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모호하다. 극심한 괴롭힘은 엄격하게, 갈등은 지혜롭게 풀자
바야흐로 ‘직장 내 괴롭힘’의 홍수 시대다.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 3만 원 상당의 선물을 줬지만, 그로부터 1만 원 상당의 선물을 받자, 동료가 과거에 했던 업무 외의 부탁을 수집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는 기사도 있다(한국경제, 2025. 1. 10.). 직장 생활에서 생기는 불편함이 괴롭힘이라는 이름으로 신고되고 있다.
통계에 담긴 괴롭힘에 관한 불편한 진실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2020년 5,823건이 접수된 이후 2021년 7,774건(전년 대비 33.5% 증가), 2022년 7,814건, 2023년 10,028건(전년 대비 28.3% 증가)의 신고가 접수됐다. 1만 건이 넘는 사건이 모두 직장 내 괴롭힘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10,028건 중 처리가 완료된 사건은 9,672건이다(처리 중 356건). 이중 법 위반으로 노동부가 시정 명령하거나 검찰로 송치한 사건은 1,030건, 신고인의 취하는 2,197건이며, 6,445건은 기타 사건이고, 이중 법 위반이 아닌 사건은 2,887건이다. 그렇다면 신고 사건의 35.4%를 차지하는 3,558건(6,445건-2,887건)은 적어도 괴롭힘 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괴롭힘 사건이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까?
*출처 : 고용노동부_직장 내 괴롭힘 신고사건 처리 현황, https://www.data.go.kr/data/15113570/fileData.do
모든 갈등이 괴롭힘은 아니다
경기도의 A시 공원의 녹지관리원을 총괄하던 반장 B 씨는 상급자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며 상급자와 회사를 상대로 약 2,500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 사유는 ‘의견 개진 무시, 시간대별 업무 계획 작성 및 보고, 샤워 시간을 17시 이후로 제한, 현장 근무자에게 탈의실 사물함 미배정 및 대기실 사용 금지, 부서 회의에서 배제, 이사장 및 노사 간담회에서 요구사항 미수용, 갑작스러운 전보, 병가 불승인’ 총 10가지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샤워 시간 제한, 탈의실 사물함 미배정, 병가 불승인의 3가지를 괴롭힘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사장 및 노사 간담회에서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직장 내 모든 갈등 상황이 일방의 타방에 대한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할 수는 없는(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23. 3. 8. 선고 2021가단123961판결, 항소 미제기로 확정)”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괴롭힘의 반대편에는 대인관계 갈등이 자리 잡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를 2023년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사건 처리결과 통계와 연결하면, 괴롭힘 신고 사건의 30%는 대인관계 갈등일 수 있다.
괴롭힘과 대인갈등의 구분 ;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
괴롭힘과 갈등을 구분하는 것은 인사관리, 노무관리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성립 요건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괴롭힘이 성립하려면,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 이용, 업무상 적정한 범위 초과, 정신적·신체적 고통 및 근무환경 악화의 3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의 요건을 살펴 대인관계 갈등과 분쟁을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김인희, 2024 참조).
C 씨는 동료 B 씨 및 동료 2명과 함께 유흥주점에 갔다가 D 씨를 업어치기 하여 넘어뜨려(이하 ‘폭행 사건’이라 함)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위반으로 ‘징계해고’됐다. 하지만 법원은 비록 C가 직장 선배이나 직급이 동일해 상하관계로 볼 수 없고, 폭행 사건은 모두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졌으며, C 씨가 평소에 D 씨를 괴롭혔다고 볼 사정은 보이지 않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회적·우발적 사건이라 보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2021. 8. 11. 선고 2021가합10066 판결 참조, 확정 :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
북광주법인의 영업부장 E는 성과 평가 발표회 자리에서 서광주법인의 차장 F에게 나이를 불어보았다. F가 대답하지 않자 재차 ‘How old are you?’라고 물었는데, 옆자리에 있던 서광주법인 지사장이 ‘2학년 5반이요’라고 대답하였다. F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나이를 물어 불쾌감과 모욕감을 느꼈다며 E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고, 회사는 E를 징계(견책)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은 E와 F는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없고, E가 F에 대해 지위의 우위를 이용한 행위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발표자와 청중의 관계를 이용하였다고 보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광주지방법원 2021. 2. 5. 선고 2020가합52585 판결 참조, 확정 : 대법원 심리불속행 기각).
두 사건 모두 지위 또는 관계의 우위성 이용이라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의 법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당사자들은 직장 선배, 상위 직급자로부터 불편한 행동을 당했기에 직장 내 괴롭힘 으로 신고한 것이라 짐작된다.
근로기준법 개정이 능사는 아니다
회사는 괴롭힘 행위자를 징계하고, 행위자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는 사건 등으로 노동위원회의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를 위해서는 모호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원래 법은 모호하기 때문이다. 갈등과 괴롭힘을 구분하되, 극심한 괴롭힘은 엄격히 다루고, 갈등은 지혜롭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