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백중 내가 지는 게임
오늘도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한다.
내일 아침에 누가 밥을 하느냐를 두고 내기를 한다.
" 인생 뭐 있어? 인생은 한방이야!" 나는 호기롭게 주먹을 펼친다.
엄마가 졌다. 아침밥 당번은 당연히 엄마다.
그러나 늘 아침밥은 내가 짓는다. 엄마는 기억을 못 하니까, 5분 전의 일도 자신의 것이 아닌데 하물며 다음날 아침에 밥이라니, 내가 이겨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게임을 한다.
게임의 주제는 아주 시시한 거지만 그때그때 달라진다.
빨래의 수건을 개는 거, 플라스틱을 재활용비닐에 담는 거, 물 한잔을 따라오는 거, 수저를 놓는 거, 화장실 불을 끄는 거, 손톱깎이를 가져오는 거, 티브이를 켜는 거, 바닥에 떨어진 리모컨을 줍는 거, 선풍기를 끄는 거, 창문을 닫는 거, 바카스 뚜껑을 따는 거, 먹다 흘린 아이스크림을 치우는 거, 벗은 양말을 세탁기에 갖다 놓는 거...
이런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움직임을 엄마가 잊지 않도록 유도하고자 시작한 이 게임은 소소한 효과가 있다.
일단 이기면 좋아하신다. 그래서 일부러 져주기도 한다.
엄마가 져도 당당하게 안 하시지만 가뭄에 콩 나듯 벌칙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이전의 건강하고 든든했던 엄마의 뒷모습이 겹쳐 보이곤 한다. 가슴속에 눈물이 차오른다.
기억의 망각뿐만 아니라 늘 행해왔던 아주 사소한 일상의 행위들과의 단절은 공간의 단절로 확장되며 관계의 단절을 지나 자신과의 단절을 향할 것이기에, 엄마의 하루는 나의 하루와 시간의 속도와 질량이 다르다.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싶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조차 앗아가 버리는 알츠하이머와 싸워 이 길 방법이 없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빼앗기는 시간을 벌고자 정신적 육체적 움직임을 훈련해야 한다.
가위 바위 보 게임은 그 움직임을 위한 동기를 부여하고 찰나의 승부욕을 고취시키는 것 같아서 자주 하곤 한다.
몇 년 전, 엄마를 위한 아침밥을 짓기 시작하면서 식탁에서 앉는 자리의 위치가 바뀌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싱크대 쪽에 엄마는 거실 쪽에 앉게 되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노동의 특혜를 받기만 했던 위치에서 노동의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반대의 입장에 서고 보니, 자식들을 위해 평생 대가 없이 베풀기만 하는 부모들의 노고에 경외심이 일었다.
모든 것을 다 퍼주고도 모자랄까 봐 자신마저도 주어버린 것일까.
이제 엄마는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는 법을 잊어버린 듯하다.
십수 년 전 신촌에 있는 문화센터에서 '내가 꿈꾸는 집짓기' 강좌를 진행했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성인들이었고 은퇴 후 귀촌하여 집 짓기를 꿈꾸는 부부, 가진 건 없지만 언젠가는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신혼부부, 성장할 아이를 위한 집 짓기를 꿈꾸며 어린아이와 동반한 엄마, 반려동물을 위한 집을 짓고 싶어 하는 직장인, 간혹 건축과를 꿈꾸는 고등학생 이 수업에 참여하였었다.
그들 대부분은 '새로운 추억'을 쌓기 위해 집을 짓고자 하였었다.
지금 엄마와 살다 보니 만약 내가 집을 짓는다면 '지나간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집을 짓고 싶다.
함께 살았던 익숙한 공간과 넓지 않지만 편안했던 여백들, 그 공간을 채우는 작은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화초들과 나무가 있는 그런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집 말이다.
건축사로서 집을 짓는 설계를 하다 보면 건축주들의 생활습관과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게 되는데, 다른 이의 삶은 늘 흥미롭기만 하다. 타인의 삶이 나의 삶보다 아름다워 보여서 그런 걸까.
집을 설계하기에 앞서 건축주들에게 자신이 꿈꾸는 집을 정성스럽게 글로 적어보시라고 권한다.
별거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종이에 빼곡히 나열한 희망사항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왔던 꿈의 기록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 모든 소원을 한정된 예산과 면적 안에 다 담을 수는 없기에 가장 가치 있는 바람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정을 하시도록 권해드린다.
대부분의 건축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가족들 간 '소통과 공유의 공간'으로 앞으로의 '새로운 추억'을 많이 쌓기 위한 집을 만드는 것이다.
어릴 적 애교 많았던 아들이 대학생이 된 이후 거실로 나오지 않아 얼굴을 볼 수가 없다며, 거실에 화덕을 만들어 아들이 좋아하는 고구마 냄새를 피워 아들을 유인하겠다고 하는 엄마도 계셨다.
우리가 간직하고 싶어 하는 '추억'이 얼마나 삶을 지탱해 주는 자양분이 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나도 가끔 고구마를 굽는다. 고구마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물로 찌지 않고 에어프라이에 고구마를 굽는다.
밥맛이 없다고 밥은 안 드셔도 고구마는 슬쩍 하나 집어드신다.
이 고구마를 다 드시고 나면 우리는 또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할 것이다. 목이 막히니 물 한잔을 떠 오는 것을 주제로 말이다.
이번에는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