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나의 집은 삶의 기억이 묻어있는 곳이었다.

by 다채로um

나는 집이 내가 머무는 공간 그 이상도 아니라 생각했다.

현재 머무는 공간 그리고 재산의 의미 외에 의미는 생각하지 않았다.


팔꿈치 골절로 수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하던 날.

병원에서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침대 옆 개인 사물함 공간과 몸을 뉘일 침대 공간뿐이었다.

직사각형 공간에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나의 공간을 작은 상자에 욱여넣는 기분이 든다.

작은 상자 안에서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삶의 모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사라진다.

대부분은 신체의 고통을 덜기 위한 선택을 한이들로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해 좁은 공간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내려니 너무 답답했다.

누군가 나의 입과 코를 막은 것도 아닌데 아님 산소조차 공기방울이 되어버리는 물속도 아닌데 숨쉬기가 버거워졌다.

온몸의 털이 주뼛선다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수술실은 꺼림칙한 장소였다.

수술실의 사람들에게는 일상이지만 간간히 들리는 의학용어들과 농담조의 말투에서 안정감보다는 불안함을 더 느끼게 하였다.

나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기에 칼을 대는 선택을 한 것에 대한 무게감보다 수술실의 그들의 행동 말투에서는 무게감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마취도 되지 않았는데 수술을 시작한다는 말에 내가 한 선택에 의문이 들던 순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전신마취라는 선택으로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의 팔에는 진한 수술의 흔적이 나 있었다.

빈속에 타는듯한 갈증과 울렁거림 그리고 쇠망치로 두드리는 듯 묵직한 팔의 고통이 나를 괴롭혔다.

오후 4시부터 그다음 날 12시까지 힘겨워하다 약을 바꾸고 차츰 나의 패턴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나는 회복되어갔다.

병원에서 3일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께 퇴원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로 회복된 나는 다음날 퇴원 허가를 받았다.

집으로 오자 온전한 나의 흔적들이 나를 반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매일 보던 의자와 창문 밖 풍경까지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반갑다.

이곳이 이렇게나 안정감을 주는 장소라는 걸 나는 잠깐의 바깥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마치 고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그네라면 이런 비슷한 기분이었을까?

생각보다 집의 이곳저곳의 나의 흔적이 진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아무 말 없이 집안을 보고만 있었다.

집의 흔적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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