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마쿠라 | 하토 사브레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돌며 따스한 바람에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던 어느 봄날, 일본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주말에 같이 가마쿠라에 가지 않을래?"
"가마쿠라! 갈래! 가보고 싶었어!"
농구를 하는 것도, 보는 것도 즐기지 않아도 만화 '슬램덩크'는 좋아했다. 아주 어린 시절 친구가 학교에 가져온 만화책을 보며, 정대만과 강백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두근두근 했었으니까. 작은 단행본으로 되어있던 만화를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이후에 그 만화의 주요 배경이 '가마쿠라' 란 걸 알고 일본 워킹홀리데이의 위시리스트에 적었다.
집 근처 미타카 역에서 전철로 약 1시간 30분, 가마쿠라는 일본의 가나가와현, 도쿄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루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 우리는 가마쿠라에 먼저 도착하여, 그곳에서만 탈 수 있는 에노덴(에노시마 전차)을 타기로 했다. 근처의 해 질 녘의 에노시마도 보고 오는 일정이었다.
도쿄에서 잠시 멀어졌을 뿐인데, 북적이는 시내 중심과 달리 아기자기한 집과 마을이 보였다. 집과 집 사이 철길을 달리는 에노덴 때문이었을까, 에노덴 1일권을 사서 해안가를 달리며 보는 풍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일본인 친구의 안내를 따라 <슬램덩크>의 유명한 명소인 <가마쿠라 코 고마에-가마쿠라 고교 앞>에 내려서 철길 건널목이 보이는 자리에 섰다. 저너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강백호와 소연이가 만났던 듯한데, 기억을 더듬어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교 때 수학여행에서 보던 경주의 불상보다 더 커 보이는 불상도 있었다. 파란 하늘, 따스한 햇살, 봄 냄새가 가득한 거리 곳곳에선 센베, 찹쌀떡과 같은 간식거리를 팔았다. 오미야게라고 쓰여있는 기념품 쿠키, 과자들이 있었다.
"가마쿠라에선 이 것을 먹어봐야 해."
친구가 건넨 커다란 비둘기 모양의 쿠키를 하나 받았다. 하토 사브레 (鳩サブレー)였다. 일본어로 하토는 비둘기니까, 비둘기 사브레라고 하면 될까. 밀가루와 버터, 계란을 주재료로 만든 쿠키, 1897년부터 있던 곳이라고 하니 100년도 훌쩍 넘은 곳이다. 일본엔 어쩌면 이리 오랫동안 전통을 이어온 곳들이 많을까. 심하게 바스락 거리지 않고, 딱딱하지 않으며 적당히 달콤한 쿠키. 실제로 만나는 비둘기는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쿠키로 만난 비둘기는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나는 셰어하우스의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토 사브레 한 박스를 샀다. 귀여운 건 함께 나누면 더 행복해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