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그 시절에 하트를 보낸다
지혜였다. 술을 마신 삼촌이 행패를 부려서 우리 집으로 도망 와 문을 두드렸다. 다친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지혜가 말했다. "왜 사는지 모르겠어." 여태 이런 말은 책이나 티브이에서나 나오는 꾸며낸 대사에 불과했는데, 열다섯 살 지혜의 그 말은 너무 진짜라서, 무거워서, 내 귀로 들어와서 마음까지 내려와 깊은 데 처박히고 말았다.
어린 시절 작은 섬에서 살았다. 열한 살 때, 조금 더 큰 섬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지혜를 만나고 단짝이 되었다. 지혜의 아버지는 제주도 공장에서 일하시고 할머니랑 살았다. 둘이서 바닷가 모래밭을 쏘다녔다. 모래에서 뒹굴고 종이컵으로 모래를 퍼담아 하염없이 성을 쌓았다. 바닷가 솔밭 아래에서 마른 솔잎을 모아, 위험한 줄도 모르고 해변에서 불을 지펴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다. 주말마다 옷에는 탄내가 가득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피아노를 들려주면 지혜는 참을성 있게 들어줬다. 냉장고나 찬장에서 뭐든 꺼내 간식으로 먹었다. 티브이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다가 헤어졌다. 중학생 때는 각자 소중한 물건을 가져와 졸업한 초등학교 운동장에 삽을 가지고 가서 파묻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던 봄, 지혜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소식 한번 없던 삼촌이 갑자기 나타났다. 무직에 알코올 중독자인 그는 지혜와 할머니의 보호자 행세를 했다. 지혜가 말대꾸를 한다고 몇 시간이고 벌을 세우거나, 할머니 앞으로 나오는 돈을 탕진했다. 지혜의 교복이며 신발을 아궁이에 넣고 태워버려서 추리닝을 입고 학교에 온 날도 있다. 나는 그런 나날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지혜는 슬퍼하긴 해도 쉽게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지혜가 삼촌의 폭력이라는 노골적인 비극 속에 있었다면, 우리 집은 가려진 불안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엄마는 공무원이었다. 이전의 작은 섬에서 보다 교회는 커졌으나 사람들은 편을 갈라 싸웠다. 엄마의 벌이로 살림은 나아졌으나 부모님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반듯한 건물 안에 맴도는 불편한 기운 속에 자랐다.
지혜는 집에 있는 걸 심심해했다. 집에 있는 해리포터 전권을 빌려주었다. 걔는 그걸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책에 나오는 주문과 뜻을 외워서 에이포 용지 한가득 써냈다. 론이 기르던 쥐가 사실은 누구였더라, 스네이프가 사실은 그랬다더라, 우린 꽤 심각하게 해리포터에 빠져 살았다.
우리는 그랬다. 각자 처해있는 불편한 환경을 약속이라도 한 듯 꺼내지 않았다. 대신 해리포터나 동방신기 같은 막연하고 멀고 환상적인 것들로 서로를 연결했다. 지혜는 내가 소개한 해리포터에 빠져들었고, 나는 믹키유천이 가장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지혜가 좋아하는 최강창민을 결국 좋아하게 됐다.
스무 살이 되어 나는 광주로 대학을, 지혜는 경기도의 공장에 갔다. 그때는 입시 결과에 실패감이 매우 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다들 대학에 왔으니 놀라고 하는데, 뭘 하고 놀아야 할지도 몰랐다. 정말로 ‘왜 사는지 모르겠어’가 떠올라 소용돌이쳤다.
지혜가 나를 보러 내려온다고 했다. 수술을 한 눈매가 낯설었다. 룸소주방에 가자고 했다. 소주랑 오뎅탕을 먹고 취했다. 모르는 동갑 남자애들이랑 합석도 하고 노래방도 갔다. 기숙사 통금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모텔로 가자고 했다.
지혜가 제안하는 룸소주방이나 모텔은 내가 한 번도 발 디뎌보지 못한 낯선 땅의 이름들 같았다. 나는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였는데, 지혜는 이미 세상 한복판에서 생존의 기술을 익힌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해리포터나 동방신기처럼 우리 사이에 공유한 환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각자 딱딱한 현실에 서 있을 뿐이었다.
서투른 연애나 이별 같은 소식을 전하고, 공장 기숙사 생활이나, 대학교 생활에 대해 가끔 얘기 나눴다. 시간이 흐르면서 연락은 뜸해졌다.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시간은 종료되고 있었다. 어느 날엔 지혜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고, 홍시를 사 간다는 얘길 했다. 부드러워서 할머니가 잘 드신다고 했다. 몇 해 뒤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 나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제대로 된 위로를 하지 못했다. 그다음은 결혼 소식이었다. 몇 번이나 예비신랑의 얼굴을 뜯어보며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지혜를 다시 만난 건 인스타그램에서였다. 딸이 있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얼굴이 선명하게 비치는 여자아이가 반가웠다. 어느 휴양지로의 여행, 자신 있게 미소 짓는 셀카, 단란한 가족사진, 예쁜 케이크와 풍선으로 정성껏 꾸민 딸의 생일상. 그녀가 행복을 자랑하는 모든 게시물에 하트를 눌렀다. 정말 잘 사고 있구나. 인생이 잘 주지 않는 그런 기분 좋은 만족감이 차올랐다. 지혜랑 나는 가끔 서로 게시물에 하트를 누른다.
덤블도어 교수와 볼드모트가 죽고, 해리는 지니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이천 년대 말 전국의 여자애들을 열광시킨 동방신기는 둘셋으로 갈라져 해체됐다. 그 교회의 사택이나 동네 골목 맨 끝 집에는 이제 누가 사는지 모른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종료됐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길을 따라, 뿌리내릴 자리를 찾아 열심히 떠나갔다.
열일곱에 집을 떠난 우리는 이제 서른넷이 되어 자기 집에 산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버둥거렸으나 사랑받고 사랑하는 걸 배우고 겨우 단단해지며 통과했다. 지혜야 넌 어땠니, 하고 묻고 싶다. 도장처럼 확실하게 꾹꾹 행복을 찍어둔 사진을 보며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감히 가늠해 본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와 내 마음속에 처박혔던 ‘왜 사는지 모르겠어’를 슬쩍 쥐어봤다. 파스스 낡아 부스러진다. 대신 꽉 쥐어본 빈 손엔 앞으로 헤엄쳐 나갈 힘이 느껴진다. 지혜도 그런 힘으로 딸아이의 사진을 꾹꾹 찍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멀리서 잔잔한 응원을 오래도록 보낼 생각이다. 오늘도 그녀의 딸의 사진에 하트를 하나 눌러 전송했다. 더불어 나의 어린 시절에도, 한 번도 보내보지 못한 하트를 보낸다. 지혜와 해변을 뒹굴고, 집을 좋아하고 괴로워하고, 교회를 좋아하고 미워하고, 바다를 좋아하고 지겨워했던 나에게 커다란 하트를 그려주고 싶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돌아보게 된다. 그립진 않지만 가끔 떠오른다. 그 시절이.
정말이지, 그런 때가 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