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네가 후배에게 사주면 돼

끼니를 챙겨가며 일하던 막내의 나날들

by 불가사리

그녀는 나보다 3살 많았다. 상대를 어디에서 만나는지에 따라 부르는 호칭은 달라진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 과장님하고 이름 뒤에 직급이 붙는다. 그녀는 내게 S 언니였다. 내가 속한 곳에서 우리는 이름 또는 –언니라는 호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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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언니를 만난 곳은 여의도의 한 외주제작사였다. 나는 예능과 교양을 합친 KBS 신규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였다. 막내는 왜 막내인가. 일단 나이가 가장 어렸고, 가장 이른 출근과 가장 늦은 퇴근을 감행하며, 가장 빨리 전화를 받고, 또 가장 적은 돈을 받으면서 가장 성실하고 열정이 넘쳐야 한다. 여기 내게 추가로 요구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방송의 제작은 A팀과 B팀으로 두 팀이 격주로 진행하지만, 나는 양 팀의 공동소유, 즉 유일무이한 막내였기에 양쪽 팀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야 했다. 방송이 없는 때 그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때가 나에겐 거의 없다는 말이다.


온종일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전화를 돌렸다. 전국 각지에 보물처럼 숨겨진 ‘농촌 총각’을 찾아내야 한다. 당시 프로그램에는 농촌 총각 맞선 코너가 있었고, 나는 매일 아침 각 시, 도, 군청에 협조 공문을 보낸 후 각 마을의 노인회장, 마을 이장, 청년회장 순으로 통화를 했다. 먼저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인 노인회장에게 문안을 올리는 것으로 다른 방송 프로그램과 달리 예의를 갖춘 이들임을 알린다. 운이 좋으면 일사천리로 섭외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노인회장의 표현에 의하면 ‘멀쩡하지만 너무 착한 나머지 부득이하게 혼기를 놓친 안타까운 마을 총각’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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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보물 찾기는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어머님, 호호호 그러셨구나. 네...” 장가를 가지 못한 아들에 대한 안타까운 어머니의 마음을 들으며 더 많은 정보를 취재해야 한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도끼눈을 한 메인 작가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논은 몇 평 이래? 소도 있대? 과수원은? ” 아뿔싸- 그런 것도 물어봐야 하는구나. 한 번의 통화로 완벽한 취재란 참 어려웠다. 그녀의 질문에 비어있는 답이 많을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졌다. 점심시간 전에 섭외가 완벽하게 끝나는 날은 거의 없었다. 일찍 출근한 나는 가장 먼저 배가 고팠고, 12시면 정확하게 배꼽시계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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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밥 먹고 하자.” 서브 작가*인 S 언니가 말했다.

(*작가 시스템은 메인 작가-서브 작가-막내 작가 순이다)


“언니, 저 아직 메인 작가 언니가 말한 거 다 못했어요.”


“야,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밥 먹고 와서 하자.”


S 언니는 조금 전에 출근한 메인 작가 언니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언니, 우리 밥 먹고 올게요. 그리고 언니가 부탁한 거 오전 내내 알아봤는데....”


S 언니는 오전 내내 내가 했던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 전화를 어디 어디에 했고, 몇 번의 거절을 당했는지, 또박 또박한 말투로 너무 과하지 않게 나의 오전 업무 (라고 쓰고 삽질이라고 읽는다)를 상세히 전달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나를 대신하여 잘 이야기해줬다. 놀라웠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잘 이야기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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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언니는 매일 아침 영어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보통의 직장인들을 위한 새벽반인 탓에 그녀는 늘 나와 비슷한 시간에 사무실에 나왔다. 대부분의 서브 작가 언니들이 10시 반. 메인 작가 언니가 11시 반쯤 오는 것과 달리 9시면 사무실에 왔다. 나는 궁금한 것은 언니에게 물었고, 더 자세한 취재는 언니가 직접 하는 일도 많았다. 섭외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마음이 갑자기 변해 다시 출연자를 찾아야 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S 언니는 당황하거나, 화를 내 거나,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출근한 다른 언니들이 일하느라 바빴지만, S 언니는 나의, 우리의 끼니를 성실하게 꼬박꼬박 챙겼다. 그리고 늘 먼저 지갑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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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진짜 오늘은 제가 낼게요.”

“야, 됐어. 얼마나 번다고- 나중에 네가 후배한테 사줘. 그러면 돼.”



당시 나의 월급은 120만 원. 서브 작가가 되어보니 언니의 월급도 나와 아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막내를 벗어나 나도 언니가 되고, 이직하면서 – 과장이 되어 내게도 후배들이 생겼다. 자신이 한 일을 보고하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여자 후배들을 보면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당장 눈앞의 일이 벅차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일하는 이는 곧 그날의 나 같았다. 한숨을 돌릴 때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건강을 챙기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내가 한 일의 과정을 보고하는 것이 업무의 공유이며, 바른길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S 언니가 챙겨준 끼니엔 많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수많은 끼니들은 빚진 마음으로 내게 차곡차곡 쌓였다. 그 마음으로 나는 후배들에게 먼저 지갑을 열었다. 미래에 또 누군가가 내가 받았던 따뜻한 마음을 더 크게 받게 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