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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가사리 Sep 13. 2019

엄마의 두 번째 시월드

딸이라 미안해요


엄마와 통화를 했다. 올해도 시어머니는 친정 주소로 간고등어를 주문하셨다. 이번엔 엄마에게 미리 알렸다. 작년 추석 내 핸드폰으로 온 배달 알람 문자를 놓쳤고, 엄마는 이미 받아버린 후였다. 엄마는 본인이 먼저 챙기지 못한 것을 계속 마음에 걸려했다. 내가 따로 형님 댁으로 과일을 보내드렸으니 괜찮다고 말씀드렸음에도...


© hoanvokim, 출처 Unsplash


결혼은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결혼하지만, 또 그 집안과도 결혼하는 거야,”라고 친구는 늘 말했었다. 각자 다른 환경과 문화권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있다. 서로만 바라보며 사랑으로 결혼한다. 일평생 함께 하며 상대의 사랑의 언어를 배운다. 모든 말이 쓰인 알파벳 너머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듯, 서로 다른 뉘앙스와 문화가 있다. 아시아를 잘 모르는 서양인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모르듯, 생김새가 비슷해도, 같은 젓가락을 사용하더라도 놓는 위치, 그 쓰임새가 다를 수 있다. 부부가 된다는 건, 서로 다른 언어, 문화권을 가진 두 세계가 합쳐지는 것이다.


© NGDPhotoworks, 출처 Pixabay


시댁은 ‘무소식이 희소식’인 집이다. 막내인 남편을 빼고, 모두 일찍 결혼하여 독립했고, 해외에 흩어져 살았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한 곳에 모이는 날이 쉽지 않다. 각자 부르신 곳에서 정직하고, 건강하게 살아내렴, 너희끼리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잘 살면 된다는 분위기다. 나는 우리 집에서 첫째다. 나를 포함한 여동생 2명은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고, 막내 남동생만 집에 남았다. 우리 집은 ‘무소식은 무슨 일’인 집이다. 한창 자라는 조카들, 일상의 사진으로 가족 단톡 방은 쉬지 않는다. 해외에 있는 나는 매일 이모티콘 하나라도 남겨 생존신고를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때로는 지나치게 섬세하고, 앞서 상대를 배려한다.



통화 속 엄마는 예민했다. ‘왜 모두 내 말을 안 듣는 거지?’로 시작했다. 사건의 전말은 그랬다. 5월에 결혼한 막내 여동생의 시댁은 지방에 있다. 시부모님은 “차도 막히니, 이번에 내려오지 말아라. 곧 우리가 서울에 가니까”라고 했고, 엄마는 여동생에게 “반드시 꼭 내려가야 한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미 자매 단톡 방을 통해 알고 있는 이야기였고, 시월드의 가장 선배인 둘째 여동생이 결론을 내렸다. “그게 주위의 보는 눈, 말이 많아져서 그래. 버스 타고 내려갈게요.” 엄마는 냉큼 본인의 말을 듣지 않은 (과거의 모든 사건들까지) 모든 딸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쏟아냈다. 시차에 맞춰 걸은 오랜만의 안부전화는 급하게 종료됐다.


© miryam_leon, 출처 Unsplash


본인의 할 말만 하고 끊어버린 엄마는, 결국 30분도 안되어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내왔다. “내가 명절이 오니까, 예민해져서 그런가 봐-” 엄마는 큰 며느리였다. 명절의 엄마는 늘 분주했다. 나의 친할머니인 엄마의 시어머니는 돌아가신 지 한 참됐다. 서울로 이사 오면서, 명절이라 모든 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도 자연스레 사라지면서, 엄마의 시월드도 끝났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결혼한 딸들의 시댁이 엄마의 또 다른 시월드가 된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쓰인다. 자신의 딸에게 (바람에 흘려가 버릴 말이라도) 어떤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건, 자기에게 하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생각하는 엄마. ‘엄마, (이런 말 나도 참 싫은데.) 딸이라서 미안해, 이제 우리의 시월드는 우리가 스스로 살아낼게, 그동안 너무 많이 애썼어요.’라고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가는, 또 다른 여동생이 화를 입을까 싶어 마음속에 꼭꼭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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