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기억

《마틴 에덴Martin Eden》을 읽다가

by 김욱래

불현듯 1996년이 가슴속에서 밀고 올라왔다. 그해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이태 전, 나는 내 생의 목적이었던 작가가 되려고 봄이 오기도 전에 생에 처음으로 사업장을 차렸던 터였다. 그러니까 26세부터 한 사업장의 대표가 되었던 것이다. 오후 1시 반쯤 시작해서 밤 9시 전에는 끝나는 업무라 오전 시간에는 여유 있게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남들은 모두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던 때라 주 5일만 사업장을 열면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괜찮았다. 그만큼 나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나는 너무 젊었으며, 그 젊음으로 인해 너무 큰 상처를 갖게 되었고, 그만큼 방황했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방을 얻기로 했었는데, 그래서 좀 더 편한 잠을 자고, 전화를 다시 놓고, 빈약한 살림을 꾸려가며 밥을 먹기보다는 이게 좋을 것 같다. ― 1996년의 기록


막상 방을 알아볼 의욕도 나지 않았고, 또한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던 나는 시골 본가에서 쓰던 내 방에서 책장과 책들을 옮겨와 꽂아놓고 사업장의 사무실 바닥에서 살기 시작했다. 나는 많이 잤다. 어느 날 그 바닥에서 눈을 떴을 때 이런 심정이었던 기억이 난다.


썰렁한 토요일 아침이다. 가슴에 밑창이 빠진 것처럼……. 하긴 아침은 아니다. 오후 세 시니까. 하지만 내겐 토요일의 이 시간은 아침이다. ― 1996년의 기록


잠은 그에게 망각이었고 매일 깨어날 때마다 깨어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삶에 시달렸고 삶이 지겨웠으며 시간은 성가셨을 뿐이었다. ― 잭 런던Jack London, 《마틴 에덴Martin Eden》《마틴 에덴Martin Eden》《마틴 에덴Martin Eden》

사업은 잘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갑자기 더 이상은 하기가 싫었다. 폐업하면서 전화도 끊었지만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나는 내가 벌여놓은 폐허 속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 사업을 망해먹었기에 본가에 들어갈 낯이 없었다. 나는 무기력증에 걸려 그 폐허 속에서 혼자 숨어 살면서 배고팠고, 외로웠고, 서러웠고, 추웠고 절망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종류의 사업을 계속했더라면 나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 소설 한 권 낸다는 것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그러함에도 나는 그 청춘에 행동하지 않았었더라면 이제와 추억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소설 같은 때였다. 그 시절의 기억이 흡사 그리움처럼 몰려와 나는 그 시절을 고스란히 다시 사는 느낌이 든다.


인생의 저녁은 그 등잔을 들고 찾아온다. 인생의 처음 사십 년은 본문이고 다음 삼십 년은 그 주석이다.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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