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보이의 로컬 생활기 #1
누군가가 내게 직업을 물어본다면 스스로를 '사회혁신을 위한 공익활동가' 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특별한 전문성도 없는것 같고 그저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달려가 곳곳에 머물며 최선을 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곳이 바로 머나먼 한반도 남쪽 끝자락, 태고의 자연을 품고 있는 곳. '전라남도 고흥'이다.
나는 서울에 가족들을 두고 한반도 땅끝 고흥에서 일을 하며 월 4,000km를 왕래하는 두 집(?) 살림살이 성실 이행자, ‘양다리 생활인구’이다.
특정 지역에 늘 거주하는 ‘정주인구’ 중심의 효율적이고 계획된 도시의 개념이 과거 도시설계의 주요한 방향이었다면, 현재는 ‘내가 좋아 자주 찾아가는 여행지, 거주지는 충남 천안이지만 일터는 서울,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도시’ 등 반드시 거주하지 않더라고 특별한 목적에 의해 특정 도시에 머무르는 자들을 통칭하는 개념의 ‘생활인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저출산과 초고령화, 인구소멸이라는 대한민국의 심각한 사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써도 점점 더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나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서울에 체류하는 ‘생활인구’인 동시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나의 자아성취와 현실적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삶터를 일궈나가며 고흥에 복무하는 ‘양다리 생활인구’인 샘이다.
‘정주인구’의 개념이 아닌 ‘생활인구’의 개념으로 고흥이라는 도시를 이해하고 상상해 본다면 ‘인구소멸지역 1위, 한반도 안의 또 다른 머나먼 땅끝 반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고흥만이 지닌 매력과 가능성을 바탕으로 관계·생활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획들이 떠오른다.
모든 도시와 지역은 이곳만이 지닌 역사와 문화, 자원 등 각기 다른 특성들이 어우러져 과거로부터 지금껏 존재해 왔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대부분의 지역들은 나름의 개성으로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어느 도시가 품격이 높고 낮고를 가늠할 수 없는 각각의 매력으로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문장에 대해 나 스스로를 늘 성찰하게 해 주었다.
고흥 또한 마찬가지이다. 고흥의 캐치 프레이즈가 ‘지붕 없는 미술관’인 것처럼 태고의 신비로운 대자연이 고흥 여러 곳곳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고 모순적이지만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을 지니고 있는 곳이 바로 고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흥은 자기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와 동료들 그리고 고흥을 방문해 봤던 수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고흥만의 특별함을 어떻게 ‘도시와 로컬’이라는 화두와 연결하여 고흥에 관계·생활인구의 유치로 연결할 수 있을까?
우리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의 1차 생활권인 취도-금사항 권역은 과거부터 수하식 생산 굴, 바지락, 갯장어 등 수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러한 자원들은 이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시그니처 자원으로서의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그니처화’ 되지는 못했다. 이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지역이 지닌 이야기와 역사, 가끔은 상상력을 더해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특별함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마을 현지에서 생산되는 싱싱하고 저렴한 먹거리와 전통음식들을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상품으로 고도화한다거나, 고흥에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하나의 방문 코스로 연결하여 싱싱한 해산물을 구입할 수 있게 연결하고 이러한 싱싱한 수산물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하고 맛볼 수 있는 ‘굴막 식당’, ‘굴 축제’ 등을 기획하여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며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한다. 이러한 아이템들을 통해 지역을 방문하는 생활인구를 꾸준히 늘려 지역의 팬층을 확보하여 생산과 개발과 유통과 소비가 지역 내에서 선순환되는 경제의 구조를 만들어 모든 이익이 지역과 지역민들에게 돌아가게끔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도전과 시도는 누가 주도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지역, 내가 자란 도시를 위해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어 지역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역 혁신가들, 지역 기업가들, 도시기획자들, 예산을 가진 행정이 이러한 일들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우리 어촌신활력앵커조직 또한 이러한 혁신적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 조직이다. 지역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이를 링커조직들과 협력하여 이들이 새로운 창조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게 촉진하고, 현장에서 주민들과 관계하고 신뢰를 쌓아 이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들을 모으고 연결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총괄 기획하는 역할. 이것이 바로 우리 앵커조직이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다만 과거의 도시계획과 같은 일률적이고 대규모 마스터플랜의 방식이 아닌,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 소규모의 실험과 다양한 도전들을 통해 도출된 작은 결과들이 축적되어 지역의 고유성을 지켜가며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기 이전에 본래 지역이 지닌 문화와 전통, 주민들의 삶에 대해 존중이 바탕된 활동가들의 태도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