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챙김의 숙제를 선사한 가족 돌봄

알츠하이머입니다

by 지으다

그냥 덤덤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내려앉는 충격도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말만 들었지 무지에 가까운 병명에 대한 지식과 정보력을 다 동원해 봐도 그 순간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니, 무엇을 할 수 없게 되는지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은 있었으나 그저 조금 이상하다 불안한 생각이 잠시 스쳤을 뿐, 이런 미래를 기대하진 않았다.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엘리스처럼 생소하고 낯선 시간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 마주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시간들을 부정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 돼버렸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망가져 버린 듯한 나의 남은 시간이.


엄마가 진단을 받은 지 2년이 흘렀고 부정하고 싶은 시간은 야속하게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차곡차곡 기억을 지우는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듯했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어 별일 아닌 것만 같은 망각과 인지저하는 빠르게 쌓여갔으며 그와 비례해 나의 불행과 우울도 소리 없이 깊어지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각각 고립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나는 그런 엄마로부터 고립되었다.


엄마와 함께 살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아도 되었을 수없이 헤아릴 수 없는 소용돌이치는 감정들과 싸워 이겨내야 하거나 적어도 버티어내야 했다.

그저 기억을 조금 못하는 것뿐인데 무엇이 그리 힘들단 말인가 의문을 품는 시선에 화가 났고, 기억력만 나빠졌을 뿐 늘 해왔던 일상의 삶이 문제없이 이어질 거라 믿어버리는 폭력적인 확신과 의도적인 무관심에 분노가 일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결국엔 나를 향했다.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환자에게 모든 관심이 쏠리므로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가족은 관심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자연스럽게 밀려난 보호자가 환자 돌봄의 주체가 되나 정작 주변의 무관심으로 외면당하는 정서와 고독한 책임감에 자신도 잠재적 환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이다.

그런 마음의 병을 앓고 나서야 이길 수 없는 돌봄의 시간과의 싸움을 마치게 되지만 또 다른 환자가 돼버린 자신은 정작 타인으로부터 돌봄을 받을 수가 없는 처지임을 깨닫게 된다.


아마 어쩌면 이 시험의 순간들이 쌓여가는 시간은 나의 가치관을, 나의 태도를,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지 모르겠다. 객관식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주관식 논술로 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착각 속에 하루하루를 겪어내고 있다. 답은 명확한데 풀이 과정이 다른 해법으로 답에 이르는 과정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정답의 끝을 인정하지 않은 채 어떻게든 버텨야 할 이유를 찾아 써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돌봄이라는 언어는 이제 본연의 따스함을 잃어버린 부담감만 남은 무거운 언어가 되어버린 듯했다.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순수한 단어가 아니라 기피의 대상이 되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관심을 가지고 약자를 보살핀다는 애정 어린 의미는 이미 퇴색되어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한 비즈니스 축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다.

사회 제도적 장치로 돌봄의 영역과 대상은 행정시스템으로 체계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반면, 가족 돌봄의 문제들은 오롯이 가족단위 안에서 각개전투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엄마를 살뜰히 잘 돌보는 효녀가 될 자신이 없으며, 돌봄을 미화할 생각도 돌봄의 주체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저 이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피하지도 매정하게 외면하지도 못하는 보통의 가족 일원이었으며, 결혼하지 않고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표 없이 반장이 된 것처럼 어느새 그 주체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원치 않았겠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돌봄의 무게를 견디어야 하는 수많은 싱글족들의 삶은 화려한 무지갯빛이 아닌 폭풍우 치는 잿빛 바다와 같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런 시간을 부정하는 것 말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내가 살길이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음 챙김의 숙제를 매일매일 하지 않으면 숨쉬기 버거울 때가 많았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합리화된 편리함을 선택하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평범함의 강력한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내 삶의 대가는 녹록지 않았다.

차츰 돌봄으로 인한 방황의 시간이 잦아지자 무기력의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과연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영혼에 집중하여 정서적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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