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함께 모스크바에 오다.
나는 모스동에 살고 있다. 서울 망원동(洞)처럼, 모스크바의 한국 교민들은 이곳을 모스동(洞)이라고 부른다. 그 말에 따스함이 느껴졌다. ‘모스크바’ 하면 종일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풍경이 떠오르지만, ‘모스동’은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작은 동네가 생각났다.
사실 ‘동’이라는 행정구역명은 모스크바와 어울리지 않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고, 수도인 모스크바의 면적은 서울의 14배다. 서울의 나는 오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걸어서 시청광장을 지나 명동에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남대문시장에 들러 꽃을 사서 집에 걸어오기도 하지만, 넓은 모스크바에선 장소 이동에 도보가 아닌 교통수단이 필수다.
그곳도 여름이 있니?
일 년 내내 눈이 오나? 추울 거 같은데 따뜻한 옷 많이 챙겨.
안전한 거 맞지? 거리에 스킨헤드가 많다던데?
결혼과 함께 모스크바로 간다고 한 내게 친구들의 걱정과 질문이 한 바탕 쏟아졌다. 내게도 모스크바는 생소한 나라다. 다른 시차, 바다 건너 나라에 살던 그와 내가 부부가 되기로 하면서 한 명이 거주지를 바꾸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 문화권에서 자란 그 보다, 내가 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더 나을 거라고, 감히 (그때의) 나는 믿었다. 인도와 일본에서 1년씩 살았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대륙으로 출장을 다니며 내가 배운 것은 ‘세계 어느 곳이나 다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스스로 거주지를 바꾸는 데 큰 고민은 없었다.
2018년 6월, 모스크바 세레메체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갓 시작된 러시아 월드컵으로 공항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살갗이 뜨겁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이민 가방을 싣고 출발하는데, 마침 차의 에어컨도 고장이 났다. ‘아, 아프리카 같다.’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창문을 살짝 열고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저게 러시아의 자작나무야. 겨울에 눈이 오면 더 예뻐.
마치 담양의 대나무 숲처럼 곧고, 그보다 하늘과 더 가깝게 하얀 몸을 뻗은 자작나무 숲들이 도로 양옆으로 한 참 이어졌다.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초록 잎의 자작나무들이 아름다웠다. 삼십 여분을 달리니, 그제야 사람이 사는 곳의 풍경이 보였다. 높은 아파트, 거대한 쇼핑센터, 크고 높은 옥외광고판의 슈퍼마켓 소개에 눈길이 갔다. 그림처럼 보이는 저 글자는 러시아어다. 나는 천천히 알파벳을 짚었다. ‘말.... 라...’ 모두 읽기 전에 금세 다른 광고로 바뀌어 버렸다. 드디어 모스크바에 왔다. 일주일 전 우리는 서울 연희동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는데, 이제 러시아 모스동에서 새로운 살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