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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Nov 26. 2020

다시 스웨덴에 갈 수 있을까?

2020.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

마스크 없는 마지막 여행은 올해 2월, '스웨덴 스톡홀름’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은 생일, 남편은 싱가포르 출장을 가게 됐다. 나 홀로 모스크바에 두는 게 미안했던 그는 내게 여행을 제안했다.


© nicolegeri, 출처 Unsplash


“스웨덴은 가까우니까.”
“중국 코로나로 유럽에서 아시아인 차별이 있다던데 괜찮을까?
“여행은 일단 갈 수 있을 때 가는 거야.”

남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중국에서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 19는 전 세계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어떤 이는 지금 우리는 전쟁을 겪고 있는 것과 같다며, 이 시기엔 어딘가로 떠날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가족을, 건강을, 일상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2020년 2월 7일, 생일날 아침에 떠난 2박 3일의 스웨덴 스톡홀름은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 jbrinkhorst, 출처 Unsplash


음력 1월 3일인 생일은 늘 그 해의 설날(구정) 전후에 걸렸다. 어느 해는, 설 연휴에 딱 걸리곤 하는데, 그때는 종종 홀로 여행을 떠났다. 큰 집인 우리 집에 온 친척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좋은 소식’을 물어오지 못한 제비가 된 심정이라고 할까. 나는 한 마리의 제비처럼 하늘을 가르며 다른 나라로 향했다.


오랜만의 나 홀로 여행이었다. 스웨덴의 알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해, 공항철도를 타고 숙소가 있는 시내로 왔다. 속살을 드러낸 아스팔트 바닥이 반갑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눈으로 덮여, 맨바닥의 땅을 밟는 것은 오랜만이라 낯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 산책에 나섰다. 고개를 들어 잿빛이 아닌 파란 하늘을 보니 답답했던 눈과 마음이 뻥 뚫렸다.

‘출장 중인 그에겐 왠지 미안하지만, 역시 오길 잘했어.’


2020년 2월 7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파란하늘의 낮 과 예쁜 노을이 멋진 오후


여름의 나라에 있는 남편에게 이 곳의 풍경사진과 함께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카페마다 ‘FIKA’라고 쓰인 입간판들이 보인다. FIKA 피카는 스웨덴어로 ‘커피 브레이크’, ‘티타임’이라는 뜻이다. 바쁜 일상에서의 커피 한잔의 여유, ‘피카’ 문화는 이 곳의 당연한 일상이다. 하루에 한두 번, 직장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로 정해져 있다. 문득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들어오면, 도끼눈을 하던 옛 회사의 팀장님이 생각났다. 그니까, 왜 항상 홀로 사무실에서 점심을 드셔서, 우리가 점심도 편하게 못 먹게... 휴.  다시 정신을 차리고 ‘피카’를 위해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갔다.


스웨덴의 거리에는 FIKA 라고 쓰여진 입간판들이 눈에 띤다. 직원이 추천해준 겨울 디저트 셈라.


“맛있는 디저트를 추천해줄 수 있나요?”
“셈라(Semla) 먹어 봤어요?”
“스웨덴은 처음이에요.”
“겨울에 맛보는 전통 디저트예요.”

친절한 직원의 추천을 받아, 커피와 셈라를 주문했다. 처음 본 셈라는 뚱뚱한 크림빵처럼 생겼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40일 동안 금식을 하는 사순절의 시작, 하루 전 ‘재의 화요일’에 배가 든든하도록 셈라를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칼로리가 어마어마한 모양이다. (그만큼 맛있겠지?) 모양을 내서 꽉꽉 채워진 생크림 위로 살짝 덮인 빵 뚜껑이, 겨울의 베레모처럼 보였다. 이 귀여운 걸 어떻게 먹지? 포크로 생크림을 쿡 찍어서 맛보았다.

‘헉. 맛있다. 이 세상의 맛이 아니군.’


귀엽고 맛있는 셈라. 잊지 못하는 달콤한 맛.



빨리빨리의 나라에서 온 한민족은 눈 깜짝할 사이 커피와 셈라를 해치웠다. 스웨덴의 첫인상이 좋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옛 도시 풍경이 살아있는 감라스탄을 걷고, 마음에 드는 작은 샵들을 구경했다. 거리 광장에는 꽃 시장이 열렸다. 양동이마다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튤립이 가득 꽂혔다. 10송이에 50 크로네. 한국 돈 6500원이다. 오늘은 생일이니까, 나를 위해 한 다발의 튤립을 샀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아름다웠던 감라스탄 거리.
스웨덴은 튤립천국. 한국에서는 비싼 튤립- 여기서는 10송이에 6500원, 작은 샵의 예쁜 조명들


튤립을 사서 숙소로 돌아오니 금세 밖은 어두워졌다.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두 시간, 두 시간 느린 이 곳에서 새로운 레이스를 준비할 시간도 벌었다. 보너스로 얻은 26시간의 생일. 자꾸 낮에 먹었던 ‘셈라’의 달콤한 생크림 맛이 혀끝에 감돌았다. 초콜릿 크림을 넣은 셈라도 있었는데.... 그에게 문자를 남겼다.
‘다음엔 같이 오자, 이 곳에 맛있는 게 너무 많아.’
‘응, 출장 끝나면 같이 계획 세우자.’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찍은 예쁜 튤립 :)


우리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사진을 보며, 그 날의 공기와 바람, 달콤했던 디저트의 맛을 떠올린다. 모스크바에 살면서 가까운 나라가 된 유럽.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여행의 사진 속 벼룩시장, 귀여운 소품,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작은 말 소품, 다음을 기약하며 사진만 찍어둔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  

‘그때의 나야. 사진 속에 보이는 저 그릇은 왜 사지 않았니? 아무리 마음을 먹고, 시간과 돈이 있어도, 여행을 갈 수 없게 되는 때가 온단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하나로 꼽는, 스톡홀름 도서관
스웨덴의 어린이도 종이인형을 알겠구나. 자르기 쉬운 동작의 종이인형. (한 세트 살 걸 그랬어.)
예쁜 촛대들과 일요일의 벼룩시장, 다양하게 쌓여있던 예쁜 그릇과 컵들
스웨덴의 겨울, 어느 곳에서나 보이던 디저트 ‘셈라’ 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달라호스’

아, 다시 한번 스웨덴에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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