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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Aug 11. 2019

너와의 첫 만남

나의 O 에게


우리는 왜 그동안 친해지지 못했을까? 넌 늘 가까이에 있었는데... 사실 나는 네가 많이 낯설었어. 아마도 우리의 언어가 달랐기 때문일 거야. 나는 생소한 그 언어를 지금까지 배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네 존재는 알고 있었어. 너를 먼저 만난 이들이 네 칭찬을 참 많이 했거든. “처음엔 친해지기 어려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쉽다”라고...


© artsyvibes, 출처 Unsplash


알고 보면 쉽다”는 말,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아줘. 수없이 들었던 그 말이 내 마음에 용기를 심어주었으니까. 네게 처음으로 말을 걸던 날, 네 언어를 찾기 위해 열심히 구글링을 했어. 많은 말을 알 필요는 없었지. 모든 만남은 가장 기본적인 인사말로 시작하니까. 네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 너를 기다리며 모든 준비를 마쳤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깊게 심호흡을 하고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어. 우리의 첫 만남, 내가 네게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야. 매일 너를 알아가는 그 시간이 즐거워.

너는 늘 가장 따뜻한 온도로
나를 맞아주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변치 않는 따뜻함으로
네안의 이와 대화를 나누지.

우리,

앞으로 더욱 친하게 지내자.

.

.

.

.

.



반가워. 나의 오븐 (oven)


늘 가까이에 있었지만 1년만에 처음으로 만난, 이케아 오븐




결혼하며 살게 된 집에는 빌트인 오븐이 있다. 한국에서 엄마는 늘 오븐 안에 큰 냄비, 프라이팬들을 넣었고, 지난 1년간 나의 오븐도 수납공간으로 쓰였다. 어느 날 카스텔라가 너무 먹고 싶었다. 많이 달지 않고, 부드럽고 촉촉한 카스텔라와 우유 한 잔. 구할 수 없다면 직접 만드는 수밖에, 피할 수 없이 오븐을 만나야 하는 때가 왔다.

그때 처음으로 오븐을 샅샅이 살폈다. 가운데는 시계, 오른쪽의 다이얼은 마이너스(-)와 플러스(+). 온도 조절이구나. 왼쪽 다이얼의 그림들(줄 그어진 것, 전구, 선풍기....)은 뭐지? 한국에 있는 오븐 전문가, 빵순이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SOS를 쳤다. “줄 그어진 것은 열선 표시, 예열은 보통 굽는 온도보다 10도 정도 높게, 문을 열 때 열기가 빠져 온도가 떨어지거든.” 친구는 늘 말했었다. “오븐이 처음엔 어려운데, 익숙해지면 쉬워.”

다행히도 나의 오븐은 인터넷에 친절한 사용설명서가 있었다. (이케아 사랑해요) 제품의 사용설명서를 읽는 것은, 첫 만남을 앞두고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분이 든다. 나는 가장 중요한 말(그림)을 찾아냈고, 처음으로 오븐과 인사를 나눴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오븐에 넣고 시간을 맞춘다. 그리고 알람이 울릴 때까지 앉아서 편하게 기다리면 된다. 와, 이건 신세계였다. 계속 서서 요리하며 불을 조절하고, 짬짬이 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오븐은 내게 휴식을 선물했다. 근사한 카스텔라, 머핀, 라자냐까지....! 이제라도 오븐을 만나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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