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소스 Open Source | 오픈 소스의 성공과 그 사회적 의미
최근에 개발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에게 한 가지 놀라웠던 사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라이브러리였다. 언어별로 수십 수백가지의 라이브러리가 있고, 라이브러리를 불러오기만 하면 전세계의 개발 고수들이 만들어놓은 코드를 편리하게 가져다 쓸 수 있다.
놀라웠다. 이게 다 무료로 배포되어있다니. 게다가 직접 개발을 해보니 쓸모있는 무언가를 개발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그걸 알고나자 인터넷에 존재하는 수많은 라이브러리와 프레임워크들이 더욱 신기하게 보였다. “이거 만드는 사람들은 다 뭐해서 먹고 사는걸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그래밍의 세계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커뮤니티가 아주 활발하다. 웹에는 정말 수많은 개발 관련 커뮤니티가 있다. 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정보와 작업물을 공유하고 다른 멤버들을 돕는 것이 굉장히 당연한 문화다.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으면 자신이 직접 고쳐서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흔하다.
대표적인 Q&A 커뮤니티인Stack overflow에 가보면 느낄 수 있다. 개발 초보인 나에게는 구원자와 같은 사이트다. 엄청나게 많은 질문들이 올라오는 데 다른 개발자들이 자기 시간을 투자해서 고퀄리티의 대답을 해준다. 프로그래밍을 하다 부딪치는 거의 모든 문제는 스택 오버플로우에 이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과 코드들이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도록 열려있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래머들도 이를 바탕으로 시행착오와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이 독특한 공유 문화의 결정판은 바로 ‘오픈 소스’일 것이다. 오픈 소스란 말 그대로 소스 코드(Source)가 공개(Open)된 소프트웨어다. 대부분의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무료료 사용 가능해서 프리웨어(freeware)와 헷갈릴 수 있는데, 프리웨어는 무료로 사용하다는 뜻이고 오픈 소스는 소스가 공개되어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프리웨어는 대부분 상업적 이용이 불가능하지만 오픈 소스는 상업적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그래서 안드로이드OS는 오픈 소스 프로젝트로 개발되었지만, 삼성, LG, 화웨이같은 회사들이 소스 코드를 가져다가 입맛에 맞게 수정해서 자신들의 제품에 탑재할 수 있는 것이다.
소프트웨어가 처음 태동하던 시기에 프로그래밍은 해커와 연구자들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영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고, IT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주축이 되었다. 소프트웨어로 돈을 벌려고 할 때 중요한 문제점이 있었는데, 바로 복제가 아주 아주 쉽다는 것이었다.
초기 영리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절대 소스 코드를 공개하지 않고 철저하게 보호했다. 당연했다. 소프트웨어는 누구나 설계도인 소스코드를 가져가면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특허와 지적재산권을 사용해서 법적으로 소스 코드를 보호했다. 소스 코드에는 권한을 가진 소수의 사람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IT 기업의 개발 조직은 자연스럽게 더 많은 접근 권한이 있는 관리자로부터 가장 적은 프로그래머로 내려가는 하향식(Top-down) 형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에 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해커와 연구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은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배포되어야한다고 주장했고,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소유권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기업 측 인물이었던 빌 게이츠는 1976년 ‘취미생활자들에게 쓰는 공개편지’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느라 애쓴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지 않으면 도둑질이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던 해커들 중 한명인 리처드 스톨먼은 소프트웨어는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SF)을 설립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수정 배포할 수 있게 하는 GPL이라는 라이센스를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오픈 소스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난다. 라이너스 토발즈(Linus Torvalds)라는 프로그래머가 나타나서 자신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커널(운영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제어 모듈)을 GPL 라이센스로 공개한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리눅스(Linux)다.
토발즈가 리눅스를 처음 공개했을 때는 누구도 리눅스가 역대 최대 규모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만해도 오픈 소스는 소수의 해커들만이 참여하는 마이너한 문화였기 때문이다.
리눅스는 달랐다. 이전에는 오픈 소스라도 핵심 개발자 집단이 개발 과정을 독점하고, 완성도가 있다고 판단된 후에 소스를 공개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토발즈는 누구나 소스를 읽은 후 수정한 코드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수정한 코드가 받아들여지면 그 사람은 기여자(contributor)가 되어 다음 버전에 이름이 박혔다. 이 시스템이 묘한 과시욕을 충족시켰고, 개발자들은 돈을 받지 않고도 커널 버그 수정과 기능 추가에 매달렸다.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들은 리눅스를 점점 더 정교하게 발전시켜나갔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 리눅스는 서버와 모바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운영체제가 되었다. 전세계 수억대의 스마트폰에 탑재된 안드로이드OS가 리눅스 커널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500대의 90%가 리눅스 기반이다.
리눅스의 성공은 오픈 소스의 협업 모델이 상업적 기업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전 세계의 ‘자원봉사자’들이 코드만 100만줄이 넘는, 이 엄청나게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업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능가했다. 이는 그 전까지 소프트웨어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중요한 소프트웨어들이 오픈 소스로 개발되고 있다. 특히 최근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오픈 소스는 완전히 대세가 되었다. 앞서 말했던 안드로이드(모바일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Axzure), 데이터베이스(MySQL),웹서버(Apache), 웹브라우저(Firefox),컨텐츠 관리 시스템(Wordpress), 빅데이터 관리(Hadoop)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높은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현재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중 오픈 소스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오픈 소스를 ‘암적인 존재’로 비난하던 영리 기업들도 이제는 너도나도 오픈 소스를 도입하고 있다. 상용 소프트웨어의 상징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리눅스를 지원하고, 자사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와 연동하고, 일부 소프트웨어를 오픈 소스화했다. 사타냐 나델라 CEO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를 사랑합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영리 기업들이 수십조의 연구개발비를 들여서도 만들지 못한 혁신을 오픈 소스가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오픈 소스는 ‘대세’가 되었다.
수렵 채집 시대 이후로 인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까’였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 효과적으로 협력하는 방법을 항상 연구해왔다. 그 고민의 결과로 현대 사회의 많은 제도들이 생겨났다. 자본주의도 그 중 하나다.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협력 메커니즘이다. 자본주의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함으로써 개인에게 경제적 인센티브를 준다. 개인과 기업 간의 경쟁을 통해서 효율성을 달성한다. 대형화된 조직은 CEO, 관리자, 노동자로 구성된 수직적 계층 구조를 통해 운영된다.
오픈 소스의 성공이 흥미로운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본주의의 교리와 반대되는 방식으로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픈 소스의 원칙은 개방, 참여, 공유다. 피라미드식 계층 구조도 없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으며, 자발적인 구성원의 참여에 의존한다. 경제학자들이 보기에는 절대 시장에서 성공할 수가 없는 모델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서 취미로 자동차를 만들기로 했다. 자동차에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자동차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급여는 없다. 그런데 그 결과로 만들어진 자동차가 전세계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와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다면? 오픈 소스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래서 오픈 소스의 성공은 상당한 사회적 의미가 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오픈 소스를 연구했다. 상식적으로는 실패해야할 것만 같은 오픈 소스 모델이 어떻게 혁신의 요람이 될 수 있었을까? 자발적인 개인들이 모여 협업을 할 때 생기는 문제점, 인센티브의 부재와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오픈 소스의 성공 비결을 알려주는 흥미로운 3가지 사실을 뽑아보았다.
오픈 소스가 참여와 개방을 기본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없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취미생활을 위해 모인 동호회라도 회장, 부회장, 총무는 반드시 있듯이, 마찬가지로 오픈 소스도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인 시스템과 관리가 없이는 아무리 혁신적인 사람들이 모여도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없다.
개발자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점 하나만 잘못 찍혀도 전체 프로그램이 에러가 난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코드를 짜다보면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각자 코드를 짜는 과정에서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같은 요구사항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오픈 소스 프로젝트는 코드를 이런 식으로 작성해야하고 충돌이 일어날 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세세한 규칙을 갖추고 있다. 이 규칙들 때문에 자칫하면 난장판(?)이 될 수 있는 협업이 질서있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픈 소스 커뮤니티는 나름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코드를 작성하는 기여자(Contributor)와 이를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소스 코드에 합치는(Merge) 핵심 개발자(Core-developer)로 이루어진다.
위계질서의 형태는 오픈 소스 커뮤니티마다 모두 다르지만,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BDFL(Benevolent Dictator For Life)과 Meritocracy, Liberal이다. 뒤로 갈 수록 더 많은 사람들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형태다.
BDFL: 한 사람이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권을 가진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python이 대표적이다.
Meritocracy: 소수의 메인 컨트리뷰터들이 안건과 선택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결정하고 구성원의 의견은 투표를 통해 수렴한다. Apache의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Meritocracy다.
Liberal contribution: 다수의 컨트리뷰터들이 위원회를 구성한다. 투표를 지양하고 위원회 안에서 합의를 통해 최대한 많은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해서 결정을 내린다. 최근 급성장한 Node.js 등이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마치 군주제, 대통령제, 의원내각제의 설명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성공적인 오픈 소스 프로젝트는 국가 정치 제도 못지않은 체계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중요한 경제학 개념 중에 ‘한계생산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s to scale)’이 있다. 다른 조건이 일정한 상황에서 노동력을 추가로 투입하면 할 수록 산출물의 증가량은 감소한다. 쉬운 말로 바꾸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뜻이다.
사람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에 따른 부수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 바로 이 점이 협업 생산이 어려운 이유다.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오픈 소스도 수많은 개발자들이 한데 모여 개발을 하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텐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처음 라이너스 토발즈가 리눅스를 오픈 소스로 공개했을 때는 사람들이 메일로 보내온 수정된 코드를 일일이 검토해서 직접 소스 코드에 합쳤다고 한다. 이런 소스 관리가 바로 협업의 규모가 커질 때 생겨나는 대표적인 부수 비용이다.
토발즈는 소스 관리가 너무 하기 싫었다. 기존에 있던 중앙집중식 버전 관리 시스템(Centralized version control system)과 다른 새로운 방식의 VCS를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분산 버전 관리 시스템(Distributed versioncontrol system, DVCS)인 Git이다.
Git은 프로그래머들이 코드 수정을 트래킹하고, 수정한 코드들을 오류 없이 자동으로 합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앙 저장소와 상관없이 자신이 워크플로우를 쉽게 생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Git을 사용하면 노르웨이 있는 프로그래머와 멕시코에 있는 프로그래머가 따로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도 같은 코드를 두고 협업을 할 수 있다. 조정 없는 협력(Cooperation without Coordination)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 핵심 개발자의 소스 관리 업무가 줄어들고, 비핵심 개발자들이 조금 더 쉽게 프로젝트에 기여 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DVSC을 적용한 이유 컨트리뷰션이 40%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Rodríguez-Bustos, C, & Aponte, J, 2012).
Git과 같은 효과적인 협업 툴은 수백 수천명이 참여하는 오픈 소스가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헨리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것과 비견될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덕분에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을 극복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산출물에 반영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오픈 소스는 무보수 프로그래머들이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는데,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르다.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오픈 소스가 완벽하게 비즈니스와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래머들도 오픈 소스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물질적인 보상을 얻기도 하고, 오픈 소스 커뮤니티들도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첫번째로 오픈 소스 기여는 개발자들에게 경험, 더 정확히 말하면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의 미래 수익 창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픈 소스가 프로그래머 커리어에 중요한 이유는 여러가지다. 일단 상업적 프로젝트에 대한 기여는 공개되지 않지만, 오픈 소스에 대한 기여는 명확하게 기록되고 모두에게 공개된다. 얼마나 기여했는지, 어떤 코드를 썼는지 쉽게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단 오픈 소스에 자신의 코드가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프로그래머의 실력을 증명하는 일이다. 물론 얼마나 유명한 오픈 소스 프로젝트인가도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서 IT 기업의 채용자들은 오픈 소스 기여 항목을 아주 중요하게 고려한다. 프로그래머의 실력과 스타일을 모두 볼 수 있는 완벽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업계는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와 기술이 바뀐다. 그래서 최신 기술에 대해 숙달하는 것(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경험을 쌓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오픈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두번째로, 오픈 소스도 돈을 번다. 바로 ‘기업용 오픈 소스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용 오픈 소스 시장의 첫번째 비즈니스 모델은 교육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잘 활용하기 위해서 학습이 필요하다. 따라서 오픈 소스 커뮤니티는 관련된 책, 강좌, 또는 전문가 인증 제도등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예를 들어 아파치 재단이 만드는 Hadoop은 무료지만, 사용하기가 복잡한 프로그램이다. 이런 경우 아파치 재단은 Hadoop을 설치, 활용하는 방법을 기업에게 교육하고 돈을 받거나, 아니면 재단이 인정하는Hadoop 전문가 인증 프로그램 등을 통해 돈을 번다.
두번째는 기술 지원이다. 기업 입장에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쓸 때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오픈 소스는 일반 소프트웨어보다 짧은 주기로 업데이트된다. 기업용으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업데이트 주기가 너무 빠를 경우 다른 시스템과의 호환이나 직원들의 적응 시간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매번 호환성이나 안정성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게다가 오픈 소스는 공짜이다보니 유지보수를 위한 애프터 서비스도 없다. 혹시나 문제가 발생해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영업 활동에 직결된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이런 안정성 이슈들이 굉장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런 기업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해서 오픈 소스 단체나 기업이 다양한 버전을 지원하거나, 고객의 상황에 맞춰 소프트웨어를 커스터마이제이션해주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유지보수를 해주고 돈을 번다.
기업용 오픈 소스로 수익을 내는 대표적인 기업이 래드햇이다. 래드햇은 1993년 미국에서 설립된 기업용 오픈 소스 전문 기업이다. 대표 제품이 ‘레드햇 엔터프라이즈 리눅스’다. 즉, 오픈 소스인 리눅스에 다양한 기술 지원과 추가 기능을 더해 기업에게 제공한다. 오픈 소스 교육 프로그램도 별도로 운영한다.
레드햇은 시가총액이 15조원에, 2015년 매출이 2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이다. 전세계에 진출해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지사가 있다. 그 외 기업용 오픈 소스 시장에서 활동하는 많은 기업들이 있는 걸 보면 이 시장이 절대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래드햇은 오픈 소스를 사용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이 수익을 다양한 방법으로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 다시 환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오픈 소스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상업적 소프트웨어 시장에 비하면 훨씬 작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픈 소스 생태계가 단순히 사명감이나 보람에 의한 기여에 의존했다면 아마 이렇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픈 소스 생태계의 성장은 자발적 참여에 의한 협업 모델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였다.
오픈 소스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개방형 협업 모델은 곧 다른 분야로도 퍼져나갔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위키피디아다. 위키피디아는 백과사전을 오픈 소스화했다. 전세계 사용자들은 코드 대신 지식을 작성했다. 위키피디아는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서 쓰여지던 브리태니커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의 사전이 되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오픈 소스 모델이 단순히 소프트웨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키피디아의 성공 이후 돈 댑스코트는 <위키노믹스>라는 책에서 생산자, 기업, 전문가 중심 경제(Economics)에서 소비자와 일반인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Wikinomics)로의 전환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개방형 협업 모델이 경제 각 분야로 확대된다는 뜻이다.
그는 위키노믹스가 강력한 혁신을 만들어낸 다양한 사례를 든다. 그 중 하나가 캐나다의 금광 회사인 골드코프다. 골드코프는 50년 넘개 축적된 지질학 관련 자료(사내 기밀 자료) 전부를 웹 상에 공개하고 전 세계적인 컨테스트를 개최했다. 그 결과 세계 각국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100여 곳의 새로운 광맥을 발견해서 90배의 매출액 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로컬 모터스(LocalMotors)라는 회사도 있다. 앞서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자동차를 만들면 어떻게 될까라는 예시를 들었었는데, 로컬 모터스가 바로 딱 그런 회사다. 로컬 모터스의 CEO 제이 로저스는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는데도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지 못하거나, 전공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로컬모터스닷컴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전 세계의 자동차 디자이너와 자동차 광팬들을 멤버로 만들었다. 커뮤니티 멤버들은 자신이 원하는 자동차의 디자인을 고안해내고 올린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은 투표하기도 하고 자신이 수정해서 다시 올리기도 한다. 이 커뮤니티에서 로컬 모터스라는 자동차 업체가 생산할 차의 디자인이 결정된다.
로컬 모터스는 대형 공장도 없다. 마이크로팩토리라는 전세계에 있는 작은 공장(microfactory)에서 3D 프린터를 통해 차체만 생산하고 나머지 부품은 제 2 유통시장에서 조달한다.
로컬 모터스는 판매도 생산된 공장에서 직접한다. 불필요한 것은 모두 빼고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만을 연결한다는 것이 기업의 철학이다. 수동적으로 자동차를 구입하기만 해왔던 이전 소비자들과 달리 로털 모터스의 고객들은 자신이 생산 과정의 중심이 된다.
그 결과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오픈 소스 자동차 랠리 파이터는 자동차 매니아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최근 로컬 모터스는 IBM과 합작해 자율주행차 올리를 내놓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운영체제, 백과사전, 자동차까지 개방형 협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정치는 왜 안될까? 오픈 소스의 방식과 기술을 정치에도 적용해볼 수는 없을까? 오픈 소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상이 코드일 뿐 ‘협력에 기반한 집단적 의사결정’이라는 점에서 정치와 본질적으로 같다. 어떻게 보면 정치인들도 결국 법이라는 사회적 ‘소스 코드’를 만드는 개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 제도도 오픈 소스의 방식과 기술을 사용해서 더 발전할 순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역시 나 혼자는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활동가 Pia Mancini는 민주주의가 현대의 정보 기술에 맞게 진화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참여’가 너무 어렵다.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은 몇 년에 한번 있는 투표뿐이다. 아니면 정치에 입문해서 수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국회의원이 되어야만 정치적 의사결정권이 주어진다. 참여의 대가가 너무 크다. 그래서 참여라는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자기 시간과 돈을 희생하고 거리로 몰려나와서 시위를 하기까지 한다.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Pia는Democracy OS (Open Source)를 만들었다. Democracy OS는 누구나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내놓고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모바일 플랫폼이다.Democracy OS 팀은 처음에 이 플랫폼을 활성화시켜서 정당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써 제공하면 시민들의 의사가 더 잘 반영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완전히 실패했다. Pia는 실패 이유가 기술이 아니라 문화였다고 말한다. 기술이 불가능했던 게 아니라 그 어떤 정당도 자신들의 의사결정 방식을 바꾸고 싶은 의지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Pia의 팀은 대담한 도전을 한다. 직접 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름은 ‘ElPartido de la Red’, 번역하면 ‘Internet party’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당의 후보들이 당선되면 Democracy OS에 따라서 행동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파격적인 행보였다.
그리고 선거에서 1.2%를 득표했다. 비록 의석을 얻진 못했지만, 많은 관심을 받기에는 충분한 표였다. 결국 국회는 새로운 정부 프로젝트 2개를 Democracy OS에 공개했다. 대중교통과 유휴 토지 사용에 대해서 결정하는 프로젝트다.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해서 진짜 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굉장히 인상깊은 이야기다. 하지만 중간까지 들었을 땐 솔직히 이런 아이디어가 성공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치적 이슈란 프로그래밍 문제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은 수학에 기반한 학문이다.
프로그래밍은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가 쉽다. 결과도 몇 초만에 바로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적 의
사결정은 절대적이 확실한 수학적 법칙이 아니라, 사람이 선택한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런 문제는 논쟁의 여지가 너무 많고 의견을 통합할 절대적 기준이 없다. 코드는 실행해보고 에러가 나는지 안나는지 보면 되지만, 정치에서는 어떤 의견이 맞는지 틀린지 직접 검증해볼 수가 없다.
사실 시민들이 온라인 상에서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 자체는 여태까지도 계속 있어왔던 아이디어다. 다만 그걸 ‘어떤 식으로 통합해서 정부와 국회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가’가 핵심 문제다. Democracy OS가 어떤 식으로 의견을 수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 말한 차이점 때문에 버전 컨트롤 시스템 같은 협업 툴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치 체제가 발전하는 기술과 가능성에 맞춰 진화해야한다는 데는 100% 동의한다. 인류가 가진 힘과 가능성은 빠른 속도로 커지는데 법과 제도의 변화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16세기의 기술을 바탕으로 19세기에 발명되어 21세기에 쓰이고 있는, 이 정치 제도는 과연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까?
사회사상가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는 <한계비용 제로사회>에서 개방형 협업 모델의 성공 사례를 얘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협력적 공유 사회’로 바뀔 것이라는 중요한 근거로 삼는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처럼 들리지만, 리눅스와 위키피디아가 성공했듯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개방형 협업 모델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자본주의는 보완적 역할을 하는 위치로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쟁과 소유의 자본주의가 아닌, 참여와 협력을 기반으로 한 공유 사회가 온다는 것이다.
나는 개방형 협업 모델이 아주 중요하고 혁신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사회 전체가 곧 재편될 것이라는 주장에는 아직 회의적이다.
첫번째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개방형 협업 모델이 여전히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경제적 인센티브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 소스 또한 그 오픈 소스를 기반으로 돈을 버는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IT회사들이 없다면 성공할 수 없었다. 오픈 소스 개발자들도 어딘가에서 돈을 벌기 때문에 오픈 소스 개발을 할 수 있다. 즉, 개방형 협업 모델은 기존 체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로 보인다.
두 번째, 아직 세상에는 디지털화되지 않은 재화와 서비스들이 많다. 다른 말로 하면 ‘비트(bit)는 가볍지만 원자(atom)는 무겁다’. 비트 기반의 디지털 산업에서는 참여와 생산의 비용이 매우 낮다.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는 디지털 세계에 속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디지털화되지 않은 산업들은 여전히 ‘원자의 세계’에 속해있다. 즉, 여전히 생산 비용이 발생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이를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규모의 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중앙집중식 모델의 힘은 여전하다.
물론 거의 모든 산업에서 디지털화가 일어나고 있고, 3D 프린터 같은 기술은 제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당분간은 자본주의 모델이 대부분의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 같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정치, 사회, 경제도 오픈 소스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개방형 협업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조직 형태가 될 수 있을까?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