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걷기 예찬

인간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인공지능

by 범진

나는 하나의 무드를 지속하는 행위를 ‘길’이라고 부른다. 길은 걸어가기 위해 존재한다. 하나의 길 위에서 존재는 흐름을 따라갈 수 있고, 그 끝에는 목적지가 있다. 그곳에 도착하면 멈추거나 다음 길을 선택한다. 하루 동안 인간이 몇 가지 무드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현실에서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것과 닮아 있다.


다양한 일을 한 번에 처리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마치 칼로 자른 것처럼 여러 일의 경계를 분명히 구분한다. 객관적인 정보와 주관적인 정보를 구분하는 일,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하는 일. 경계를 세우는 능력은 다양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하는 기술이다.


인간은 무드를 따라 일을 하며 여러 일 사이의 구분을 분위기로 전환하는 듯하다. 생각, 호르몬, 기분 등 다양한 요소 속에서 인간의 변화는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하루에 바꿀 수 있는 무드는 기껏해야 밥을 먹는 무드, 공부하는 무드, 일하는 무드, 운동하는 무드, 친구나 연인과 이야기하는 무드 정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큼이다. 그중 가장 효율적으로 무드를 전환하는 방법은 음악을 활용하는 것이다. 도서관 배경음, LoFi, 클래식 등 각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통해 새로운 무드를 만들어 낸다.


인간이 그러하듯 인공지능 또한 여러 일을 다룬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이 무드를 전환하는 데 필요한 것은 스위치의 온오프, 혹은 몇 줄의 텍스트면 충분하다. 뉴스 기사를 분석하다가 오늘의 메뉴를 정해 주고, 메일을 수정해 주는 일까지, 인간보다 더 많은 일을 처리하면서도 그가 지니는 무드의 경계는 훨씬 더 명확하다. 인공지능이 걸어가는 길은 도심 속 교차로보다 더 복잡하지만, 쿠팡의 물류 로봇이 움직이는 경로만큼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책 『걷기 예찬』에서는 인간을 몸으로 길을 걸어가는 존재로 이야기한다.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그 위의 풍경을 느끼고 경험한다. 신체를 지닌 인간이 걷는 길은, 잘못 들어서면 멀리 돌아 다시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생각 또한 하나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멈추고 다른 길을 선택해 다시 걸어간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걸어가는 길은 인간의 신체가 걷는 길과는 다르다. 그가 하는 일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일,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생각을 구성해 가는 일이다. 마치 기묘한 이야기에서 윌 바이어스가 사고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듯이 말이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걸어가는 길이 인간의 육체가 걷는 길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가 걷는 길이기 때문에,

그것은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교정된다.


그래서 그 길 위에는 문화와 소소한 행복이 아직 충분히 꽃피지 못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