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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에서나온사람 Aug 21. 2022

애니메이션도 제조업이었다

[애니메이션 제작관리]

친척, 학교 동창, 옛 회사 동료를 오랜만에 만나서 근황을 나누다 보면 다들 나에게 이런 말을 꼭 한번씩 한다.



어떻게 그렇게 완전히 딴판인 일을 하게 된 거야?



특히 옛 회사 동료들이 더 신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무역회사에서 생산 관리직으로 일했다. 시키는 대로 만들어서 제시간에 주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납기 일자가 틀어질세라 온종일 스케줄을 확인하고 공장에 애걸복걸하다 보면 계절이 휙휙 지나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봉탈(봉제업 탈출의 약자)을 외쳤었다. 어찌 보면 나는 그 다짐을 이룬 셈이지만 그다지 후련하지 않다. 실은 애니메이션도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무형일 뿐이지, 아예 딴판인 일이 아니다.






영화 제작은 프리(pre) 프로덕션 - 메인(main) 프로덕션 - 포스트(post) 프로덕션, 이렇게 세 가지 과정으로 나뉜다. 메인으로 넘어가던 작년 겨울쯤, PD님이 이런 말을 했다.


이제 재밌는 건 다 끝났네.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서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제작이 진행될수록 묘한 기시감이 드는 것이 아닌가?


- 협력 업체와 회의하고 작업 매뉴얼 공유하기

- 작업 파일 뿌리고, 거두기

- 작업물 확인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수정 요청하기, 그리고 수정되었는지 확인하기.

- 협력업체에서 요청하는 것이 있으면 즉각 제공하기

- 이 업체 저 업체 쪼개진 파일들 한 데 모아 또 다른 업체에 넘기기

- 각 파트의 매주 진행 속도 확인하기, 늘어지는 것 같으면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한 제작 관리


구글 스프레트 시트를 이용한 제작 관리



뭐야, 이거…
회사에서 밥먹듯이 하던 거잖아?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은 무조건 창의적이고 재밌을  알았다. 그러나 애니 제작에서 즐거움을 느낄  있는 요소는 대부분 기획/개발 단계에 몰려있었다.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을 벌이기 시작하는 때에는 누구나 세로토닌이 샘솟지 않는가. 다만 일반적인 회사에서는  재밌는 일을 주로 사장님만 하기 때문에 말단 직원은 경험해 보기 힘들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웠던 이유도  때문이고. 퇴사 요인이었을 만큼 싫어했던 업무를 다시 마주하니 너무 괴로웠다.  ‘노잼시기를 도저히 견딜  없어서, 감독이나 PD 같은 것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때로부터 시간이 아주 조금 흐르긴 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안다.  지난한 제작과정을 몸소 거쳐야만 내가 만들고 영화를 정확하게 구현할  있다는 것을.




그러니 애니메이션 제작자분들, 힘내십시오.

자신의 현재 업무와 꿈의 괴리가 큰 분들도 힘내십시오.

스티브잡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죠.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rads. So you have to trus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우리는 현재의 일들을 미래와 연결지을 수 없다. 오직 과거와 연결지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의 일들이 어떻게든 미래에 연결될 것이라고 굳게 믿어야한다.








다음 꼭지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마침내 포스트 프로덕션 이야기입니다.

기대해주세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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