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도 중요한 요소지만, 학생들과 정서적 교감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고 잘 성장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어른이 그렇듯 아이들 역시 학습 기계가 아니고, 독립적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담당하는 이들 중 하나가 교육복지사입니다.
아이들은 예민합니다. “왜 우리들에게는 의견을 묻지도 않나요!”라고 말합니다. 때론 학교는 상상 외로 삭막합니다. ‘다른 반 학생 출입금지’라고 교실에 써 붙인 학교도 있다고 합니다. 복지사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덩치 큰 아이들이 그럴 땐 조금 징그럽지만, 그만큼 학교에 내가 믿고 의지할 어른이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수한 경우지만 지역사회에선 학교에 복지사가 생기고 “밖에 빨래를 널 수 있게 됐다”고 좋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복지사들은 정규 교사들과 교육방식에 대한 협의도 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교육환경과 심리적 상태를 개선시켜 주는 것이 기초적입니다. 그 개선은 심리상담이나 안정적 공간, 혹은 인간관계나 다른 흥미를 통해 이뤄지기도 합니다. 그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복지사들은 어른들이 문제시하는 학생들에게 접근하는 학교의 관점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행위의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 그 결과의 옳고 그름만 따지며 학생을 선도와 처벌로만 다루는 것은 문제를 오히려 키우기도 합니다. 학교는 아이들의 스토리를 이해하고 사회 적응을 도와야 합니다. 때론 교과목 외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학교생활의 에너지를 얻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강제 전학 대상인 학생이 음악밴드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밥이 절실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굶는 아이들에겐 밥이 곧 교육의 시작입니다. 중독문제를 가진 부모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방치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학대받는 아이들에겐 이해와 보호가 곧 교육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교육복지는 교사와 학부모 모두가 원하는 사업입니다. 그런데 예산부족 때문에 중단되기도 합니다. 교감마저 모든 학교에 복지사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교육청은 예산이 없다고만 합니다.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학교는 총제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지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정치권의 복지논쟁은 학교나 교육의 역할도 제한합니다. ‘청소년은 버릇이 없다’며 교육을 훈육으로 여기는 보수정치는 교육복지의 가치나 보살핌의 보편성도 잘 알지 못합니다.
적절한 대우를 받는 교육복지사를 안정적으로 채용해 학생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담임 등 일반 교사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이 복지 프로그램 운영까지 맡기거나, 복지사를 임시직(비정규직)으로 채용해 값싸게 활용하는 것 모두가 문제입니다. 수업에 집중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반 교사는 아이들 돌봄과 관련된 각종 사회 인프라와 연결시키는 업무가 쉽지 않습니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교육복지는 그 나름의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학교에 필수적이고 또 다른 전문적인 영역을 한시직(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은 교육당국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교육의 방식이나 환경에 대한 교육복지사들의 고민은 깊습니다. 그러나 1년 고용으론, 장기적 교육복지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은 규율을 벗어나면 처벌하기에 바쁩니다. 예외를 품고 이해하며 지지해주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런 어른들이 비정규직이라면 우리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의리를 중요시 여기는 아이들은 복지사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어쩔 수 없다며 해고를 시킵니다. 정부는 언제까지 복지사들에게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비루한 대우와 지위를 견디라고 할 것입니까. “10분만 같이 있어 주세요”하는 절박한 아이들과 때론 퇴근 후 1시간 2시간을 더 보내기도 합니다. 그런 복지사에게 학교는 “당신이 원해서 보낸 시간이니 시간외 수당을 줄 수 없다”고ㅓ 말해선 안 됩니다.
교과서가 아닌 사람으로만 가능한 교육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제대로 대우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끔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교육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지지하는 어른들을 아이들 곁에서 쉽게 뜯어내는 교육행정이 만연합니다. 고령화 사회, 저출산 사회, 교육마저 무너져 희망을 가르치지 못하면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교육복지사를 비롯해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세상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복지사 선생님의 다짐 같은 말이 생각납니다. “한 아이를 지키지 않으면 이 마을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