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을 일으키고 가라앉은 말
초등3학년 2학기 과학에는 '소리의 성질' 단원이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집에서 소리를 하나씩 녹음해 선생님에게 보내라는 숙제를 냈다. 가방 지퍼를 여닫는 소리, 캔 음료를 따는 소리, 젓가락이 맞부딪치는 소리. 아이들이 일상의 소리를 찾아 녹음해 보내왔다.
단원 첫 시간, 친구들이 어떤 소리를 담아왔을지 맞춰보는 퀴즈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귀를 쫑긋 기울이고 열띠게 손을 들었다. "저요, 저요! 저 알겠어요."
다음 과학 시간, 소리굽쇠를 치자 파르르 떨리면서 '땡-'하는 금속음이 울렸다. 그것을 재빨리 물이 담긴 수조에 넣으면 수면에서 물이 튀었다. 아이들은 책상과 교과서에 물이 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신나게 그것을 때리고 물에 집어넣기 바빴다. 땡, 치이익. 땡, 치이익. 수업 내용은 이렇게 한 줄로 정리했다. "물체가 떨리며 소리가 난다."
살면서 수많은 말들이 우리 귀를 스친다. 그중 어떤 말은 귓바퀴를 타고 들어와 고막을 떨리게 한 후 마음까지 들어와 그 수면을 흔든다. 그러고는 천천히 가라앉아 버린다. 흩어진 줄 알았는데 마음 어느 구석에 구겨져 있었는지, 시간이 지나도 불쑥 떠올라 펼쳐지곤 한다.
어떤 말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거친 물을 튀긴다. 홀로 고개를 숙이고 닦아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한번 젖은 교과서는 말려도 울룩불룩 해지고 만다. 누군가의 한 마디로 한 시절을 버티기도 하고, 사람은 멀어졌어도 말과 표정만은 남아 떠올려 추억하기도 한다.
"송은이는 이름에 받침이 세 개나 있구나!"
국어 시간 선생님의 한마디에 초등학교 일 학년 아이는 자기 이름 받침을 세어 보며 기뻐했다. 받침이 세 개라는 공통점만으로 친구와 팔짱을 끼며 단짝이 되는 나이였다.
"너 요새 나사가 너무 빠졌어."
모범생의 자리에서 슬쩍 비껴나 수업 시간에 장난을 치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갈 즈음, 날아온 선생님의 지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 꽉 조여진 나사같았던 모범생의 자리,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어쩔줄 몰라 어정쩡했다. 재미는 없지만 익숙하고 틀릴 리 없는 자리로 되돌아가라는 신호였다.
"학생, 집에 형제가 많지요?"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듣는 선택과목 강사님이 무얼 보고 알아차리셨을까? 한동안 놀라고 궁금했다. 사 남매의 중 셋째, 딸 셋에 막내아들 집안의 셋째 딸인 것이 나의 성격과 사회생활에 어떤 특이점을 보이는 것이길래.
발끝에 떨어진 종이비행기 같은 말, 아무렇게나 구겨진 종이뭉치 같거나 고이 접어둔 편지 같은 말들을 하나씩 펴서 햇볕에 말려본다. 눅눅해진 교과서를 꾹 누르고 볕을 쬐어 그것이 모양을 찾을 때까지.
나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손을 번쩍 들어 쓰고 싶다. "저요! 이게 무슨 소린지 이제 알겠어요!"라고 외치듯 그 말들을 다시 해석해보려 한다. 마음을 무겁게 했던 말은 가볍게 흘려보내주고, 힘을 주었던 말은 고마웠다고 인사하며 다시 서랍 안에 넣는 일. 그 작업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