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오후 3:21
지난해 말 매체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도 북한 관련 이슈는 계속 기록을 해나갈 생각이었습니다. 대선 직전까지는 그런대로 이어지다가 그뒤 끊겨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군요.
그 사이 일이 좀 있었습니다. 출판사 측과 접촉이 이뤄져 그동안 써온 기사들을 정리를 좀 해보자는 얘기가 진행됐습니다. 처음에는 현재에 필요한 기사들 위주로 생각을 하다 일이 좀 커졌습니다. 제가 시사저널에 입사해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게 89년 10월 경부터입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동유럽 격변, 걸프전쟁,그리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남북 고위급 회담 등 탈냉전의 격변이 시작된 때였지요. 21세기가 그때 시작됐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때부터 따져보니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7개 정권을 거쳤더군요. 매년 200자 원고지로 약 1000매 정도씩 쓴 거 같습니다. 초기에 기특부 사회부 2년, 또 시사인 국장 2년 등 한반도 기사로는 누락된 시기도 있으나 주간지 포맷으로 참 오랫동안 끈질기게 매달려 온 셈이지요.
시사인 후배들도 그렇고 사외 출판사에서도 그동안 출판 제안이 없지 않았으나 솔직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퇴직도 했고, 정권이 교체됐는데
과거 정권의 익숙한 인물들이 컴백하는 모습을 보니 더이상 앞만 보고 갈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지켜보며 느낀 것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 실현되지 못한 정책이나 구상일수록 때되면 반드시 다시 나온다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고 또 흩어진 기록을 모아놓을 필요가 있겠다 싶더군요.
그래도 아직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니 여유는 있어 보입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을 되돌아보면 지금 어디쯤 와있구나 하는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이명박정부 초기를 특징짓는 것은 '말'이었습니다.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참 많은 말을 쏟아냈지요. 2007년 대선 직후 12월20일의 대선 축하 기자회견, 그리고 1월20일 또 한차례 기자회견 통해 이명박 당선인과 주변의 참모들이 참 많은 말들을 쏟아냈지요.
당시 북한의 반응은 몇단계로 나눠집니다. 대선 당시만 해도 북은 이명박씨에 대해 나름 기대를 했었지요. 2007년 7월 당시 한나라당이 발표한 신대북정책이 비핵화를 전제하긴 했으나 북한개발에 대해 매우 적극적 적인 입장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비핵화라 하면 2007년 2.13,10.3 합의 등을 통해 북도 성의를 보였으니 해볼만 하다고 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선 끝나고 당선인 주변에서 기존의 남북관계를 폄하하는 많은 얘기들이 흘러나오면서 북의 기대감도 사라져갑니다. 급기야 김정일이 3월1일, 당시만 해도 그렇게 싫어하던 중국 대사관(평양주재)을 방문해 중국의 쌀 지원에 감사를 표하고 4월1일 노동신문에 10년만에 처음으로 남한의 국가원수를 향해 '역도'라는 표현이 등장하면서 남북관계는 끝장납니다.
국가간의 관계는 사실 말로 이루어집니다. 특히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말은 빼도박도 못하기 때문에 주의해야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상대방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은 사인간의 관계에도 치명적이라는 점은 각오하고 해야겠지요.
그런데 우리 보수정부들은 전임 정부들이 북에 대해 할말을 못해왔다는 비판을 대중들에게 많이 하다보니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쎈말을 많이 합니다. 상대의 역린을 건드리는 말들도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합니다. 그러고 나면 관계는 거기서 끝나버립니다.
김영삼 정부 이명박 정부가 그런 예를 보여줬는데 새로 등장할 윤석렬 정부도 이미 만만치가 않습니다. 한번 날잡아서 윤석렬 당선인의 북한 관련 발언들을 후보적부터 쭉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생각 보다 아주 많은 어록을 남겼더군요. 그중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말도 있었지요. 사인간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방은 어떤 상태가 될까요. 그래? 어디 고쳐봐라.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요. 요즘 핵무기도 선제 사용할 수 있다고 떠드는 김정은을 보며 한반도 상황이 전례없을 정도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푸틴이 하루아침에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격전을 감행하리라고 누가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요. 우크라이니 사태는 냉전 이후 국제사회에 존재했던 금기가 깨졌음을 보여줍니다.
북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사드 배치를 비롯해 불필요한 어록을 많이 남겼지요. 그냥 넘어가려다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북중관계는 내밀하기 때문에 밖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중에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기 때문에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억제하려 할 거다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입니다. 정답은 북의 도발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면 뒤에서 식량을 대줘서라도 고무할 거고 미국의 압박 등으로 부담스러워지면 자제를 시킬 거라는 점입니다.
지난해 상황은 제가 여러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4월과 10월 북은 중국의 지원을 기대하고 대규모 도발을 기획했다가 시진핑이 대만 문제를 앞세운 미국의 압력 앞에 주춤하는 바람에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지요.
올해는 어떨까요. 제 판단은 이렇습니다. 지금 중국이나 북이나 새로 등장할 윤 정부를 테스트하기 위한 공조에 들어갔다는 것이지요. 두가지 사례를 들고자 합니다. 3월24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ICBM을 발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3월25일 윤당선인과 시진핑 주석간의 통화가 이뤄졌습니다. 국내 언론들이 당선인 신분으로 최단기간 내 통화가 이뤄졌다며 호들갑을 떨었는데 통화 시점이 너무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요. 그래서 통화 날자가 정해진 경위를 찾아보니 중국 쪽에서 날자를 잡기위해 서둘렀다고 하더군요. 더이상 자세한 경위는 모르겠으나 여러가지 가능한 시나리오 중 시진핑과 통화 날자 잡아놓고 북이 날자맞춰 ICBM 발사라는 대규모 도발을 감행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빼놓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북이 ICBM 발사한 다음날 한국의 새당선인과 통화하면 그것만으로도 뽑아낼 정보가 무궁무진하겠지요. 윤당선인이 보여준 그동안의 결기로 보자면 통화날자를 미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5월1일부터 중국의 류샤오밍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한하여 현정부뿐 아니라 인수위의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다니는 시점에 맞춰 북이 미사일을 쏜 거지요. 우연일까요? 중국의 존재감이 뿜뿜하는 시점에 맞춰 발사를 해준 건데 이런 우연이 자꾸 발생할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런 얘기 하는 이유는, 다 알아서 하시겠지만 인수위에 계신 새정부 팀들이 중국 사람들에게 쪽 팔리는 모습 보이지 말기를 바래서입니다. 우리끼리 서로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다른쪽에서 뭐라고 하면 솔직히 기분 나쁩니다.
사실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앞으로 눈 앞을 현혹시키는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 정부는 예전의 텍스트가 있기 때문에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 판단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