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와 바위

우리가 서로를 부르는 애칭

by 불가사리

어렸을 때 나의 별명 ‘울보’였다. 언제부터 울보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내 기억에 남은 눈물은 아마 일곱 살쯤 되었을까. 동네 사진관에 엄마, 아빠, 여동생과 사진을 찍으러 갔다. 엄마는 말했다.


“입술을 넣어. 입을 내밀지 말고- ”


그때 나는 울기 직전이었나 보다. 어색하게 앙 다물어진 입은 사진에 그대로 찍혔다. 그 사진을 볼 때면, 그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왠지 분하고, 억울한 심정. 사진을 찍고 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성인이 되어 힘든 일을 겪은 후, 처음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모든 눈물에는 이유가 있어요.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요?”


우리의 눈물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나의 눈물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내겐 한 살, 여덟 살, 아홉 살 차이의 동생이 세 명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동화구연대회에 나가게 됐다. 그때 엄마는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있어, 대회 준비를 도와주지 못했다. 엄마를 통해 내 사정을 들은, 반 선생님은 나를 그녀의 아파트에 불렀다. 선생님의 집에서 1박 2일을 보내며 함께 동화구연대회를 준비했다.


“너는 정말 순한 아이였어.”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는 크게 떼를 쓰지 않는 아이였다. 동생에게 양보도 잘했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대신 많이 울었다.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못했고, 마음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밤이면 짜고 짠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지금의 남편과 처음 만난 날에도, 나는 울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거절이 아닌 완벽한 수용을 받았다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자기 내 앞에서 7번 울었어. (웃음)”

“그걸 다 세어봤어?”

“응. 만날 때마다 울었으니까.”


우리는 서로를 불가사리, 바위라고 부른다. 결혼 전 데이트 시절, 카카오에서 했던 심리테스트가 있었다. 나는 변화무쌍 불가사리였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어가는,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하는 ‘불가사리’ 그는 나의 성(lee)에 맞춰 ‘불가사 lee’라고 내 이름을 저장했다. 그는 무생물 바위였다. 흔들리는 법도, 무너지는 법도 없는 강직한 성격. 꼭 그와 닮아있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면, 그는 잠잠히 내게 티슈를 건넸고,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나의 눈물은 말하지 못한 나의 욕구의 표현이었다. 어린 ‘울보’의 눈물은 화, 서러움, 슬픔, 답답함.... 어떤 이유로든 속에서 꽁꽁 갇혀 밖으로 나오지 못한 나의 감정들이었다.


짜고 짠 눈물의 바다를 건너온 불가사리는 튼튼한 마음을 가진 바위를 만났다. 바위에 꼭 붙은 불가사리는, 이제 밀물과 썰물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바다에서 빠져나와 참지 않고 당당히 마음을 표현하는 법도 배운다. 모든 게 곁에 있는 바위 덕분이다. 고마워요. 나의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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