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평가에 갇힌 날
나와 여동생은 연년생이다. 우리는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한 나와 달리, 여동생은 눈에 띄게 공부를 잘하는 영재였다. 늘 친가에 가면 여동생은 대화의 대화의 중심에 섰다.
“이번에 전교에서 1등 했다고?”
“머리가 참 좋아. 아빠를 쏙 빼닮았어.”
“(손으로 삼각형을 그리며) S대 가야지!”
나는 그림자처럼 말이 없어졌다. 얌전하고 조용한 첫째 딸.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의 나였다. 우리는 자주 비교의 대상이 되었지만, 서로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다. 한 살 터울의 자매는 많은 즐거움과 슬픔을 나누고, 부모님에 대한 불만도 공유하는 가까운 사이였다.
여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면서, 엄마는 내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순서대로 가는 게 좋은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짝이 있으면 먼저 가는 거지.”
여동생의 결혼식을 앞두고, 내가 두려웠던 건 친가 친척들과의 만남이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눈에 보듯 뻔했다. 서른이 훌쩍 넘어도 비교의 말은 익숙하지 않다. 표정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어떤 말로 답을 해야할까. 상상하는 것으로 피로가 몰려왔다. 예상대로 수많은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어쩌니, 동생이 먼저가서...”
“너도 어서 분발해야지.”
피할 수 없는 폭우였다. 이미 흠뻑 젖어버린 마음의 나를 달래며, 겉으로 태연한 척 미소 지었다. 한 살 터울 자매의 운명이다. 성별이 같은 형제, 자매라면 한 번쯤 겪는 일이다. 1년 후, 여동생은 엄마가 됐다. 친구의 아이보다 여동생이 낳은 딸은 비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조용했던 가족 채팅창은 쉬지 않고 울렸다. 숨을 쉬고, 눈만 깜박거려도, 사랑스럽고 사랑받는 아이. 첫 조카를 보며,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받았던 사랑’ 에 대해 생각했다. 장남인 아빠가 낳은 첫 딸, 나 또한 친가에서 첫 손녀였다. 두 해가 지나 여동생은 딸을 낳았고, 두 살 터울의 자매를 둔 엄마가 됐다.
“언니, 내가 둘을 키워보니 이해하게 됐어.”
“무엇을?”
“어렸을 때 친가에서는 나를, 외가에서는 언니를 더 예뻐했잖아. 얘네도 그렇다?”
애교가 많고 눈치가 빠른 둘째는 친가에서, 혼자 있고 책을 좋아하는 첫째는 외가에서 더 사랑을 받는다고 했다.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 비교하는 두 조카를 보며 우리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동생보다 커도 내 눈엔 여전히 아이인 첫 조카를 보며, 일 년 만에 언니가 되버린 그 때의 나를 본다. ‘네가 언니니까...’ 로 시작하는 모든 말은 희생이 아닌, 더 많은 시간의 사랑을 받은 존재임을 깨닫는다.
동영상 속 두 조카는 손으로 주먹밥을 만들었다. 엄마인 여동생이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유튜브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대사를 한다. 각자 만든 주먹밥을 엄마에게 내민다. 서로 맛을 물어본다.
“주먹밥 맛이 어떤가요?”
“멸치가 있어서 씹히는 맛이 좋고 고소해요. 최고예요.”
엄마의 칭찬을 받은 첫째 조카, 자신의 언니를 보고 있던 둘째 조카가 자신의 주먹밥을 엄마에게 건네려다가, 손에 들고 입을 삐쭉거리며 말한다.
“요리와 그림은 일등이 없어요. 취향이 다른 거예요.”
여섯 살 조카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오랫동안 움츠려있던 내 안의 작은 아이를 위로한다. 그래. 일등은 없지, 접하는 이의 취향이 다를 뿐이야. 평가의 그물에 갇혀 좌절감이 드는 날, 조카의 말을 생각한다. 어떤 이의 취향이 나를 평가할 수 없다. 세상에 완벽한 일등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