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르다는 것의 숨은 의미

이방인

by 지으다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이유가 없다.

이유를 찾아 변명할 길이 없다. 어쩌다 보니 그냥 그렇게 됐다고 무심하게 답할 뿐이다.

그리고 나보다 더 불편해하며 할 말을 잃은 그들의 침묵과, 안도감과 우월감이 뒤섞여 관리가 안 되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어쩌라고' 피식 웃음이 난다.


반세기 이상을 살다 보면 혼자 산다는 것은 고백하고 싶지도 자백당하고 싶지도 않은 불문율이 될 뿐이다.

어쩌다가 혼자 산다는 것이 외로움과 고독사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는지 씁쓸할 따름이다.

고독은 독립심이나 자립심으로 순화되기도 하지만 자유의 음지 같은 면이 있어 누구도 고독을 추앙하진 않는다.


여성으로 건축이라는 직업을 선택해 수십 년을 종사해 오면서 아무 대비 없이 이방인으로 간주되는 무형의 폭력적 반응에 노출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십수 년 전, 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발주처 담당자와 회의가 있어 참석했었다.

첫 대면이라 서로 얼굴을 모르는 상태였고 나는 나와 연배가 비슷한 팀장과 함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발주처 담당자는 나를 지나쳐 동행한 팀장에게 손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순간 팀장이 무안해하며 "아, 제가 아니고 이분이 소장님이십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다음 순간이 더 가관이었다.


" 아니, 여자가 건축사를 왜 따 가지고 남자들 밥그릇을 뺏고 그러세요? "


지금이라면 무례한 그 말에 대차게 쏘아붙이겠지만 그 당시 새내기 소장이었던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순간 머뭇거렸다. 회의고 나발이고 무슨 의미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냐 바로 따졌어야 하는데 그 순간이 두고두고 아쉽기만 하다.


명색이 내로라하는 예술을 한다는 조직의 구성원의 뇌에서 나올법한 말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그 순간 나의 뇌도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표정이 굳은 나를 보고 담당자는 " 농담입니다 허허 "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회의를 이어갔지만, 그날 회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날리 만무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연일 야근이 많은 직업인지라 새벽에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하던 중, 택시 기사님과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게 되었다.

" 무슨 일을 하시길래 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퇴근하세요? 애들은 어떻게 하고요? "

" 건축설계를 하고 있는데요, 애들은 없어요 "

" 애들이 없다면 아직 결혼을 안 했나요? 결혼도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집을 설계합니까? "

" ....헐 "


택시요금이 늘더라도 기사님과 새벽 공기를 가르는 썰전을 펼쳤어야 할까, 뭐라 반박할 새도 없이 집에 다다른 택시에서 어이없이 내리며 길가의 애꿎은 돌멩이만 걷어차고 돌아왔다.


이런 경험들은 평범의 테두리를 벗어난다는 것이 환대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강제로 상기시킨다.

상처받지 않으려 멘털강화 주문을 외거나 투명망토 같은 보호막을 둘러쳐보지만 왠지 늘 지는 싸움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열리지 않는 성문밖에 서있는 이방인의 모습처럼 말이다.


건축설계 시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 법률 중에는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이 법은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과 설비를 이용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이들의 사회활동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법들은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 없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통합과 복지 증진에 기여함을 목표로 한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공공건축물이나 공공시설에 녹아들어 있는 이 법은 과연 법의 정의로운 취지대로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을까? 나는 법의 테두리에서 정한 사회적 약자의 범위 안에 속하지 않는 평범한 다수인척 착각하고 살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많은 무리에 속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포괄적 의미가 더욱 확대되고 다양화될 것이며 고독이 점차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할 것이다.


남과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반갑지 않은 이방인의 모습으로 여기지 않고 약자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지 않을 때 비로소 건축법으로 강제로 정하지 않아도 스스로 선택한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될 것이다. 환대와 보호를 기대하지 않아도 냉대와 침해가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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