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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욱래 Jul 13. 2024

1장

김욱래 중편소설 연재

                                           살기 위해…….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이 실재한다면 그건 여전히 그랬지만, 닭고기 냉동 탑차 일도 일견 이번에는 ‘섹시하다’할 수 있을 노동 분야라고 그는 생각했다. 벌크(Bulk) 플라스틱 궤짝 하나에 12에서 15kg. 차갑고 다들 탱탱했다. 죽어 발가벗겨진 허옇고 벌건 덤벨들을 잡아 올리고 내리고 들고 나르고 끌다 보면 아랫배 지방부터 탄다. 고장 난 허리는 뻐근 대더라도 나잇살은 어쩔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부위, 부위 여러 근육을 쓰면서 땀을 내니 군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연신 트럭으로 오르락내리락해서 넙다리도 훨씬 탄탄해진 느낌이었다. 미군 작업모 시늉을 낸, 튀튀한 싸구려 껌정 모자 밑으로 맘대로 뻗쳐 흐르는, 이리 내버려 두면 몇 달씩은 자를 필요가 없는 머리칼은 또 어떠냐. 땀에 젖어서 어깨 아래까지 들러붙는다. 야생적이고도 할 수 있을 터다. 늙었더라도 아직은 말 몸 같군……. 그는 생각했다. 

  온 몸뚱어리를 써야 하는 일, 꽤 관능이 있는 듯했다. 이리 말없이 할 수 있을 관능 있는 노동의 종류가 여럿일 것인가, 그는 세어보았다. 어디 큰 데 샐러리맨? 무슨 의사? 아니면 변호사? 교수? 그런 종자들은 이미 그 동작들 자체서부터 그다지 섹시할 리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스트레스란 말이지, 그는 속으로 말했다. 배때기에 기름만 켜켜이 찌우는―……삼겹살 말이다. 가끔씩 구우면 맛은 있지―거다, 남잔 늙어도 엉덩이, 옆구리 같은 데 뭉실뭉실하면 못 쓰는 거다. 투실투실 부은 인생, 난 그리는 안 산다. 

  빤들거리는 정치인은? 세상에서 제일 재수 없는 인종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자기 자체가 없는……. 몸을 써서 사는 삶! 맞다. 그게 꽤 섹시한 직군인 게 확실하다.

  ‘이렇게 마지막 작별이라면……’

  제품 상자를 내리어 쌓으면서, 플라스틱 궤짝을 끌어내면서 음, 음, 거리며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유도 변명도 듣지 않겠다. 너도 나만큼은 괴로워하면서 이별 끝에 왔을 테니까……’

  그는 마디마다 희한하게 딱딱 꺾어지는 그 여가수의 창법을 속으로라도 구사해보려고 신경을 썼지만 잘 되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그는 그 여자의 테이프를 일곱 개나 가지고 있었다. 아무거나 하나씩 틀어놓고 방에 드러누웠던 때부터 많은 시간 여러 여자와 작별을 해왔었다. 떠나간 여자들이 지금 자신의 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다행스러웠다. 어떻게든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건 옳았었다. 자신이 그렇게 여자들을 사랑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느꼈다. 인생, 어차피 별 볼 것 없지 않으냐……. 

  원체 그는 여름을 힘겨워했다. 그런데 올해는 징조가 나은 것 같았다. 한 해가 또 흘러 가버렸고 군살도 더 줄어들었다. 그는 초여름의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졌다. 땀이 났다가도 대리점 냉장창고 안이나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은 트럭 운전석, 마트의 냉장진열대나 냉동코너 앞에서 움직이다 보면 외려 서늘했다. 이상하게 그는 이번 여름은 뜨겁지 않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하지 못하고 접어놓았지만 이제 자신은 어느 만큼은 숙련되어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잠시 멈춰둔다고 다 어디로 가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상 자의식의 과민은 힘들었었다. 일단은 얼마간 거리를 두고 몸과 머릿속을 좀 추스르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예전보다는 좀 여유가 생겼다고 그는 생각했다. 

  더없이 어리석고 불쌍한 인간아……. 지난겨울 가끔씩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학교 급식 자재 차 일을 잡은 것이 그 기사가 나온 다음이었는지, 일을 시작한 다음에 기사를 들었는지 그는 잘 생각나지 않았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뭣도 분명하게 생각 나지가 않았다. 그때, 어쩌다 보면 그는 가끔 그 강남 사내 생각이 났다. 겨울엔 그는 그리 언 땅에 맥 놓고 주저앉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석 달, 그는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쌍꺼풀진 하얀 진돗개 한 마리 키우는 것도 영 산책시켜 주지를 못 했다. 무슨 혈통 증명서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지만 나름 인정받게끔 살았던 여자―상당한 대학을 나와 뽑혔고, 그 인사가 유력 대통령 후보에 이를 때까지 꽤 오랜 세월을 보좌했다고 했다. 연설문을 주로 작성했다고 그랬다―의 선물인 데다가, 또 들은 바로는 커오면서 두상도 팔각으로 잡힌 것도 맞았는데 몽골 기병의 만도 모양 힘차게 휘어 올라간 칼 꼬리가 무조건 순종이었다. 그 활발한 둘째 딸내미―세 살짜리 암컷이었다―를 집 주차장에 가둬두기만 했던 것에 그는 가책을 가졌던 기억이 났다. 캄캄한 네 시부터 몸뚱이를 일으켜야 하는 건 역시 큰 고역이었다. 일이 끝나 돌아와도 당최 피곤만 할 뿐 쓸 데 있을 것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피곤하면 영 머릿속도 돌지를 않았다. 한때는 은거와 비밀, 음모의 공작실이었던 자신 다락방에서 오후 잠깐 쪼가리 잠을 자다 눈을 뜨면 팔다리가 몸통에서 분리라도 될 듯 연결 부위들이 작신거렸다. 늙은 말 또한 그리 느낄 것인가. 말은 네 다리 중 하나라도 못 쓰면 폐기된다. 그는 그런 삭신이 불안스러웠다. 이내 측은해지다가 우울했다. 노곤한 기를 도시 빼내지 못하게끔 되어버린 자기 몸뚱이가 그는 두려웠다. 그런 몸뚱이로 여전히 부딪혀 내야 할 삶이 두려웠다. 

  11시 반에 마쳐야 하는 일―그는 그렇게 듣고 들어갔었다―이 12시 반, 나중엔 오후 두 시께까지 무슨 파트타임 일이 엿가락처럼 아홉 시간으로 쭉쭉 늘어지는데 자기 사정은 접어버리고 그는 부아가 쳐 올랐다. 아르바이트를 젊은 애들이 짧게 줄여 ‘알바’라고 한다. 그는 아르바이트란 용어도, 어떤 용어를 짧게 줄이는 행태도 마뜩잖았다. 낱말도 두어 글자로 줄여 쓸 만큼 겨우 저희 시간이 뭐가 그리 귀하고 중하단 말인가. 대개가 의미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는 정작 그 나라에서는 일, 또는 노동을 뜻한다. 이상하게도 그 나라에서 그것에 해당하는 말은 Jop―영어단어다―이다. 영어권 나라들에서는 그와 같은 시간제 근무를 파트타임 잡(Part-time jop), 전일제 근무는 풀타임 잡(Full-time jop)이라 하는데 아무튼 말이 이상하게 변형되어 들어오는 것이다. 

  뻘겋고 걸쭉한 토마토주스 페트 두 병을 사 들고 작년에 석 달 일했던 닭고기 유통 대리점을 찾아간 것은 아무튼 잘한 일이었다. 

  “오래 해야 된다고 처음부터는 사장님께서 말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는 작년에 쑥 빠져나갔던 것을 그렇게 변명했다. 다시 하게 되면 최소한 6개월은 붙어있을 생각이었다. 시간제 노예 생활. 집 담보로 또 돈을 그만치 대출받아 쓴 것이다. 응분의 부자유. 사는 죗값을 치러야 했다. 그는 말은 이렇게 해야 했다.     

  “이젠 월세도 내야 하고, 이번엔 일 년은 해야지요.”

  그 난체하는 학교 영양사들 등쌀에다가―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었지만―쭉쭉 늘어지는 작업보다야 시간 마련에서든 스트레스 면에서든 훨씬 나을 거라고 그는 판단했었다. 

  “한 삼 년 해야지. 쟤 봐.”

  점주가 발목까지의 길고 흰 인조가죽 앞치마로 싸고 있는 예전부터의 그 사내를 돌아보았다.

  “너, 십 년 넘었지?”

  점주가 말했다. 생활정보지를 봤던 터라 그새 기사가 들어오진 않았으리란 것은 그가 알고 있었다. 머리도 써야 해서 그다지 수월한 일은 아니었다. 작년보다 30분 일찍 나와야 했고 그가 물어보니 보수는 조금 올려놓았다. 

  “한 달에 두 번 되나?”

  붙어있는지 10년 넘었고 부장이라는 직함―거의 대외용이었다―을 달고 있는 그 사내와 격주로 교대하면서 일요일 역시 마트에 물건을 깔라는 말이었다. 사가서 해 먹는 입들이야 휴일에 더 많은 것이다. 두 살 많은 점주는 특이하게 동그스름한 눈을 한동안 껌뻑껌뻑하고 있었다.

  “……저는, 한 번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아뿔싸! 이런 제기랄. 일요일엔 못 한다고 할 걸 괜히……. 그는 금방 후회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점주에게 허를 찔린 것이었다. 이번에는 주말 이틀은 뺄 계획이었었다. 시간이 긴요했다. 

  거의 밀린 잠만 자야 했지만, 급식 차 일도 주말 이틀은 쉬었었다. 한 달에 삼 일 풀려난다고……? 역시 지금은 주 5일제라야 해.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지만 어째 볼 도리가 없었다. 

  “내일부터 나와, 그럼.”

  점주가 채근했고 자신은 그건 이틀 뒤로 미룰 수 있었다.




  떠가며 흩어지는 사유의 어느 조각구름―아무거라도―한 끄트머리를 잡아 끌어내려 묵연히 반추한다. 한참 동안 그리 운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는 돈푼과는 관계없이 괜찮았다. 나이를 먹으니 그는 대개가 재미가 없었다. 대부분이 우울한 것이다. 그래도 그런 조용한 시간은 삶을 보내온 후의 어떤 맛이 느껴졌다. 예전에는 어떤 기쁨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고 무진 애를 써 봤었지만 어떻게 해도 그럴 수가 없었었다. 이젠 그런 짓들도 꽤 전에 포기한 바가 되었다. 간혹 씩 이전에 지내오던 생각이 들면 덜컥 그는 어깻죽지부터 중량 많이 나가는 피로감에 눌리는 듯했다. 

  남의 일은 역시 남의 지갑 돈으로 기름을 써서 좋았다. 내 차엔 휘발유 한 번 편하게 넣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꽤 오래전부터의 그 셀프주유소. 넣어야 유량 밑바닥 등에서 10L였다. 그는 매 차례 잊어버리고 그 금액이 찍혔을 영수증을 뽑아내지 않았다. 차를 몰고 나올 때야 생각이 나서 기분에 그늘이 졌지만, 젠장……. 그는 생각했다. 어떤 인간이 그 종이쪽지를 뽑아 본들 뭘 어쩔 것인가.             

  번호판도 몇 번 떼였다. 건물, 주택, 토지에 대한 재산세 미납, 자동차세 미납, 주정차 위반 과태료 미납, 미납, 미납……. 뭔 뭔 압류통지서. 자기 차일 진 데 자유란 없었다. 

  이 C 시를 어느 정도 벗어나다가 U 시 언저리까지의 쭉 뻗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평일엔 거의 차가 없다. 그는 담배를 붙여 물고 조수석 차창을 조금 내렸다. 담배도 너무 비싼 세상이다. 피우던 담배는 올해부터 4,500원씩. 신용카드로 계산해야 할 금액이었다. 그는 신용카드로 계산했다. 신용카드로 산 담배를 예전처럼 그는 함부로 피울 수가 없었다. ‘노가다’ 일은 특히 그게 있어야 한다. 땀에 젖은 몇 모금의 시간이. 또, 사유도 해 보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생활에 담배는 요긴했다. 

  옛날이지……. 그는 떠올렸다. 20년쯤 되었다. 그때는 컨트리클럽 캐디 월수가 150만 원, 오마 샤리프 한 갑이 천 원이었나. 지금은 캐디 보수가 400만 원쯤 된다 하니 담뱃값은 2,500원에서 더 비싸도 이천 칠팔 백 원대가 맞지 않나, 하고 언뜻 그는 계산해보았다. 작년까지는 대충 맞았었다. 제길, 정부는 엄청난 담뱃세로 손쉽게 떼돈을 버는데 나는 카드로 사서 태워야 한다니 지랄 맞은 세상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그는 두 번째 개비의 불똥을 끊어내고 그 반 동가리를 다시 갑에 집어넣었다. 




  멈춰 놓은 것과 함께 미완을 포함해서 그는 지방의 이 쪼그만 C 시를 몇 번 그렸다.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을 것인가. 그는 가끔 그 문제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 소도시를 ‘촌 동네’라 불렀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디를 그려야만 할 것인가……. 

  무심코 옛 여자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었다. 아내와 한동안 싫은 소리를 하고 난 뒤 한두 잔 쓴 술을 머금을 때, 그럴 때 자주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은. 얼마쯤 취해 알코올성 치매 증상을 스스로 의심하며 그는 생각했다. 같이 못 살게 된 이유가 있었겠지, 아니 있었을 거야. 지금이 최선을 다한 거야. 그는 그렇게 가슴을 누그러뜨렸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에게서 무슨 인간미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는 태생적으로 자신은 이 동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방인이었다. 지역적 이방인이 안 된다면 자신은 정신적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길거리마다 멀찍하게라도 맞대야 하는 뚱한 얼굴들, 손해라도 본 듯한 표정들, 괜히 억울한 듯한 인상들……. 말 쓰임새들도 하나같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떡하지 못하고 자신은 이제껏 이 동네에서 살아야 했다. 

  그는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여러 번 그는 이 동네의 흐름에 대해 반동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준비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형편이 안 되면 일부러 내어서 이방인같이 뵈는 이들에게 친절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심적 태세가 어찌 감을 잡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촌길’ 이러쿵저러쿵 설명하기도 귀찮았다. 

  “따라오세요.”

  그 흔하디흔한 내비게이션도 없는 차들도 아직 많은가 보다고 그럴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앞장서서 부러 자기 기름을 태우면서 에스코트했다. 그런 외지인 같은 사람이 이 동네에는 너무 후한 선입견을 갖게끔 되는 문제도 있을 수는 있었다. 보인다고 언제나 다는 아니다.

  그는 지난봄 쌀쌀한 밤 언제는 나라의 표정도 대표한 적이 있었다. 문을 걸려는 목욕탕에서 막 나서는데 매표소 앞 아무래도 이상한 한국어의 초로의 사내가 멀뚱한 낯빛으로 서성이고만 있었다. 추레한 겨울옷에 키는 작달막했는데 퉁퉁한 몸집이었다. 불우함……. 그는 그 냄새를 맡았다. 

  “의심하지 말아요. 나는 나쁜 사람 아닙니다.”

  초로의 추레한 남자는 일거리를 찾아 이 촌 동네까지 내려온 몽골인이었다. 

  “친절하세요, 선생님.”

  차 뒷자리에서 늙은 이방인이 말했다. 퉁퉁하고 추레한 외국 사내는 경계가 가시지 않는 눈빛으로도 불우하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추레한 옷가지의 대륙 사람이 하룻밤 잠자리 값과 거의 마찬가지인 택시를 타지 않고는 어떤 길로 24시간 하는 찜질방을 찾을 수 있겠는가. 몇 마디 말로 떠들어 주는 것 하나 마나 한 짓이었다. 

  “비행기 표 비싸지 않나요?””

  그는 자못 그게 궁금했다. 

  “아니요, 선생님. 칠십만 원 정도밖에 안 해요.”

  “왕복이요?”

  “예, 왕복이요.”

  어떤 비행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라면 그는 진짜로 한 번 몽골을 가보고 싶었다. 

  “큰 데도 아니고 돈 벌 게 있어요, 여기?”

  “있겠지요. 찾아봐야죠, 선생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동네에선 꽤 높다랗고 번듯한 찜질방 건물 환한 불빛 아래 내려서면서 그 대륙 사람이 인사했다. 

  하지만 그는 이 촌 도시 사람들과의 연계에 있어선 어떤 의례적인 예의 나부랭이는 전연 쓸데없다고 생각했다. 뭐든, 사람 간의 연계 속에서일 뿐이라면 인간은 어느 때든 자유로울 수 없다. 밤거리 아무 데나 걸터앉아 한참씩 무심하게 달을 올려다 볼 수 없는 것이다. 쓰고 살 돈을 구해오라고, 밥만 먹어서 살 수 있냐는 여자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엄동 황무지의 한 마리 이리보다도 못한 존재.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몽골 사람은 어디서 일하면서 잘 돈 벌고 있을까. 그는 생각했다. 몽골……. 겹겹이 철책으로 위가 막히고 빙 둘러서는 바다에 포위된 섬나라에서 그는 끝 모를 대초원 위를 불어댈 서늘할 바람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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