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지 않은 아이가 그냥 잠든 이유

아빠가 틀렸다5

by 이야기보따리

어린 시절부터 밥을 스스로 먹도록 했다. 떠먹여 주려는 엄마를 제지했다. 아내는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지만 결국 숟가락을 내려놨다. 이 부분에서 아내와 나는 접근방식이 갈라진다. 아내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시행한다. 나는 할 일을 먼저 한 다음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하게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적응했다. 스스로 밥을 먹었다. 둘째는 수저를 스스로 가져가는 걸 좋아하고, 다른 사람 수저까지 꺼내놓는다. 식당에 가면 모든 사람들 수저를 꺼내놓는 둘째와 자기 건 자기가 하겠다는 첫째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스스로 밥 먹기의 부작용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즐겁고 사소한 이벤트라 해야 할까.


가끔 둘째는 밥을 좀 남긴 상태에서 "밥 떠먹여 줘"라고 말한다. 아내는 이럴 경우 무조건 떠먹여 주지만 나는 예외가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건 일종의 신경전 같은 것이었다. 둘째가 "밥 떠먹여 줘"라고 할 때 남은 밥 양을 보면 생각보다 그다지 많지 않다. 세네 숟갈 정도다.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런데도 둘째는 "밥 떠먹여 줘"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내 대답은 한결같다.


"밥 다 먹어. 밥 다 먹고 나서 간식도 먹고 놀아."


보통 이런 경우 둘째는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간식도 먹지 않고, 놀지도 않는 길을 택한다. 아주 단호하다. 자기가 분명히 손해 보는 행위인데 기꺼이 그 길을 택한다. 이건 실제 못 먹는다기보다는 시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 눈엔 의지 부족, 어리광처럼 비쳤다.


그날도 둘째는 어김없이 "아빠, 밥 떠먹여 줘"라 말했다. 마침 엄마가 집에 있었다. 나는 "스스로 먹자. 알잖아"라고 말했다. 아내가 '에휴' 하면서 일어났고,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 먹였다. 둘째가 남긴 밥은 세 숟갈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우리 집에선 할 일을 다해야 그다음 과정을 할 수 있다. 즉 밥을 먹어야 간식을 먹을 수 있고, TV나 게임도 가능하다. 둘째는 과자를 정말 좋아한다. 첫째는 과자를 맛만 보고, 적당히 맛을 봤다 싶으면 더 이상 먹지 않는다. 적은 양도 항상 남긴다. 그에 반해 둘째는 첫째의 몇 배를 먹는다. TV도 둘째가 첫째보다 훨씬 좋아한다.

너무나 좋아하는 것들을 밥숟갈만 먹으면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스스로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 완주하길 바랐다. 곁에서 도와주는 게 완주를 방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밥을 다 먹지 못한 둘째는 그냥 빈둥거리다 잠자리에 들곤 했다. 그 모습을 엄마는 항상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는 걸 괴로워했다. 밥을 다 먹은 둘째는 너무나 신나 하며 콧노래까지 부르며 과자를 잔뜩 들고 TV를 켜곤 했다.


그날 아내가 밥을 떠먹여 준 밥을 다 먹은 둘째가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생각에 물결이 생겼다. 영화 '곡성'에서 나온 대사 "뭣이 중헌디?"가 떠올랐다. 과연 나한테, 둘째한테 뭣이 중요한 것일까.


밥을 스스로 다 먹어야 한다는 게 혹시 내 강박 아닐까. 밥을 다 먹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고, 스스로 먹는 건 그다음 아닐까. 둘째가 "밥 먹여줘"라고 하는 게 밥을 못 먹어서가 아니라 일종의 놀이가 아닐까.


누구나 생각의 틀에 갇히면 행동의 폭이 좁아진다. 스스로 밥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내 생각의 틀에 갇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둘째가 "배불러, 더 못겠어"라고 말하며 식탁에서 일어났다. 항상 그렇듯이 딱 세 숟갈 정도 남았다. 둘째를 불렀다.


"아빠가, 먹여줄까?"


둘째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아빠 도움으로 둘째는 밥을 다 먹었다. 둘째는 간식을 잔뜩 그릇에 담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시간이 지난 뒤 저녁시간, 방에 앉아서 작업하는 나를 둘째가 찾아왔다. 나는 진작에 밥을 다 먹고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둘째가 나를 보면서 "아빠, 배불러 밥 다 못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라 말했다. 그리고 반응을 살폈다. 몇 초 시간이 흘렀다. 딸이 갑자기 "아, 아니다, 다 먹을 수 있겠다"라면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다 먹은 밥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원칙이나 규칙은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전부 다 합의했느냐다. 모두가 다 합의과정에 참여했느냐다. 집에서 정한 원칙과 규칙은 사실 부모가 정한 것일 때가 많다. 가족회의를 열긴 하지만 회의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다. 부모 뜻대로 흘러갈 때가 많다.


'스스로 밥을 다 먹기'는 내가 정한 원칙이자 내가 원하는 원칙이다. 내 맞춤형 원칙이다. 유연성이 없는 원칙은 고집으로 흐르기 쉽다. 밥 몇 숟가락을 먹여준 며칠 뒤 둘째가 스스로 밥을 다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내 원칙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는 음식이 마음에 안 들 때, 배가 고프지 않을 때, 졸릴 때, 놀고 싶을 때는 밥을 몇 숟가락 뜨지 않고 "배불러"라 말한다. 이럴 땐 어쩔 도리가 없다. 밥 먹을 의사가 전혀 없다. 단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때, 몇 숟가락 남지 않았을 때 "배불러"라 말한다면 아빠가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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