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방법
“여보, 이번 주 토요일이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야!”
“알고 있었지! 내가 모를까 봐서 말해준 거야?”
“아니, 비싼 선물 하지 말라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야.”
남편은 기념일을 잘 챙기는 편이다. 해외에 있던 그는 우리가 서로 안 지 2주 후 장미꽃을 보냈다. 그가 보낸 꽃을 받고서야 그날이 로즈데이(5/14)라는 걸 알았다. 원거리 커플이었지만 만난 지 100일, 200일, 생일, 밸런타인데이 등 그는 다양한 종류의 꽃을 나에게 보냈고 우린 큰 어려움 없이 연애를 지속했다. 나중에 알지만, 그는 꼼꼼하게 금액 대비 질을 비교하기보다 예쁘고 마음에 드는 걸 고르는 타입이었다. 결혼 후에도 종종 큰 꽃다발을 내게 안겨주곤 했는데, 친한 후배가 예전에 했던 말에 공감이 됐다.
“언니, 결혼하니까 비싼 거 사주는 것도 싫다.
주머니 사정 뻔히 아니까, 어차피 한 집, 같은 주머니잖아요.”
직장을 접고 해외로 오면서 프리랜서가 됐다. 내가 버는 돈은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지 못했고, 가정 경제의 책임은 남편이 맡았다. 결국, 그의 수입이 우리 가정의 형편, 한 주머니를 차게 된 것이다. 결혼 후 우린 각자 용돈을 정하여 쓰고 있었는데, 기념일을 맞아 그가 본인의 용돈을 쪼개가면서 큰 선물을 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꽃이라면 꽃집이 아닌 슈퍼에서 파는 다섯 송이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기념일을 위해 용돈 외에 별도로 1인당 2,000루블(약3만원)의 추가 예산을 계획했고, 그 안에서 서로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 상대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건 흥미로웠다. 마침 할인행사를 하던 의류 매장에서 그를 위한 얇은 니트와 양말 한 켤레를 샀다. 그의 선물은 내가 전에 지나가듯 말했던 립스틱이었다. 그런데 그가 쭈뼛쭈뼛하며 또 하나의 선물을 꺼냈다.
“사실은 자기가 이걸 원하나 싶어서... 오늘 이것도 샀어.”
“앗? 이게 뭐야?”
그가 꺼낸 건 다양한 종류의 뒤집개, 국자가 한 세트로 있는 주방용품이었다. 전날 퇴근하던 그를 만나 함께 식기, 주방용품을 보러 갔는데, “와, 이거 좋아 보인다. 그치?” 라고 한 나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그는 이미 준비한 선물(립스틱)이 아닌 혹시 이걸 원하는 거였을까 싶어서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하하, 미안해. 내가 너무 감탄했구나. 다음부턴 헷갈리지 않게 조심할게요.”
“마지막에 헷갈렸다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 보고 싶으니까.”
혼자 추측하며 애태웠을 그의 마음이 애틋하고, 고맙고, 미안해서 그를 꼭 안아주었다. 금액을 정하여 선물을 준비한 이벤트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제 우리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방법을 하나 정했다. 비싸고 좋은 선물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건 상대를 향한 따뜻한 말 한마디, 마음을 써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해 우리는 기념일마다 서로에게 카드를 쓴다. 크리스마스엔 첫 데이트를 했던 카페에서 카드를 교환하고, 여행을 마칠 때에도 그 나라에서 산 엽서에 여행의 기록, 서로의 마음을 담는다.
두 번째로 맞은 작년 결혼기념일엔 ‘2’를 주제로 함께 그림 카드를 만들었다. 취미로 함께 색연필 그림을 그리는 부부, 그가 그린 카드엔 나란히 놓인 기차의 두 좌석이, 나의 카드엔 튤립 두 송이가 피었다. 함께하는 햇수가 더할수록 우리의 카드에 어떤 그림이 등장할까? 차곡차곡 카드가 쌓이고 그 안의 쓰인 글자수의 합이 늘어나며 함께 나이 들겠지. 혹시나 서로가 미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상자 속 카드를 꺼내 읽으며, 흔들리는 사랑을 다시 한번 톡톡 마음 깊이 심어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의 세 번째 결혼 기념일.
코로나로 인하여 예상보다 길어진 그의 해외 출장에, 우리는 5개월째 서로 떨어져 있다 산책길, 길가에 가득한 세잎 클로버를 보면서 그와 함께할 일상의 행복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