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급쟁이, 마누라.

by 숙이

남편, 오늘 강릉으로 첫 출근.

오전에는 서울에 있는 본사에 가서 임명장을 받고 오후에 강릉에 있는 새발령지로 가야한다.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남편의 첫출근 날 아침밥을 내가 챙겨주기로 다짐했었는데, 밤새 뒤척거리다 또 까먹어 버렸다.

설잠을 자는 중에 부엌에서 닭죽의 고소한 냄새가 안방까지 스며들었다.

5년 넘게 남편의 아침밥을 챙겨줄 임무를 내팽개친 것을 어제 깊이 반성하며 잤었는데 또...

그런데 생각해보니 오늘 새 발령지로 출근하는 첫 날인데 죽을 먹여서 보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 나가보니 남편은 벌써 넥타이까지 메고 쇼파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그래.. 생각이 많겠지.

차로 20분이면 가던 회사를 두고 트렁크에 짐을 다섯보따리나 싸서 서울을 경유해 강릉까지 가는 대여섯시간의 출근길을 생각하면 어찌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무덤덤하고 표현도 잘 안하지만 마음속엔 긍정적이고 따뜻한 난로가 있는 남편.

그 남편이 조금은 쓸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봉급쟁이 마누라인 나는 남편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나 생각하게 된다. 봉급쟁이 마누라 점수 60점.

평균은 겨우 넘겼지만 스스로도 부끄러운 나.

어제 저녁, 배달음식 몇개 시켜놓고 오랜만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먹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 아닌 아들들이 좋아하는 치킨과 떢볶이를 먹으며 콜라로 아빠를 위한 건배를 한 뒤, 아이들에게 아빠에게 한마디씩 응원의 말을 한마디씩 하라고 강요 했었다.

큰아들은 건강을 잘 챙기라고 하고, 입이 너무도 무거운 둘째는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고, 나는 이제부터 아빠가 집을 나서거나 집으로 돌아오면 꼭 껴안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었다.

그동안 아빠가 출퇴근을 할 때마다 아이들이 아빠 보기를 소 닭쳐다보듯 했던 싸가지 없던 행동들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그건 엄마한테서 배운 학습효과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으로 더더 강조했었다.

그 중요한 엄마의 의견을 다 잊고 곤히 잠들어 있는 둘째를 남편이 먼저 꼭 안아주고, 비몽사몽으로 서있는 큰아들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고 마누라는 엘리배이터 앞에서 안아주었다.

큰아들이 아빠를 위해 땀흘리며 청소해놓은 차에 바리바리 짐을 싣고 떠나는 남편을 향해 손 흔들어주다가 문득 남편이 어제 아들에게 하던 말을 떠올렸다.

"아빠처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 않으려면 전문직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아."라던...

남편은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일을 30년 가까이 해왔는데.. 정말 열심히 책임감 있게 했는데... 전문가처럼 일했는데...

유난히 따갑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부서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돌아서자마자, 봉급쟁이 남편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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