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청소를 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건물 청소 혹은 계단 청소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여놓은 레이나 봉고차들.
차 문을 열면 청소용품들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동네에 있는 3,4층짜리 주택들의 계단 청소를 해주며 돈을 법니다.
건물당 한 달에 10-20만 원 정도.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는데 땅값 비싼 동네가 더 비쌉니다.
하는 일은 주차장 쓸기, 계단 물걸레질하기, 유리창틀 닦기 그리고 쓰레기장 정리하기.
일주일에 두 번이냐 세 번이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르지만..
한 번 왔다 가는데 대략 1만 원 좀 넘게 받아간다 생각하면 됩니다.
이 사업은 한 동네에서 최대한 촘촘하게 일을 수주함으로써 경쟁력이 생깁니다.
이동 시간을 줄여야 하니까.
차를 한 번만 주차하고 그 주위 건물들 모두 내가 청소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것.
그렇게 되기 위해서 당연히 그들 간의 경쟁이 있습니다.
집집마다.. 건물 현관 유리에 건물 청소 스티커를 붙여놓고 다니며 광고를 합니다.
이걸 본 다른 업체는 원래 걸 떼어내고 자기 걸 붙이기 바쁩니다.
(하아... 남의 집 현관문에 뭐 하는 짓들이냐)
개인이 하는 게 아니라.. 중간에 중개업체가 있고 이들이 청소하는 개인에게 수수료를 받으며 일을 나눠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곳은 자기 구역을 뺏아가는 개인 청소업체에게 위협을 가하며 자리를 지키는듯해 보입니다.
(80년대 깡패처럼)
아무튼 개인이든 업체든 할 것 없이.. 이들과 일을 해보게 되면 답답함을 많이 느낍니다.
무엇보다 답답한 것은... 일을 맡기면 첫날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것.
업체를 바꾸고 나면 첫날에는 기가 막히게 청소를 합니다.
락스도 뿌리고 창틀도 다 닦고 아주 만족스럽게 청소해 줍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거래를 트고 나면.. 그때부터 하루하루 달라집니다.
너무 노골적으로 달라져서.. 민망할 정도.
나중에는 차만 대고 건물 안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쓰레기 정리만 하고 5분 내에 바로 떠납니다.
아니, 5분 도 아니고 한 3분?
(CCTV로 다 보인다...)
집주인들이 계단 청소 해주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게 뭘까요?
매일 첫날과 똑같이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것?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런 걸 기대하는 집주인은 없을 겁니다. 그건 도둑놈 심보죠.
쓰레기 정리 잘해주고, 건물 안에 들어와서 살펴보면서 계단에 물 걸레질 한 번 해주고.
거미줄 안 생길 정도로 관리해 주는 정도면 됩니다.
이 정도만 해줘도 일 잘한다는 소리 들을 겁니다.
돈을 주고 청소 업체를 쓰고 있음에도 내가 거미줄을 쳐내고 있으면...
한숨이 푹푹 나옵니다.
하지만 다른 업체로 바꿔도 며칠 지나면 똑같은 걸.
계속 업체만 바꾸며 살아야 하나?
그러니 그냥 울며 겨자 먹기로 지낼 수밖에.
답답하면 직접 하든가.
제가 계단 청소 사업을 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습니다.
* 쓰레기장 정리와 복도 물걸레질은 빠지지 않고 합니다.
* 가는 날마다 특정한 장소 한 곳을 찍어 5분 정도 시간을 들여 청소합니다. 창틀이라던지, 옥상이라던지.
* 청소한 특정 장소는 사진을 찍어 남깁니다.
* 물걸레질을 하며 1층부터 옥상까지 한 번 둘러보며 건물 내에 이상한 점이 있는지도 체크합니다.
* 이상하다 싶은 점이 있으면 역시 사진을 찍습니다.
* 건물 청소가 끝나고 떠나기 전에 건물 전체 사진을 한 번 찍습니다.
* 청소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건물주에게 사진을 보내줍니다.
5분 정도 특정한 곳을 집중 청소해 주고, 사진으로 기록을 매번 남긴다는 것 빼고는 대단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별것 없음에도 건물주들은 충분히 만족하고 저를 신뢰해 줄 겁니다.
겨우 이 정도로 일해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신뢰가 쌓이면 가격도 올릴 수 있고, 계약을 길게 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나 말고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사진들은 잘 정리해서 당근마켓 동네 생활에 한 번씩 올립니다.
오늘은 이렇게 청소를 했어요.
피곤하지만 뿌듯한 하루였네요.
제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연락 주세요.
연락이 올까 안 올까?
꽤 올 것 같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 일해도...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건물 청소에 대해 아내와 대화하다가 답답해서 글을 적어봤는데...
글을 적으며 예전에 찍어둔 사진을 꺼내 보니..
갑자기 그들의 고충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 10포대 가까이 정리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그분.
사람 취급 못 받는 느낌을 받으며 일을 하면 얼마나 열받고 억울할까요?
역시 돈 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첫날만 빡세게 청소하고 나머지는 눈치만 보며 대충 하는 업체들은 시장에서 잘 퇴출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네요.
열심히 땀 흘리는 사람들이 그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