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을 길

번아웃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by 지으다

무언가를 성취하는데 걸리는 노력은 많은 인내력을 요구한다.

반면 무언가를 잃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노력을 배신한다.


사회 속에 던져진 이상 자의던 타의던간에 언제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소진되었던 노력의 대가가 쌓여 오늘의 내가 있다는 전제는 때론 가혹하다.

노력은 어떤 형태든 결실을 요구하는 관성 때문에 나는 늘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해왔을 뿐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을 체득하기 위한 경험 따위는 염두에 두지 못했다.

그 무용의 텅 빈 여백이 나를 숨 쉬게 하는 줄도 모르고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뭐 대단한 사람이 되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별것 아닌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느라 나의 에너지가 재생불능상태가 되는지도 몰랐다.


몇 년째 이어지는 번아웃과 무기력함의 시작은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뒤돌아 보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빛과 어둠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양지에서만 머물고자 했던 것이 많은 이유들 중의 나가 아닐까 싶다.

과중한 업무와 지나친 자기 효능감은 좋은 결과를 초래하지 못하면 좌절과 실패의 순간을 뛰어넘지 못하고 자기 비하나 상심에 빠지게 된다.

날카로운 사춘기적 반항보다 더 깊은 중년의 무기력증으로 나의 자아는 어릴 적 그때보다 더 희미해져 버렸다.


혹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꿈을 꾸라고 하고 누구는 자기 자신을 알고 내려놓으라 조언하는데 나는 어느 장단이 어울리는 사람일까.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꿈을 좇자니 버겁고 힘에 부치고 내 능력밖의 일이라 다 내려놓고 받아들이자니 패배자가 된 것만 같은 생각에 오도 가도 못한 채 멈춰버린지 수년째이다.

십수 년 전 퇴사를 고민했던 그때처럼 나는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깊어서일까 가지 않을 길에 대한 미련이 앞서서일까. 나는 묻기만 했을 뿐 답하지 못한 채 몇 년을 산란하게 흔들리고 있다. 강제로 멈춰진 것인지 스스로 멈춘 것인지 오늘의 멈춤은 나를 또 어느 길로 들어서게 하고 어떤 것들을 변화시킬 것인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과거에 가지 않은 길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미래에 가지 않을 길에 또다시 미련이 남진 않을까


오십을 넘긴 친구들은 은퇴를 하거나 경제적 부침을 겪거나 건강을 잃거나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식 뒷바라지에 여력이 없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 간이라 해도 정작 옆의 친구에게는 관심이 없는듯하다. 오직 그동안 쌓인 자신의 이야기들을 화산이 폭발하듯 맹렬히 뱉어내느라 여전히 바쁘다.

그들은 두 갈래 길 중 선택한 결혼이라는 길의 모퉁이를 돌고 있으며 스스로 선택한 그 길에서 멈출 새가 없어 보인다.

숨 가쁜 그들 중 한 친구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무심한 듯 툭 한마디를 건넨다.


"혼자 사는데 속 편하지 뭐가 힘들다고 그래"


순간, 나의 멈춤이 별 볼 일 없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철없는 투정쯤으로 전락하고 말아 버렸다.

미생의 삶처럼 미완의 삶으로 얕잡아보는 집단중독의 사고를 개인의 탓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한마디를 툭 건네고 싶었다.


' 그러는 너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넷씩이나 똘똘 뭉쳐 살면서 뭐가 힘들다고 그래? '


누구나 가지 않은 길이 있고 가지 않을 길도 있다.


두 갈래 길을 동시에 다 가지 못하므로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이 들겠지만, 똑같이 아름다운 길이어도 자신이 보기에 조금 더 아름답다고 여긴 그 길을 정신없이 걸어왔을 것이다.

가지 못한 한 길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와 걸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멈춰있는 지금 이 순간 몸을 돌려 두 갈래 길중 가지 못한 그 길을 다시 걸어갈 수는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선택한 길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달라져버리고 때로는 방향을 잃고 멈춰버렸더라도 언젠가 다시 무거운 발을 떼고 한걸음 한걸음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해 나설 것이란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보다 가지 않을 길에 대한 확신으로 나의 내일이 조금 선명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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