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53개를 철거하다

내가 저자가 되는 꿈너머꿈노트를 정리했다

by 지으다

십수 년 전, 고도원이 엮은 '내가 저자가 되는 꿈너머 꿈 노트'를 야심 차게 구입했더랬다.

아마 사십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삼십 대의 조급한 마음에 그 노트를 샀을 수도 있겠다.

마지막 페이지가 203페이지로 끝나는 이 노트는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한 페이지에 멈춰있었다.

원하는 꿈에 번호를 매겨 적다 보니 바랬던 혹은 바라고 있었던 꿈이 53호까지 이어져 있었다.


꿈 1호를 읽어보았다.

낯간지러워 고백할 수가 없을 정로도 이상적이고 도저히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바람들이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있었다.

나의 꿈 1호는 국민건축가가 되는 것이었다.

국민가수 국민배우 국민문학 국민음식 등등 국민으로 대표되는 그 무엇들처럼 절대적 공감의 힘으로 대표되는 바꿀 수 없는 고유의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1년에 한 번씩 하야트재단에서 생존하는 최고의 세계적인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것보다 국민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적은걸 보니 말이다.

국민의 그 무엇은 내가 원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고 셀 수 없이 많은 타인의 바람과 인정이 한데 모여 구축되는 것으로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심사위원들 몇몇에 의해 결정되는 프리츠커상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꿈 1호부터 꿈 53호까지 적힌 오래된 노트를 한 장씩 한 장씩 뜯기 시작했다.

50이 넘어 꿈을 다시 리모델링하려고 시작한 일이었으나 결국 꿈을 통째로 철거해 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백세시대에 왜 벌써 꿈을 포기하느냐 묻겠지만 말은 안 해도 우리는 다 안다.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진짜로 원하는 꿈이 아니라 사회화된 희망사항을 꿈이라 핑계를 대고 하염없이 달려가고 있었음을 이제는 안다.


수백 번 꿈을 꾸어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바람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요구사항까지 차곡차곡 적어두었던 나의 꿈들은 대부분 세속적인 욕망과 과분한 욕심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성취하고자 하는 것들은 많았으나 그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울타리만을 위한 것이었으며, 사회적인 관계에서 생겨나는 잣대와 그럴싸해 보이는 기준에 적절해지기 위한 다그침의 기록들이었다.

아무리 고상하게 표현했다고 해도 부와 명예와 권력을 바라는 본성이 행간에 눈에 띄게 숨겨져 있었다. 간혹 아주 순수한 바람들이 섞여있긴 했으나 이 또한 나의 이기심을 뛰어넘지 못했고 이타적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이루지 못해서, 결국엔 이룰 자신이 없어서 지워나가기 시작한 나의 꿈들은 그렇게 하나둘씩 뜯겨나가고, 점점 얇아진 낡은 노트만 덩그러니 내 눈앞에 놓여있다.

그렇게 16년의 기록이 한순간에 철거돼버렸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나의 청춘의 시간이 담긴 흔적을 하나씩 지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온통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매듭을 다시 하나씩 풀어 처음부터 제대로 땋을 자신이 없어 가위로 싹둑 잘라버렸지만 애석하지 않았다.


진실해지고 싶었다.

스스로를 더 잘 알았더라면 진짜가 아닌 가짜의 꿈같은 소설은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남이 바라보는 잣대로 쓰인 나의 꿈이 이제야 부끄러웠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과 할 수 없어진 일의 경계가 명확해지는 이 나이가 되니 욕심을 내려놓듯 어쩔 수 없이 꿈도 슬그머니 포기하고 회피하는 건 아닌지 뜨끔하다.

국민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나는 얼마나 타인들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건축 환경을 돌보며 살아왔는가? 건축의 속성 상 건축을 의뢰하는 건축주의 자본으로 행해지는 건축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워졌을까?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밑동을 잘라봐야 드러나는 나이테를 두른 나무처럼 나의 진짜 나이테는 올해 몇이나 되었을까?


숱한 질문들을 뒤로하고 오래되고 텅 빈 낡은 노트를 조용히 쓰다듬는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미지의 시간을 가짜 꿈으로 채울 수는 없다.

내게 꿈은 거창하지 않고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것들로 채워질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처럼 찢겨나간 채 텅 빈 노트로 박제될 수도 있다.


철거가 끝난 평평한 나대지 위에 새롭게 건물을 세우듯, 언제 다시 무엇으로 태어날지 모르는 꿈 54호는 부피가 아닌 밀도로 채워지면 좋겠다.

왜 꿈 1호부터 새로 시작하지 않느냐 묻는다면, 내가 부정했던 그 시간 속의 부끄러운 나도 나 자신이며 무엇보다, 철거된 53개의 꿈들의 몽타주적 시작과 지금까지 애써온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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