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범근 Mar 13. 2018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사회적, 역사적 의미

투자자도 아닌 문돌이가 블록체인/암호화폐를 공부하는 이유

내가 블록체인/암호화폐에 관한 글을 쓴다는 걸 알면, 이런 반응이 자주 나온다.


"투자 많이 하나보네? 뭐..? 투자도 안하는데, 블록체인 글을 쓴다고?"

"요즘 코인 시장 재미없지 않아? 아직도 그거 글 써?"

"그래서 무슨 코인 사야되냐?"

"너 프로그래밍 좀 알아? 블록체인 개발하려고?"


나는 암호화폐로 돈을 버는 투자자도 아니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서비스를 개발하는 개발자도 아니다. 내가 이걸 공부하고 글을 쓰는 주요한 이유는 '재미있어서'다. 정확히 말하면 블록체인이 기술, 암호화폐라는 자산 그 자체보다는 그것들이 가져올 사회적 변화가 정말 흥미롭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을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내가 경제, 정치, 역사, 철학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내용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 부분을 탐구하고 알아가는게 주된 재미다. 


오늘은 투자나 기술의 관점이 아닌, 블록체인/암호화폐가 가지는 사회적,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써보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협력 방식 진화였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구분하는 특성은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고 말한다. <사피엔스>는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가 ‘모르는 사람과 협력하는 능력’을 통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책이다. 

 

유명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개인적 관계를 통해 협력할 수 있는 집단은 규모는 150명 내외라고 한다. 그래서 150명 이하의 사회에서는 혈연이나 친분 관계 등을 통해서 사회가 유지된다. 하지만 인간은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어, 수만 명이 사는 도시, 수십만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인간이 ‘국가’, ‘화폐’, ‘기업’ 등 공통의 개념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이것을 허구의 ‘이야기’(Fiction)라고 부른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믿을 수 있다. 인간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협력할 수 있다. 


하나의 국가를 믿는 사람들은 서로를 전혀 모르더라도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었으며, 같은 화폐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은 불편한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도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을 얻을 수 있었다.  


개체로써는 평범했던 호모 사피엔스는 대규모의 조직적 협력을 기반으로 제도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제도와 기술 발전은 또다시 인간들이 협력하는 방식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인간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마다 사회가 할 수 있는 협력의 수준과 범위가 늘어났다. 그리고 협력의 진화는 거대한 변화로 이어졌다. 

 

예를 들면, 국가라는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을 서로 결속시키고 정치적으로 협력하도록 만드는 데 뛰어났다. 국가에 소속된 개인들은 강력한 중앙 권력과 위계질서 하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역할을 나누고, 필요한 물건을 만들었다. 그런데 국가는 ‘상품의 생산과 교환’이라는 경제적 측면의 협력에서는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인류는 ‘화폐’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화폐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시장이라는 협력 방식이 생겨났다. (여기서의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가격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결정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시장에서는 왕이 명령하지 않아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자율적으로 가격과 생산량이 조절되었다. 


중앙 권력이 없어도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자, 인류는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훨씬 더 발달한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협력의 수준이 더 높아졌고, 국가를 넘어서 상품의 교환이 이루어졌다. 


상품의 생산자와 판매자들은 대부분 개인들(상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인류가 만들어내는 상품이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지면서 훨씬 더 큰 규모의 협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업’이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했다. 자본, 노동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기업을 중심으로 상품의 생산이 이루어진다. 가내수공업이었던 상품/서비스의 생산이 점점 더 거대 기업들에 의한 대량 생산으로 바뀌어갔다. 


기업들은 국가와 비슷한 방식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했지만, 훨씬 상품/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있어서는 더 효율적이고 조직적이었다. 기업과 시장이라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없었을 것이다. 

 

인류는 문명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들을 발전시켜왔다. 이 ‘이야기’들은 인류가 협력하는 방식을 진화시켰다. 협력 방식이 진화할 때마다 인류 사회는 한 발씩 진보해나갔다. 



‘연결’과 ‘사회적 신뢰’를 통한 협력의 진화 

 

인류의 협력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왔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 진화 방향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 2가지가 바로 ‘연결’, ‘신뢰’의 확장이다.  



연결이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연결의 확장은 인간이 협력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더 많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을 때 사회는 발전한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이 대표적이다. 말로만 소통하던 인류가 종이를 통해 소통할 수 있게 되고, 전화기 멀리 떨어진 사람과 실시간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면서 사회가 얼마나 극적으로 변화했는지 생각해보자. 



신뢰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까’의 문제다. 인간은 항상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거짓말할 수 있고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협력을 하려면 일단 상대방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믿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개인적 신뢰를 쌓는 것이다. “내가 그 친구를 아는데, 사기를 칠 사람이 아니야”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관계의 범위는 매우 좁다. 수천수만 명과 개인적 신뢰를 쌓을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는 항상 ‘개인적 신뢰’를 줄이고 ‘사회적 신뢰’를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사회적 신뢰를 보증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법이다. 사회가 법을 만드는 이유는 다른 사회 구성원을 믿기 위해서다. 법이 없으면 저 사람이 나에게 사기를 치지 않을까,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까 항상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법이 있으면, 만약 상대방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하더라도, 법 제도를 통해 문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인간적 신뢰는 비싸고 범위가 좁다. 하지만 법, 제도, 규칙 등을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놓는다면, 저 사람을 잘 모르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협력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 신뢰의 확장’이다. 내가 모르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협력의 범위는 넓어진다. 


 

‘국가’의 진화에서 보는 연결과 신뢰의 확장 


 초기의 국가를 생각해보자. 몇 천년 전의 국가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전령뿐이었다. 멀리 떨어진 지역과 소통이 어렵다 보니, 국가의 범위는 대부분 도시 수준에 머물렀다. 큰 국가가 있더라도 중앙 권력이 각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하지만 종이, 마차, 항해술 전화 등 통신/운송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개인과 개인의 연결 범위가 크게 넓어지고, 연결이 훨씬 더 쉬워졌다. 중앙 권력이 엄청나게 넓은 범위의 지역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킬 수 있게 되었다. 도시 수준이었던 국가는 연결의 확장을 통해 수 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으로 발전했다.  

국가에서 '신뢰' 측면을 보자. 초기의 국가는 왕이 모든 결정을 내렸다. 왕이 무능하거나 부패하면 국민들은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인류는 법치주의를 도입했다. 법이라는 안전장치를 만들어 권력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였다. 법이 있으면, 권력자들에 대한 ‘개인적 신뢰’가 덜 중요해진다. 법과 제도가 사회적 신뢰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법으로 만들 수 없는 의사결정의 경우에는, 국민들의 투표로 뽑힌 정치인들이 결정하도록 만들었다. 다수의 개인들이 정치 시스템에 대한 통제권을 갖게 된 것이다. 민주주의와 투표 제도는 특정 인간에 의한 위험을 줄이고, 사회적 신뢰를 증가시켰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는 국가라는 ‘이야기’가 한 단계 진화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국가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연결과 신뢰를 중심으로 발전해나간다. 시장의 경우를 보자. 시장도 ‘연결의 확장’을 통해 발전해왔다. 통신/운송 기술의 발전할 때마다 시장의 범위가 점점 더 커졌고, 이제는 지구 전체가 글로벌 경제로 묶였다. 그 덕분에 한국에 사는 나도 페루산 와인과 아프리카산 커피를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백 년 전의 인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신뢰’는 어떨까? 초기의 시장은 신용이나 평판에 의존해 거래를 했다. 현대 자본주의는 ‘상법’과 ‘계약’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거래 상대방에 대한 위험을 줄여준다. 만약 상대방이 계약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법대로 하자!’라고 고소를 할 수 있다. 상법과 법적으로 인정되는 계약은 상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를 증가시킨다.   


인간의 협력 방식은 연결이 확장되고, 사회적 신뢰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바꿔 말하면 개인들 간의 연결과 신뢰를 증가시키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류가 발전해왔다는 뜻이다.  

 

아니 하라는 블록체인/암호화폐 얘기는 안 하고, 이렇게 길게 인류의 역사를 읊고 있는 거냐고? 

물론 이유가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또한, 오늘날 인류가 협력하는 방식을 바꿔놓을 기술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협력 방식 


 

불과 몇십 년 전에 국가, 시장, 기업에 이은 새로운 협력 방식이 등장했다. 바로 디지털 기반의 네트워크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인류는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협력할 수 있게 되었다. IT 기술은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우리는 이제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은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네트워크를 통해서 할 수 있는 협력은 무궁무진하다.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다. 한국에 살면서도 미국에서 판매하는 한정판 신발을 직접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 전혀 모르는 현지인의 방을 빌려 쓸 수 있게 되었다. ‘네트워크’를 통한 협력의 발전, 우리는 이것을 정보 혁명, IT 혁명이라고 부른다. 

 

네트워크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했다. 지난 30년간 ‘네트워크’의 주요 키워드는 ‘연결’이었다. 우리 삶을 바꿔놓은 네트워크의 활용 사례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기반에는 모두 연결의 확장이 깔려있다. 월드와이드 웹도, LTE 통신망도, 스마트폰의 등장과 같은 혁신들은 결국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어가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였다. 요즘 인터넷 기업들의 미션 선언문에는 ‘연결(Connection)’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에 ‘신뢰’는 어떨까? 



네트워크에서 상대방을 신뢰하는 방법 


인터넷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게 ‘연결’ 해주지만, 하지만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보증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네트워크에 존재하는 상대방을 신뢰하는 걸까?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을 할 때 이 상품이 정말로 게시된 것과 같은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군가와 채팅을 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계약서를 메일로 받았을 때 그것이 위조되지 않은 원본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현재 해결책은 바로 ‘기업이 연결을 중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고객이 부산에 있는 옷 장수에게 옷을 산다고 해보자. 개인 대 개인으로써 거래를 하면 이 사람이 내가 돈을 보냈을 때 이 사람이 정말로 옷을 보내줄지 안 보내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중개자인 기업을 통해서 옷을 구매한다.  

 

G마켓이나 11번가와 같은 기업들은 평점이나 리뷰를 통해서 이 판매자의 신뢰를 보증하고, 에스크로 서비스를 사용해서 소비자가 실제로 옷을 받았을 때만 판매자에게 돈이 전달되도록 해준다. 이 기업들이 중간에서 신뢰를 보증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네트워크에서 만난 상대방을 모르고 개인적 신뢰가 없더라도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예시 하나 더. 돈을 주고받을 때를 생각해보자. 온라인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때 누구도 개인 대 개인으로 하지 않는다. 반드시 은행이라는 중개자를 거친다. 은행은 당신이 보낼 만큼의 돈이 있는 사람인지, 내가 보내는 사람이 그 사람이 맞는지를 확인해준다. 만약 누군가 돈을 받고도 안 받았다고 시치미를 뗀다면 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래 기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준다. 


덕분에 나는 상대방의 정직함을 믿지 않더라도, 은행을 통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다. 기업이 네트워크 내의 사회적 신뢰를 보증해주는 것이다. 

 


기업들은 연결을 중개하고 신뢰를 보증해서 우리가 네트워크에서 협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기업이 네트워크를 중개하는 방식에는 2가지 큰 문제가 있다.  

1) 협력의 범위가 제한되고, 2) 기업들이 네트워크 내에서 거대한 권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 1. 협력의 확장성이 줄어든다. 


중개 기업들은 공짜로 연결을 중개하고, 신뢰를 보증해주지 않는다. 오픈 마켓에서 물건을 사거나, 다른 사람에게 돈을 보낼 때 기업에게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협력에 대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그리고 만약 중개 기업이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으면 서로 협력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스페인에 있는 페르난도에게 온라인으로 돈을 받는다고 하자. 하지만 은행의 네트워크는 국경의 제약을 받는다. 내가 사용하는 국내 은행은 페르난도가 얼마의 돈을 가졌는지 모르고, 페르난도의 신뢰를 확인해줄 수도 없다. 즉 나와 페르난도를 연결해줄 수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몇 개의 중개 은행을 거쳐서 건너 건너 돈을 전달받는 것이다. 그 와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실시간이고 (거의) 공짜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있는 친구에게 돈을 보내는 것은 비싼 수수료가 들고 며칠씩 시간이 걸린다. 신뢰 보증 비용은 신뢰가 중요한 데이터(예를 들면 송금) 일 수록 높다.  


개인들은 ‘엄청나게 저렴한 비용(데이터를 전송하는 비용)’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에 신뢰 보증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거나 기업이 보증하는 신뢰의 범위에 갇히게 된다. 


이건 자동차라는 새로운 운송 수단을 개발해놓고서, 여전히 이전에 사용하던 마차길을 달려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네트워크는 가능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 2. 중개 기업들이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지게 된다.  

‘네트워크’는 사용자가 많을수록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천 명이 사용하는 메신저와 천만명이 사용하는 메신저가 있다고 하자. 기능은 똑같다. 하지만 둘의 가치는 천지차이다. 천만명이 쓰는 네트워크는 훨씬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 수 있고,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당연히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네트워크를 쓰고 싶어 한다. 그래서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더 큰 네트워크를 선택한다. 그러면 그 네트워크의 가치는 다시 증가한다. 이것을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과정을 반복하면 가장 큰 네트워크만이 살아남게 된다. 네트워크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독점이 생겨난다. 


 그래서 인터넷 기업들은 대부분 독과점 기업이다. 메신저의 카카오와 검색 엔진의 네이버를 생각해보자. 이 기업들은 이미 사용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강력한 독점을 구축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쓰기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톡이 가장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다. 누군가 네이버나 카카오톡보다 더 기능이 좋은 인터넷 서비스를 만든다고 해도, 이미 네트워크 효과를 확보한 네이버나 카카오톡을 이길 수는 없다. (물론 실제로는 100% 독점은 아니다.) 


네트워크의 연결을 기업이 중개하게 되면, 네트워크는 가장 큰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중앙화 된다. 중앙화된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은 자연스럽게 시장 지배력을 갖게 된다. 


이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기업들은 네트워크에서 엄청난 권력을 발휘한다.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를 어떻게 배열할지, 네이버가 뉴스 메인에 어떤 기사를 먼저 보여줄지, G마켓은 상품 검색 첫 줄에 어떤 상품을 띄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 기업들이 중개하는 네트워크를 쓰기 때문에 이런 결정권은 개인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이 힘을 바탕으로 인터넷 기업들은 노출을 원하는 기업들을 첫 화면에 띄워주는 식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  


개인들의 삶의 점점 더 많은 부분들이 네트워크 위로 옮겨지면서, 인터넷 기업들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기업 1~6위는 모두 ‘네트워크’를 소유한 기업이라는 점은 이런 현실을 아주 잘 보여준다.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텐센트, 2017년 4분기 기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들은 이 기업들에게 책임을 강요할 통제권이 없다. ‘그 기업의 네트워크를 안 쓰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다른 모든 사람들이 쓰고 있는 네트워크를 쓰지 않으면 내가 할 수 있는 ‘협력’의 범위가 크게 줄어든다. 카카오톡을 지우면 당장 내 친구들과 연락을 할 수가 없다.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개인들과 협력하면 어쩔 수 없이 독점 기업들을 거쳐야 한다.  


네트워크 내에서 사용자들의 의사결정권은 점점 약해진다. 개인들은 인터넷 기업들에게 더 의존하게 된다. 정치의 경우보다 더 상황이 안 좋다. 우리는 국가를 선택할 수 없지만, 적어도 투표를 할 수는 있다. 국가에게 책임을 강요할 수단이 있다. 하지만 인터넷 독점 기업들은 그런 통제권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구글, 네이버,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에게 그만한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기업들의 힘을 별로 의식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이것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인터넷 독점 기업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고, 네트워크 사용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기업들을 무작정 신뢰하는 수밖에 없다. 


 


중간 요약 

1) 인류는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협력 방식을 통해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다.  

2) 그러나 신뢰를 보증하는 방식은 여전히 ‘기업’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3) 기업을 중심으로 중앙화 된 네트워크는 협력의 범위를 제한하고, 권력의 독점을 일으킨다. 


 



사회적 신뢰를 만드는 기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기술’이다. 블록체인 위에 기록된 데이터는 암호학/컴퓨터 공학/경제학적 메커니즘을 사용해 위조되거나 잘못 입력되지 않도록 설계되어있다.

 

블록체인은 단순히 데이터의 신뢰를 보증하는 것을 넘어서서, 암호화폐라는 자산의 기초가 된다. (여기서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 ‘보상’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암호화폐도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일단 암호화폐는 이런 특징을 가진다는 것만 알아두자. 

 

- 암호화폐라는 자산의 가치는 네트워크의 가치와 연동된다.  

- 네트워크의 개인들이 가치 있는 일을 할 때마다 그 자산으로 보상을 해준다.  


 개인들이 바람직한 일을 할 때마다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암호화폐는 각 개인들이 공공의 이익(네트워크의 가치)을 위해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 된다. 네트워크의 참여자들은 암호화폐를 통해 정직하게 행동해야 할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 


정리하자면, 블록체인은 기록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보증하는 기술이고, 암호화폐는 네트워크의 개인들이 정직하게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자산’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라는 자산을 조합하면, 네트워크 내에서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보증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에 대한 개인적 신뢰가 없더라도, 같은 블록체인을 믿는 사람들끼리는 협력할 수 있게 된다.  


블록체인과 암호화 폐가 어떻게 신뢰를 보증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다음 글을 보면 관련된 내용이 나와있다. 


일단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네트워크 내에서 협력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기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자. 

진짜 중요한 것은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다. 

 


기업의 신뢰를 대체하는 블록체인

블록체인은 네트워크 위에서 신뢰를 보증하던 기업들을 대체한다. 개인들은 더 이상 기업을 거치지 않고도 네트워크 내의 ’사회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보낼 수 있게 된다. (비트코인) 특정 기업들에게 중앙집중화되어 있던 ‘네트워크’를 ‘탈중앙화’시킬 수 있다.  

 

네트워크를 탈중앙화시키면, 아까 말했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들의 권력 독점을 줄일 수 있다. 블록체인은 모두에게 공개되며 누구의 자산도 아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굳이 같은 기업을 믿지 않아도, 같은 블록체인을 믿기만 하면 서로 신뢰할 수 있다. 기업들은 국경의 제약을 받았지만 블록체인에는 국경도 없다. 더 많은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협력의 비용도 줄어든다.  


인터넷이 네트워크의 ‘연결을 확장’시켰다면, 블록체인은 사회적 신뢰를 만들어내서 네트워크의 가능성에 날개를 달아준다. 마차길을 달려야 했던 자동차가 이제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네트워크가 탈중앙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은행을 완전히 대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탈중앙화는 아무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은  '효율성'을 희생해서 '탈중앙화'를 얻는다.


블록체인은 현재 기업 중심의 중앙화 네트워크보다 훨씬 더 비효율적이다. 중앙화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중개 작업을 하나의 기업이 처리하고, 기업의 서버에 모든 데이터가 저장된다.  그 기업의 처리 속도만 향상시키면 전체 네트워크의 효율성도 올라간다. 하지만 탈중앙화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데이터를 같이 저장해야 한다. 중개 작업을 불특정 다수가 처리하기 때문에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컴퓨터의 평균적인 처리 속도 이상을 낼 수가 없다. 

독재 체제와 민주주의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한 명이 결정하고 따르는 게 사실 제일 효율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가장 '효율적인'시스템은 아니다.

 

물론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효율성도 점점 올라갈 것이다. 탈중앙화 네트워크의 효율성 증가는 전세계 수많은 개발자들의 핫이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탈중앙화 네트워크가 중앙화 네트워크보다 빨라질 수는 없다. 이걸 바탕으로 새로운 블록체인/암호화폐가 나왔을 때 성공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특정 서비스를 탈중앙화하는 것의 가치가 중앙화된 서비스의 효율성과 편의성보다 큰가? 여기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만 의미있는 탈중앙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혁신인 이유, 그리고 그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이유 


사회적 신뢰를 증가시키는 기술, 제도가 나타날 때마다 인류의 협력은 계속 발전해왔다. 블록체인/암호화폐는 네트워크 내의 사회적 신뢰를 보증하는 기술이다.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라는 조직을 '탈중앙화'라는 방향으로 한 단계 진화시킨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혁신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국가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도입을 통해 한 단계 발전했듯이, 블록체인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한 단계 발전시킬 것이다. 

  

‘블록체인/암호화폐’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가지를 떠올린다.  

복잡한 코드, 암호학, IT용어. 혹은 오르락내리락하는 암호화폐의 가격 차트다. 블록체인을 보통 사람들과 관련 없는 첨단 기술 혹은 크게 한번 벌어볼 수 있는 투자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록체인/암호화폐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가격 차트와 기술 용어 너머에 있는 블록체인의 본질, 블록체인의 인문사회적 의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인류의 발전 방향을 역사적으로 해석할 때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변화, 협력의 진화다. 우리는 전화기가 아니라 전화가 가져온 연결의 확장을 봐야 하고,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가져온 신뢰의 확장을 봐야 한다. 우리는 블록체인이 아니라, 블록체인이 가져올 ‘사회적 신뢰의 확장’를 봐야 한다.  

 

블록체인/암호화폐는 인류가 협력하는 방식을 바꿔놓을 기술이다. 우리는 이미 20년 동안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바꾸는지 봐왔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연결’의 확장을 통해 사회를 바꿔왔다.  


블록체인은 ‘사회적 신뢰의 확장’을 통해 인간 사회가 협력하는 방식을 바꿔놓을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는 네트워크라는 이야기가 우리 삶에 더 깊숙이 스며들 것이다. 그 네트워크는 블록체인이 보증하는 사회적 신뢰를 기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블록체인을 직접 개발하거나, 암호화폐에 투자하지 않으면서도 블록체인/암호화폐에 대해 공부하는 이유이다. 



참고자료

탈중앙화는 왜 중요한가 by Chris dixon 

화폐, 블록체인, 사회적 확장성 by Nick Szab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