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은 그냥 느끼자. 우리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
누군가 싫어진다면, 또는 괴롭힘 신고를 앞두고 분노, 앙심에 관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철학자 ‘크리스타 K. 토마슨’의 얘기를 귀담아들어 보자.
나쁜 감정에 관한 대처, 철학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는 인류의 근본적 질문이다. 진정한 철학의 목적은 우리가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아의 형성은 평생에 걸쳐 이뤄진다. 그러다 보면 자아는 연약해질 때가 오고, 분노, 앙심과 같은 나쁜 감정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분노에 대처해온 방식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비난하며 급발진하는 건 분노에 대처하는 한 방식이다. 우리는 분노에 너무 빨리 반응하고, 서둘러 자신을 다독이며, 단지 물건을 부수거나 사람을 때리는 것이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또는 어떤 일을 끔찍한 불의로 여기면서도 의외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대신 완전히 겁에 질리거나 몹시 슬프거나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거나 그냥 멍해지기도 한다.
우리는 특히 가만히 앉아서 분노를 솔직하게 탐색하는데 서툴다. 이 모든 건 분노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분노를 느낄 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다.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나의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은 ‘교정’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데 누군가의 책임이 있다고 가정하지 말고, 그저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솔직히 살펴야 한다.
분노로 괴물을 만들어 내지 않으려면 이를 정직하게 탐구해야 한다. 분노는 당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나타나지만, 실제로 누군가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음을 뜻하진 않는다. 자신의 분노를 솔직하게 마주하는 다른 사람을 상상해 보라. 이 사람은 분노의 책임을 물을 상대를 찾는 대신 그냥 분노를 끌어안고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자문한다. 그는 자신이 분노하는 건 자기 삶이 기대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이를 탓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자신의 분노에 솔직히 귀 기울였다면 이런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앙심의 이유
우리는 대체로 갑질이나 간섭을 하는 사람에게 앙심을 품는다. 인간에게는 반항적인 기질이 있고 앙심은 그 기질의 일부다. 앙심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경솔해지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자신에게 해로운 일을 하고 만다는 것이다.
앙심의 결과
앙심을 느끼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타인을 미워하는 걸 중심으로 자아를 형성하면, 이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이 패배하거나 실패하는 걸 확인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에는 어떤 고통이나 좌절을 즐길 수 있을지 항상 주시하게 될 것이다. 갈등을 중심으로 자신을 구축했다면, 갈등을 지속시켜야 할 명분이 생긴다. 상대를 완전히 이기고 물리치면 어떻게 될까?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살아갈 수가 없다.
앙심에 대한 대처 방법
몽테뉴는 『에세』에서 자신을 지키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자신을 ‘다시 소유’하고 지금까지 끌려간 모든 곳에서 자신을 다시 끌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머릿속이나 영혼에 자신과 단둘이 지낼 장소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당신에게 소리를 지를 때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인지 알아야 한다.
앙심이 나타나는 건 사회생활에서의 자아가 다른 자아와 함께 어울릴 때다. 자신을 안다는 건 다른 사람들로 둘러싸인 이 세상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걸 의미한다. 나는 이해받고 싶고 소속감을 느끼고 싶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한다면, 내가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이글은 『악마와 함께 춤을』 (저자 : Thomason, Krista K. 번역 : 한재호)을 참고하여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