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설명한 리플 네트워크와 XRP
요즘 암호화폐 시장에서 최근 가장 핫한 화폐는 리플(XRP)이다. 연말에 리플의 가격이 기록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인데, 1달간 무려 1500%가 올랐다. 리플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2위를 지키던 이더리움을 제치고 비트코인에 이어 시가총액 2위에 올랐다.
도대체 리플이 뭐길래?
사실 리플은 일반적인 암호화폐들과는 완전히 근본적으로 다르다. 생각보다 이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리플이 이래서 좋다' '잘될 것이다' 하는 얘기들은 많지만, 실제 리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설명하는 자료가 별로 없다. 이해하기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최대한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리플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보고자 한다.
보통 리플 블록체인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와 리플 블록체인을 개발하는 리플사를 통틀어서 리플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둘은 다르다. 앞으로는 리플 네트워크는 리플넷, 리플 사는 리플사로 구분해서 설명하겠다.
리플에 대해서 알기 위해 먼저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대해 잠깐 알고 넘어가자. 블록체인은 공개 여부에 따라 퍼블릭 블록체인과 프라이빗 블록체인으로 나눌 수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네트워크인 반면, 프라이빗 블록체인인 허가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비공개 네트워크이다.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입 신청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개 카페고,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운영자의 승인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비공개 카페로 생각하면 되겠다.
금융 기관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데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런데 금융 기관의 속성과 퍼블릭 블록체인의 특성들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일단 익명성이 문제다. 비트코인과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개인 정보가 없이도 계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신원 파악이 어렵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융 거래 시 가명, 혹은 무기명 거래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규제 준수(Compliance)도 어렵다. 금융 기관들은 사고 발생 시 책임을 진다. 돈을 잘못 보냈다거나, 범죄자가 돈을 세탁하려고 한다거나 하는 경우에 금융 기관들은 통제 권력을 사용해 고객의 거래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어난 거래를 취소하거나 계좌를 막아버릴 수도 있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한번 실행된 이체는 누구도 되돌릴 수 없고, 제 3자는 거래에 대한 통제 권한이 없다.
퍼블릭 블록체인의 처리 속도도 문제가 된다. 현재 금융 기관에서는 초당 수천 거래를 처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현재 대부분의 암호화폐들은 초당 7개에서 30개 정도의 거래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 등장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운영 주체의 허락을 받은 참가자들만 네트워크에 들어올 수 있다. 따라서 운영 주체가 존재하고 허가 시 신원을 파악할 수 있다. 익명성 문제가 해결된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애초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 검증 과정이 훨씬 간단해진다. 퍼블릭 체인의 처리 속도가 느린 이유는 별도의 검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블록체인에 잘못된 정보를 쓰는 것을 막기 위해 다수의 합의 과정을 거친다. 비트코인의 경우는 컴퓨팅 파워를 투입하여 복잡한 해쉬 문제를 푼다.
하지만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다. 따라서 처리속도는 훨씬 빨라지고, 초당 몇천 개 이상의 거래 처리 속도를 구현할 수 있다.
리플넷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은행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들은 금융 기관의 개입이 없는 새로운 화폐 시스템을 목표로 태어났다. 그러나 리플넷의 목표는 정반대다. 리플넷은 블록체인을 사용해 기존 금융 기관들이 겪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리플넷은 태생부터 제도권에 적용될 목적으로 태어난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제도권이 원하는 블록체인의 유용성은 살리면서, 개방성과 탈중앙화는 포기한 것이 특징이다.
흔히 암호화폐 시장에서 거래되는 '리플 코인' 즉, XRP는 리플 네트워크 내에서 사용되는 기초 화폐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리플넷을 사용한다고 해서 꼭 XRP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리플넷의 성장이 꼭 XRP의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혼동하는데, 이는 잠시 뒤에 설명하겠다.
마블은행의 토르가 마블은행의 헐크에게 10만원을 보낸다고 해보자. 은행 예금은 실제로 존재하는 돈이 아니라 통장 위에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둘 다 같은 은행일 경우 마블은행은 단순히 장부에서 '토르 -10만원'를 추가하고 '헐크 +10만원'이라고 써주기만 하면 된다. 전체 예금의 양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서로 다른 은행끼리 거래를 한다면?
마블은행의 토르가 DC은행의 배트맨에게 10만원을 보낸다고 해보자. 마블은행과 DC은행은 서로 다른 장부를 관리한다. 따라서 마블은행은 장부에서 '토르 -10만원'을 쓰고 나서, 실제 10만원을 DC은행에게 전송한다, 그 뒤에 DC은행은 장부에 '배트맨 +10만원'을 써준다. 그런데 하루에도 이런 거래는 수백 수천번 일어날 것이다. 매번 서로 돈을 주고받으면 너무 거래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은행 간 거래는 지급 - 청산 - 결제 단계를 거쳐서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보자. 점심 먹은 건 내가, 기념품 산건 친구 A가, 저녁 먹은 건 친구 B가 결제했다. 이럴 때 실시간으로 돈 주고 계산하면 너무 귀찮다.
지급(payment) : 돈을 나중에 주기로 하고 미리 다른 사람이 돈을 써준다. “야 내가 나중에 줄 테니까 내 것까지 사줘.”
청산(Clearing) : 서로 빚진 내역을 숙소에 돌아와서 계산한다. “네가 나한테 3만 원 줘야 되고 내가 너한테 2만 원 줘야 되니까 1만 원만 줘.”
결제(Settlement) : 실제로 1만 원을 주고 거래를 끝낸다.
은행 간 거래도 똑같다. 은행들은 일단 서로 지급해야 할 정보를 주고받은 뒤에, 실제 얼마나 빚졌는지를 청산하고, 일정 기간에 한 번씩 돈을 주고받아서 결제한다.
해외에 있는 은행에게 송금을 할 경우에 단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국내 은행들은 모두 한국은행이라는 동일한 은행에 계좌가 개설되어있어서 한국은행을 통해 하루에 한 번씩 결제를 한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은행과는 서로 잘 모르고, 계좌가 연결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결점을 찾기 위해서는 2개 이상의 중개 은행을 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내 은행 A - 국내 중개 은행 B - 외국 중개 은행 C - 외국 은행 D' 같은 경로를 거치다 보니 '지급'부터 최종 '결제'에 이르기까지 짧게는 2일에서 10일까지 시간이 걸린다. 해외로 송금되는 돈은 처리가 되는 동안 묶여있으므로, 은행에게는 그만큼 손해가 발생한다.
전 세계은행들은 기록 방식, 언어, 관행 등 장부 시스템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금융 사고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은행들은 약 40년 전부터 합의한 규칙을 사용해오고 있다.
이 규칙을 SWIFT(국제은행 간 통신협정)이라고 한다. SWIFT는 사용할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하고, 중개 단계가 늘어날수록 수수료도 늘어난다. 해외 송금 수수료가 비싼 이유는 대부분 이 SWIFT 사용료와 중개은행이 떼 가는 수수료 때문이다.
리플넷은 바로 이 현재 해외 송금 시스템, SWIFT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했다. 리플은 오랜 시간을 거쳐오면서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설계된 해외 송금 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효율화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리플 네트워크에 가입한 은행들은 중개은행을 거칠 필요 없이 각자의 전산 장부를 리플 블록체인과 연결하고, 그 위에서 은행 간 거래를 처리하게 된다.
리플 네트워크는 국경에 구애받지 않으므로 속도가 훨씬 빠르다. 또 리플 네트워크에서 거래 하나가 처리되는 시간은 10초 이내다. 기존 2~10일 걸리던 결제(settlement) 속도에 비하면 엄청 난 우위다. SWIFT에 비해서 훨씬 저렴하고, 각 은행별로 처리하던 중개 업무를 자동화하므로 비용 측면에서도 큰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블록체인의 경우 거래를 검증하는 시간이 최소 2.5분(라이트코인)에서 최대 10분(비트코인)이 걸리는데, 리플 블록체인은 어떻게 10초 내로 거래를 처리하는 걸까?
그 이유는 거래를 검증할 때 PoW(Proof-of-Work) 방식을 쓰는 비트코인과 달리, 리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거래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기 때문이다. 리플 네트워크의 검증 방식을 컨센서스 알고리즘(Consensus Algorithm)이라고 한다.
비트코인의 PoW 방식에 대해서는 이전 글 참고
- 외계어 없이 비트코인 블록체인 이해하기 https://brunch.co.kr/@bumgeunsong/41
컨센서스와 PoW의 가장 큰 차이는 검증에 참여할 수 있는 컴퓨터(node)가 미리 지정되어있다는 점이다. 이를 검증 노드(Validation node)라고 한다. 검증 노드들은 각 거래에 이상이 없는지를 검증하고 'Yes or No'를 표시한다. 80% 이상의 노드가 'Yes'를 하면 거래가 장부에 기록된다. 비트코인 블록을 만들 때처럼 복잡한 문제 풀이(hashing) 과정이 없다. 많은 양의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지도 않고, 몇 초 안에 거래가 기록된다. (채굴자도 없다.)
컨센서스 알고리즘을 자세하게 설명한 페이퍼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리플 블록체인은 탈중앙화를 포기하고 속도와 효율성을 얻었다. 최초의 블록체인은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trustless) 반대로 리플은 검증 노드들이 정직하다는 신뢰에 기반한다. 이 검증 노드들의 80%가 부정 거래를 통과시키면, 그걸 막을 방법은 없다. 대신 리플은 이 검증 노드들의 철저한 자격 심사를 하고 자격을 부여하며, 앞으로 외부의 공신력 있는 기관들이 운영하는 노드의 비중을 늘려간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리플넷은 '은행을 위한' 기술이다. 은행 입장에서 어떤 유용함을 제공하느냐에 따라서 장단점을 평가하는 것이 맞다.
사실 리플의 장점은 굉장히 명확하다. 은행들이 해외 송금 시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준다. 리플에 따르면 1년에 전세계적으로 소요되는 해외 송금 비용은 16000 조 달러($1.6 trillion)에 달한다. 은행들이 하루에 이 즉각적이고 명확한 유용성은 많은 은행들이 리플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리플넷은 '친금융기관적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의 유용성을 활용하면서도 기존 시스템과 법제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나 금융 기관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리플은 다양한 나라와 기관의 법과 절차에 맞추기 위한 규제 준수(Regulatory Compliance)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리플사에는 대외 협상 관련 부서가 있고, 맞춤화 규제 준수 시스템을 제공한다. 대표적인 것이 금융 기관의 고객 신원 파악 의무(Know your customer)와 자금 세탁 방지 의무(Anti money laundry)다.
퍼블릭 블록체인에서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규제 준수에 문제가 있는데, 리플에서는 금융 당국이 돈을 보낸 각 주체에 대해 신원 파악을 할 수 있고, 비상시에 거래를 취소하거나 동결할 수 있는 기능까지도 제공한다.
따라서 리플넷은 제도권에 편입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블록체인 기술 중 하나다. 대부분의 암호화폐들이 가지고 있는 정부 규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다. (정부나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를 규제하고 나설 때마다 리플의 이 반사이익을 보는 이유 중 하나다.)
리플넷이 사용하는 컨센서스 알고리즘은 불특정 다수가 검증하는 비트코인과, 금융 기관이 온전히 통제권을 가진 현재 금융 시스템의 중간쯤에 있다. 장부를 분산시켰지만, 합의 알고리즘이 완벽한 탈중앙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컨센서스 알고리즘의 검증 노드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유효하다. 복잡한 문제를 제시하고, 수많은 채굴자들을 경쟁시키고, 1등에게만 화폐로 보상을 지급함으로써 채굴자에 대한 신뢰가 없이도 블록체인 장부를 유지시키는 PoW 시스템과는 다르다. 만약 검증 노드들이 모두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말 그래도 리플 장부를 마음대로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만, 현재 검증 노드 대부분이 리플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중앙집중화 이슈가 있다. (물론 비트코인도 몇몇 채굴회사가 채굴을 독점하는 상황이어서 중앙집중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리플 사에서는 유니크 노드 리스트라고 해서 자신이 신뢰하는 노드만 선택해서 검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지만, 일단 노드 자체의 선택지가 많이 없고(55개, 출처 리플 홈페이지) 대부분이 리플 사에서 운영하는 노드여서 실질적으로는 중앙집중화를 약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리플사가 성패의 키를 쥐고 있는 네트워크에 가입하고 신뢰해야 하는 리스크를 지는 것이어서 도입이 꺼려질 수도 있다.
유용하기만 하다면 사용하던 서비스를 쉽게 바꿀 수 있는 대중과 달리, 기업들 특히 그중에서도 은행들은 변화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다. 최신 기술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 기술이 주는 혜택보다 잠재적인 위험을 더 크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잘 사용해온 안정적인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로 갈아탔다가 사고라도 나는 날에는 신뢰 하나로 먹고사는 은행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은행의 서버는 다 90년대 사용하던 컴퓨터라고 한다)
그래서 기존의 은행 전산망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리플 네트워크로 갈아타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현재 리플사의 파트너 리스트에 수많은 은행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테스트나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리플넷과 XRP를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사실 리플사에서도 이를 명확하게 잘 설명해주지 않으며 인터넷에 대부분의 자료들은 통칭 ‘리플’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대해 명확히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리플넷는 은행을 위한 블록체인 기술이며, 리플 네트워크 위에서 쓰이는 화폐(token)는 2가지 종류가 있다. 기초 화폐인 XRP와 차용증의 형태인 IOU이다. 즉, 은행들이 리플 네트워크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XRP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화폐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IOU는 ‘I owe you’의 줄임말이다. IOU는 정확히 말하면 화폐가 아니라 차용증이며, ‘내가 여기에 적혀있는 만큼의 돈을 줄게’라는 약속이다. 은행에서 발급하는 수표를 떠올리면 된다. 진짜 돈은 아니지만, 돈처럼 사용될 수 있는 물건이다.
이 차용증을 발행하는 주체를 게이트웨이(Gateway)라고 한다. 일정 자격을 갖춘 리플 네트워크의 참가자는 누구나 게이트웨이가 될 수 있다. 어떤 사용자가 자신의 화폐를 다른 리플 네트워크에서 거래하고 싶을 때 이 게이트웨이를 사용한다.
만약 내가 ASD라는 게이트웨이를 만들었다고 하자. A라는 사용자가 100만 원을 리플을 통해 송금하려고 한다. 그러면 ASD 게이트웨이에 100만 원을 준다. ASD는 100만 원을 원화로 받고 리플에서 거래할 수 있는 IOU를 발급해준다. 이 IOU를 ‘100만 원. ASD’라고 하자.
이 사용자의 리플 계좌에 ’100만원.ASD’라는 IOU가 입금된다. 그러면 사용자는 리플 네트워크 위해서 이것을 다른 리플 계좌에게 전송할 수 있다. IOU는 네트워크에서 여러 사용자들을 거친다. 최종적으로 IOU를 원화로 바꾸고 싶은 고객은 ASD 게이트웨이에 가서 이 IOU를 가지고 100만 원을 요구해서 현금화할 수 있게 된다.
IOU의 특징은 발행한 주체에 따라서 같은 화폐를 표시하더라도 다르게 취급된다는 점이다. IOU는 그 자체로써 화폐가 아니라 화폐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이다. 약속의 가치는 약속을 한 주체가 얼마나 신용도가 높은지에 따라 달라진다.
신장개업한 게이트웨이 ASD와 대형 은행이 만든 게이트웨이 BOK가 있다고 할 때, ASD가 발행한 100만 원짜리 IOU와 BOK가 발행한 100만 원짜리 IOU는 다르다. 따라서 이 둘은 1대 1로 거래되지 않는다.
[참고] 각 계좌는 자신이 신뢰하는 정도에 따라 해당 게이트웨이에서 발행한 IOU를 받겠다(또는 얼마까지 받겠다)라고 직접 설정할 수 있는데, 이를 ‘트러스트 라인(trust line)’ 설정이라고 한다.
IOU를 통해 외환 거래하려면, 내가 가진 원화 IOU를 내가 원화는 화폐인 달러 표시 IOU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리플 네트워크 안에서 서로 다른 IOU를 매칭 시켜주는 존재를 마켓 메이커(Market Maker)라고 한다. 마켓 메이커는 '100만원.ASD'를 받고, '1000달러.BOK'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기초 화폐만 존재하는 비트코인과 달리, 리플은 이 IOU 시스템을 통해 리플의 기초 화폐인 XRP를 이용하지 않고도, 온갖 종류의 화폐를 리플 내에서 거래할 수 있다. (물론 그 IOU를 발행해줄 게이트웨이와 IOU 거래를 연결해줄 마켓 메이커가 있어야 한다.)
IOU 시스템은 몇 가지 단점이 있다.
외환 거래는 서로 다른 화폐끼리의 직접 교환이다. 따라서 만약 서로 다른 화폐가 10개 있다면 45개의 쌍(pair)이 생긴다. 그런데 유로-달러처럼 거래량이 많은 쌍도 있겠지만, 태국 바트-덴마크 크로네처럼 거래량이 적은 쌍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거래를 원하는 상대방을 찾기가 힘들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가격보다 비싸게 살 수밖에 없다. (Spread) IOU를 사용하면 일반 외환 거래와 똑같이 수많은 쌍이 생기고 서로 다른 IOU의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에 거래량이 부족한 쌍이 생기고, 유동성 문제가 발생한다.
IOU는 네트워크의 다른 참가자인 게이트웨이가 발행한 것이다. IOU는 게이트웨이의 신용도에 의존한다. 즉, 나는 누군가가 발행한 '부채'를 가지고 있다. 만약 IOU를 발행한 게이트웨이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파산을 하면 돈을 받지 못한다. 이를 거래상대방 리스크(Counterparty)라고 한다.
게이트웨이는 신용을 보증하는 대가로 소정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물론 여전히 기존 해외 송금 시스템보다는 훨씬 싸다.
이제 리플의 두 번째 무기 XRP가 등장한다.
XRP는 리플넷에서 사용되는 기초 화폐이다. XRP는 2가지 역할이 있다.
첫 번째, XRP는 리플 네트워크 사용할 때 수수료를 지불하는 수단이다. 리플넷 위에서 거래를 하려면 극소량의 XRP(0.00001 XRP)를 사용해야 한다. 처음 리플 계좌를 만들 때 필요한 기본 보유금(20 XRP)으로도 사용된다. (이 수수료는 과도한 사용을 통해 네트워크를 불안정화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따로 누군가에게 분배되지 않는다.)
두 번째, XRP는 화폐들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브릿지 통화(Bridge Currency) 역할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은행들이 외환 거래를 할 때는 두 쌍의 화폐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양이 거래되는지 (유동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어떤 화폐 쌍들은 거래량이 부족해서 환전을 하기가 어렵다.
XRP는 화폐 교환의 매개체가 되어 유동성을 증가시킨다. 예를 들어, 세 종류의 화폐(달러, 유로, 파운드)가 있고, 각 화폐 쌍에 대한 하루 거래량이 다음과 같다고 하자. (설명이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환율은 무시한다.)
파운드 - 달러 : 1조 원 (GBP/USD)
달러 - 유로 : 1조 원 (USD/EUR)
유로 - 파운드 : 1조 원 (EUR/GBP)
각 화폐 쌍의 거래량은 1조 원이다. 이 상황에서 모든 환전이 브릿지 화폐인 XRP를 거친다고 해보자.
파운드 - XRP - 달러 1조 원
달러 - XRP - 유로 1조 원
유로 - XRP - 파운드 1조 원
그러면 XRP와 다른 화폐의 거래량은 2조 원이 된다.
파운드 - XRP : 2조 원 (GBP/XRP)
달러 - XRP : 2조 원 (USD/XRP)
유로 - XRP : 2조 원 (EUR/XRP)
XRP라는 매개체는 서로 다른 화폐들이 1대 1로 각각 거래되어 나누어져 있던 거래량을 집중시킨다. 여기서는 3가지 화폐의 예만 들었지만, 만약 거래하는 화폐의 종류가 수십 가지라면 수백 가지의 화폐 쌍이 나오게 되고, 거래량 증가 효과는 훨씬 클 것이다. 거래량이 증가하면 그만큼 환전을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다.
앞서 IOU는 진짜 화폐가 아니라 ‘지급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에 발행 주체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리스크, 즉 거래상대방 리스크가 발생한다고 했다. XRP는 거래상대방 리스크가 없다. 게이트웨이의 신뢰도와 상관없이, XRP는 그 자체로써 가치가 인정되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리플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은 모두 XRP를 화폐로 인정한다.
게이트웨이에서 IOU를 발행할 때 게이트웨이는 신용보증의 대가로 소정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수수료는 거래량이 적고 취급하는 게이트웨이가 적을수록 비싸진다. 물론 기존의 SWIFT 수수료보다는 여전히 훨씬 싸지만, XRP는 추가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IOU보다 거래비용이 적게 든다.
XRP의 60%를 리플사가 소유하고 있다. 리플 사가 보유한 60%나 되는 화폐는 화폐 가치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양이다. 리플 사가 보유한 XRP를 팔아 현금화하면 공급량이 늘어나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즉, 리플 사가 XRP에 대한 상당한 통제력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리플 사는 XRP를 널리 도입시키고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인 회사다. XRP를 팔아 화폐 가치를 심각하게 떨어뜨리거나 할 유인은 적다. 하지만 여전히 특정 회사가 화폐에 대한 막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은행 고객들의 입장에서도 상당한 우려 사항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리플 사는 외부 에스크로 계좌에 XRP를 옮겨서 리플 사가 마음대로 XRP를 마음대로 팔 수 없게 만들고, 앞으로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천천히 유통시키겠다고 발표했다.)
두 번째 단점은 XRP 거래가 한번 일어나면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XRP는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이기 때문에, 누구도 거래를 변경하거나 취소할 수가 없다. 반면 IOU는 발행주체가 있고 적절한 사유만 있다면 거래를 취소/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 XRP를 사용할 경우 전산 오류나, 계좌 도난 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세 번째 단점은 아직 XRP가 브리지 통화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실 XRP의 근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XRP가 브리지 통화로 많이 사용되어야 사용 가치가 높아지고, 사용 가치가 높아야 XRP가 많이 사용된다. 현재까지는 XRP의 거래량은 외환 시장의 거래량에 훨씬 못 미친다. 유동성을 높이는 효과가 크지 않으므로 은행이 사용할 유인이 적다.
리플 투자자들 중에서는 리플 사와, 리플 네트워크와 XRP를 동일하게 ‘리플’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셋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지만,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리플 사의 이익이 리플 네트워크의 이익은 아니며, 리플 네트워크의 성장이 반드시 XRP의 가치 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셋 모두의 가치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금융기관들이 실제로 리플을 사용해서 외환 거래를 하느냐’에 긴밀히 연관되어있다.
(그래서 최근 리플의 기록적인 상승은 일본 SBI 은행이 실제로 리플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뉴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은 테스트에 들어간다고 발표했었지만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움직임 때문에 없던 일로 했다고 한다.)
<관련 뉴스>
'리플' 주고받는 해외송금… 우리·신한은행 '없던 일로'
1. 은행을 대체하려는 비트코인, 은행을 보완하려는 리플
2. SWIFT를 통한 해외 송금은 2-10일의 시간과 비용. 리플은 이 문제를 해결.
3. 리플은 프라이빗 블록체인이며 매우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검증 노드에 대한 신뢰가 필요
4. 리플 네트워크의 거래 방식은 IOU와 XRP가 있음.
5. IOU는 다양한 통화를 리플넷에 올려서 거래할 수 있으나, 추가적 리스크를 지며 유동성 문제가 발생.
6. XRP는 환거래의 유동성을 증가시킴. 다만 XRP는 리플 사가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고 거래의 취소/변경이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