다. 주인공 라이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의 답답한 심정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영리하고 긍정적이며 설득에 능한 라이랜드는 극 중 직업이 중학교 교사다. 이 점이 정말 중요하다.


아직 지식이 얕은 대상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라이랜드의 역할이다. 외계인에게도 그렇게 접근한다. 가장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라이랜드는 영웅이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돌아오지 못하는 우주선에 몸을 실었으니 어찌 영웅이지 않겠는가. 영웅은 영웅이되, 수많은 신화나 드라마 속에서 본 영웅과는 참 많이 다르다. 용감한 것도 아니고, 굳센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카리스마 넘치는 것도 아니고, 진두지휘하면서 위기를 돌파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를 맡아달라 할 때 “난 절대 안된다”면서 끝까지 발을 빼는 인물이다.


이 새로운 유형의 영웅은 그래서 이 시대의 새로운 인물상을 제시한다. 겁이 많고, 마음 여리고, 낙천적인 성격이 새로운 영웅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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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계획을 진두지휘하는 에바 스트랫(잔드라 휠러)는 우리가 줄곧 봐왔던 영웅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일을 참 잘한다. 농담을 하지 않는다. 감정 표현이 없다. 인상이 딱딱하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를 봤을 때 나는 독일의 전 수상 ‘메르켈’이 떠올랐다.


메르켈도 동독 출신, 에바역을 맡은 잔드라 휠러도 동독 출신이다. 혹시 작가가 메르켈을 떠올리면서 에바 스트랫을 썼나 싶은데 오로지 나만의 추측일 뿐이다. 사실 감정 표현이 없는 것과 감정이 없는 것은 별개다. 에바는 감정을 딱 한 번 은연중에 드러낸다. 모두가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위해 파티를 열 때 갑자기 나타나 노래를 부르고 사라진다. 그 대목이 나는 영화에서 명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에바는 너무나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인류 구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극단적으로 자기를 절제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그녀는 가장 과학자다운 리더라 볼 수 있다. 에바는 대형사고로 우주로 출발할 우주비행사들이 사라져 버렸는데 무표정하게 다음 일을 진행한다. 에바와 남자 주인공 라이랜드가 나누는 대화를 보면 에바의 성격이 참 잘 드러난다.


“자살 임무를 지휘하느라 마음 부담이 크겠어요”

-그렇진 않아요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할 거라 보나요?”

-신의 뜻이라면요

“신이 있다고 믿나요?”

-없는 것보단 낫잖아요.


에바를 보면서 ‘맞아, 저게 과학자스러운 거지’라고 생각했다. 리더로서 참 멋있다 느꼈다. 라이랜드와 에바는 정반대 성격이면서 서로를 보완한다. 이미 알고 있는 상황을 지휘하는 건 에바의 몫이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을 지휘하는 건 라이랜드의 몫이다. 에바는 지구에 남고, 라이랜드는 우주로 떠난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Project Hail Mary)는 앤디 위어의 세 번째 장편 소설이다. 앤디 위어의 데뷔작이 영화로 유명한 <마션>이다. 아버지는 입자 가속기 물리학자, 어머니는 전기기술자다.


‘헤일 메리’는 미식축구에서 경기 종료 직전 역전을 노리고 던지는 도박성 패스. 지구를 구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얼마나 확률이 낮은지 제목이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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