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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ug 06. 2019

널 데리고 오는 날

나의 C에게

널 데리고 오는 날, 정말 걱정이 많았지. 비행기는 처음이라 무사히 탈 수 있을까, 결혼하자마자 타국에 살게 된 딸을 보겠다고, 1년 만에 부모님이 함께 오지 않았다면- 나 홀로 너를 안고 비행기를 탈 생각은 하지 못했을 거야, 너와의 첫 비행을 앞두고 우리는 노심초사 걱정이 많았단다. 전날 밤 대한항공 고객센터에 2번이나 전화를 하고, 확인을 거듭 받았지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몰라.



기억나니, 네가 처음 비행기를 타던 날



너를 위해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어. 십여 년 전 월급을 털어, 도쿄 다이칸야마에서 산 갈색 가죽 긴 부츠 (긴 겨울의 추위를 견디며, 꾸민 듯 안 꾸민 듯 멋 부리기엔 이만한 것이 없는데)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한 권씩 사서 모아둔 마스다 미리 작가의 만화책들 (우울할 때 보면 최고인데).... 너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가장 우선순위로 내 품에 들어왔어. 우리는 당당하게 함께 비행기를 탔고, 너는 8시간 30분의 첫 장거리 비행에 아무런 탈 없이, 튼튼한 그 모습 그대로 우리 집에 왔단다.




반드시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너.


너는 매 순간 성실하게,

어떤 것이든 잘 품어 주었어.

네 품에 안기는 어떤 종류의 것이라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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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쿠쿠 Cuckoo ,

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네가 최고야.





한국말을 해서 더 좋은 우리 집 쿠쿠






결혼을 하고 첫 해는 남편이 쓰고 있던 전기밥솥 쿠쿠와 함께 했다. 동생의 결혼식이 있어 지난 5월,  잠시 한국에 갔을 때 엄마가 홈쇼핑에서 압력밥솥 쿠쿠를 주문했다. 비행기 짐으로 부치기엔 부담스럽고, 박스채 포장된 채로 안전하게 가져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기내 짐을 하나 줄여야 했다. 박스 포장이 기내에 들고 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떠나기 전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대한항공 고객센터에 전화했다. (24시간 상담을 하다니, 러시아라면 있을 수 없는 일! 너무 감사하면서 죄송한 마음) 2번이나 통화를 하고, 가능하다는 확답을 받았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도심공항터미널의 직원은 박스에 담긴 쿠쿠를 보더니, “이런 박스는 기내에 못 가지고 들어갈 텐데요. 규정이 그렇거든요. 일단 공항에 가서 확인해보세요.”라고 말했고, 노파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우리는 당당하게 출입국 심사를 통과했고, 공항직원도 갸웃갸웃했으나. 쿠쿠를 안은 아빠는 불안한 내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드디어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한 쿠쿠. 러시아의 모든 쌀도 콩도 쿠쿠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눈감고 먹으면) 여기는 한국 엄마 집이다! 예전 쿠쿠보다 사이즈도 커져서,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여러 번 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잘 들리지도 않는 러시아 방송을 들으며, 요리를 할 때 갑자기 한국어로 말하는 쿠쿠는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존재. 쿠쿠! 네가 없었더라면 정말, 어쩔 뻔했니. 우리 집 밥 맛, 나의 모스크바 부엌놀이는 압력솥 쿠쿠 전과 후로 나뉜다. (아, 쿠쿠 광고는 아니에요. 진짜 좋아서 씁니다.)


#노랗고파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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