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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leehan May 24. 2018

강변 살자



그들은 강가에 산다  
그 곳이 강의 북쪽이건 남쪽이건 그들은 강가에 있다  
둥근 뚜껑 지붕 집이 있는 우리나라 높은 분들이 계신 작은 섬 주변으로부터 힘이 뻗쳐 나갔겠지
아주 예로부터 내가 사는 이 곳 서울은  
남북을 가로질러 건너 가든 동서로 강변을 따라 가게 되든 도시의 노른자로 가는 길에
내가 멋을 찾으러 가는 그곳은 강의 북쪽이건 남쪽이건 그들은 오목조목 강변에 붙어 있다  



내가 최근에 사랑했던 물건이나 음식 또는 사람 따위의 모든 것들이 물가에 살았다
감각과 예술은 풍요가 낳는 잉여 생산물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걸 단숨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름답고 선진적인 것들은 모두 강가에 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강가를 쫓고 있었다


누가 듣기에 웃기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요즘엔 주로 한남대교 동작대교 성수대교 마포대교 같은 다리를 건너면서 강을 마주 본 창을 내고 우뚝 서 있는 고층 아파트들을 보면서 꼭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 세계는 젖은 땅 위에 높은 발판을 쌓아올리고서는 너도 나도 물을 보겠노라고 빽빽하게 마주보고 서서는 비켜주질 않는 것이다 서울은 크고 복잡해서 강이 있는 지도 모르고 사는 곳도 있을텐데 이대로는 정말 정말 누군가는 서울에 강이 있는지도 모를건가보다 생각을 했다  



다리를 건너가다보면 그 일이 아주 적나라 하게 물 위에 비칠 때가 있다 서울은 다시금 언젠가 해발고도가 아닌 지상을 기준으로 새로이 등고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디에 어떤 사람이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며 살고 있는지 자본주의가 허공에 짓고 있는 땅 위에 쌓이는 또다른 땅의 높이를 재야 할 것이다. 지하를 기준으로도 등고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땅 속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누가 누굴 밟고 서 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라고 나는 속으로 속으로만 또 생각을 생각만 했다
그래봤자 나도 소시민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4대 문명의 탄생지를 손가락 접어 줄줄 외우던 때가 있었다 예로부터 귀하고 값진 것들은 물가에서 범람하던 곳에서의 의식주의 풍요가 기반이었다. 남은 곡식을 저장하면서부터 빈부의 존재가 시작된 것이다. 네 아버지도 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증조할아버지까지도 줄곧 대를 이어 뒤주에 곡식을 채워가며 물가에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사는 이 동네도 과거 한양에서 왕이 살던 궁전이 커져 버린 형태 중 하나의 덩어리 일 뿐이다  




내가 잠시 함께했던 어떤 아이는 할아버지가 북쪽에서 건너온 어른이시라 했다 그 어른을 말할때마다 울먹이던 그 아이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묻지 않아서 끝까지 말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  


너가 태어나면서부터 너는 귀한 것이 되었지  
너는 태어나보니 범람이 잦던 금싸라기 같은 비옥한 강변 땅이 너의 자리가 되었다 그 땅에서 어머니의 젖을 물고 또 그 땅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그 땅에서 나는 음식들을 먹고 그 땅에서 어른들이 주로 읽는 신문을 읽고 그 땅에서 파는 책을 읽었겠지  


너는 너와 너의 핏줄이 강변에 살아온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눈을 떠 몇발짝만 움직이면 저 멀리로나마 물길이 보였겠지 어떤 날은 빠르게 흐르고 어떤 날은 느리게 흐르는 그 물줄기의 풍경이 기억하는 어린시절부터 있었던 그냥 지워지지 않는 벽지무늬 속 얼룩 같은 뻔하고 오래된 것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너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주 많은 일들이 누군가는 죽어서도 이룰 수 없는 꿈의 범람인 것이다


누군가의 삶은 그렇게 생을 끝내고 대를 물려가면서 꿈도 가난과 함께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말하는 것들은 네 일이 아닐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동경하고 좋아했다 나의 일을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가볍고 뒤탈이 없다 그때부터였다 그들의 풍요에 끼어드는건 아주 쉽고 재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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