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불가사리 Oct 30. 2022

나 홀로 룸서비스

스웨덴 | 미트볼 

홀로 하는 여행이 허전해진 건 언제부터였을까. 여행 전의 설렘도 좋지만, 여행 이후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맛이 더 즐거워졌기 때문일까. 결혼을 하니 이 마음이 좀 더 커졌다. 혼자 간 여행에서 맛있는 걸 먹으면 남편이 생각나고, 옷가게에서 그에게 어울릴 니트를 고른다. 

"아무래도 나의 출장의 기운이 당신에게 간 거 같아." 

결혼 후 갑작스레(!) 해외 출장이 많은 업무를 맡게 된 그에게 내가 말했다. 가족의 행사, 나의 생일, 결혼기념일마다 겹쳐버리는 그의 일정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론 내심 서운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해외에서의 삶, 모든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 남편뿐이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의 배려로 생일을 맞은 2월의 주말, 스웨덴 스톡홀름에 홀로 여행을 왔다. 

겨울의 북유럽은 러시아처럼 해가 짧았다. 싸늘한 날씨였지만 아기자기한 골목을 구경하고, 작은 소품들이 많은 가게, 문구점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에, 심지어 세븐일레븐이 있다니! 낯익은 편의점 간판을 보고 반가워서, 한국이나 일본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시가지와 주요 행정기관이 모여있다는, 스톡홀름의 중심지 감라스탄 거리를 걷는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좋아하는 일러스트 작가님의 온라인 클래스를 들으며, 스웨덴의 집을 그린 적이 있는데 이제야 그림 속의 집이 이곳 거리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어린 시절 가위로 잘라서 가지고 놀던 종이인형을 발견했다. 스웨덴 아이들도 종이인형의 존재를 아는구나. 러시아의 마트료시카처럼, 스웨덴의 유명한 목각인형 달라 호스를 살펴보는 내게 가게의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달라 호스의 유래를 알고 있어요? 행복을 가져다주는 말이에요. 긴 겨울 땔감으로 쓰는 통나무 하나를 아빠가 깎아서 아이에게 만들어 주면서 시작되었지요." 

색색깔의 예쁜 달라 호스를 구경하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결국 달라 호스가 그려진 작은 천을 샀다. 해가 지는 거리를 거닐어 숙소로 오니 금세 밖이 캄캄해졌다. 남편과 통화하며 오늘 보고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긴장이 풀어지면서 허기가 느껴졌다. 당시 코로나는 중국에서 시작되고 있었고,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뉴스가 쏟아지던 때라 나도 모르게 종일 긴장을 했던 모양이다. 

룸 서비스를 시켜보기로 했다. 홀로 하는 여행에서 허용할 수 있는 작은 사치, 메뉴판을 보고 가격을 비교해 보니, 스웨덴의 비싼 물가는 밖의 식당과 큰 가격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트볼을 주문했다. 이후 만화영화에 보던 둥그런 양철 뚜껑으로 덮은 음식이 도착했다. 뚜껑을 열었더니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작고 귀여운 미트볼 6-7개와 으깬 감자, 오이, 링곤베리 잼이 함께 놓여있었다. 고기와 잼을 같이 먹는다는 건 여전히 생소한 문화지만, 이곳은 스웨덴이니까! 스웨덴 사람처럼 먹어보기로 한다. 으깬 감자는 부드러웠고, 미트볼과 붉은 링곤베리 잼은 묘하게 어울렸다. 맛있는 미트볼을 먹고 있으니, 남편이 생각났다. '아, 이거 우리 남편이 좋아할 맛인데....' 다음엔 꼭 스웨덴에 같이 오자고, 그때는 같이 식당에서 미트볼도 먹고 빨간색의 달라 호스 장식품 한 마리도 사자고 그에게 사진과 메시지를 남겼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럴 빠에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