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본 우리나라에서 가보고 싶은 도시 1, 2위를 항상 다투고 있는 지역은?
바로 해남과 울릉도.
저 또한 해남이 가보고 싶은 곳 1순위였습니다.
해남이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할머니 때문.
어릴 때 저를 키워주셨던 지금은 92세가 된 할머니의 고향 땅 해남.
도대체 어떤 곳에서 자라셨을까?
할머니가 기억을 더 잃기 전에 고향 땅을 구경시켜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모와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3대가 함께 하는 여행.
해남이 멀긴 멀더군요. 말 그대로 땅끝 마을.
운전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와 씨, 우리나라가 이렇게 컸나?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땅끝 마을과 멀지 않은 송지면의 한 마을.
송지시장이라는 곳 바로 앞 골목. 할머니가 태어난 곳이랍니다.
송지시장은 지금은 리모델링 중이더군요.
여기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할머니는, 6.25 전쟁 즈음 (아마도 4.3 사건으로 추측) 남매들 중 한 명이 빨갱이가 되어 사살당하고, 죽지 않기 위해 재산을 다 내 다 버리고 남은 가족들이 해남의 송지면이란 곳으로 도망쳤다고 합니다.
며칠 동안 온 가족이 걸어서 이동했다고 하네요.
오빠가 동굴 안에서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 기분은 어땠을까?
하루아침에 빨갱이의 가족으로 몰려서 다 내버리고 도망쳐야만 하는 기분은 어땠을까?
빨갱이가 된 오빠가 원망스러웠을까, 이념 싸움 따위를 하며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 원망스러웠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 상상이 되질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가 며칠 밤낮을 걸어온 산이면의 한 마을.
할머니는 기억을 잘 못하시다가 옆에 흐르는 개천 물을 보고 기억을 하시더라고요. 바로 여기서 빨래를 했었다고.
이곳에서 친척들 일을 도와주며 살다가 할아버지와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다 하네요.
우리 할머니는 어린 시절 이런 곳에서 자랐었구나.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바뀐 것이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사람도 거의 살지 않고 빈집들만 남아있는 땅.
한 인간의 일생이란 이런 것이구나. 참 짧다.
더 행복하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삶을 즐기며 살아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밥은 산이면에서 먹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꽤 유명한 맛집이 있어서 들어가 봤습니다.
할머니도 고모도 좋아하시고 저도 엄청 맛있게 먹었어요.
돌아오는 길도 엄청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그래서 덕분에 어젯밤에는 9시간이나 푹 잤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속에 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뤘네요.
할머니의 마음도 고모의 마음도 시원하겠죠?
기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