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페이지를 쓴 지 한 달이 넘었다.
모닝 페이지를 쓴 지 한 달이 넘었다. 만화가 천계영 님의 트윗이 시작이었다. 여태 마인드맵을 최고의 창작 도구라고 생각해왔는데, 모닝 페이지라는 걸 꼭 해보고 싶으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의 만화는 항상 빛이 났다. 나도 조금은 찬란한 이야기를 가지고 싶었다. 방법도 간단했다. 준비물도 필기구 하나와 종이 뿐이다. 다음 날 아침부터 거의 매일 썼다.
모닝 페이지란 아침마다 종이 3장에 머릿 속에 떠오르는 대로 무언가를 적는 것이다. 다 쓰면 4-50분 정도가 걸린다. 졸리면 졸리다고, 짜증 나면 짜증 난다고. 어제 기분 나빴던 일도, 글을 쓰는 순간에 문득 드는 기분도 다 적는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거창하지 않아야 한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창조성에 관한 책에서 제안한 방식이지만 꼭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검열도 하지 않을 것, 그리고 다시 읽지 않을 것. 이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된다. 노트북으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손으로 쓰는 게 좋다.
그중에서도 나는 연필로 쓴다. 바짝 뾰족하게 깎아둔 연필이 사각이며 닳는다. 날카롭던 글씨가 서서히 뭉툭해지고, 세 번째 장에서는 넓적해진다. 손이 아파 점점 글자를 휘갈기고 모양이 휘청거려 알아보기가 어렵다. 사나웠던 감정은 누그러지고, 오늘 해결할 중요한 일도 어떻게든 되겠지 심정이 된다. 그렇게 모든 종이를 다 써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온다. 뭉툭해진 연필을 연필깎이로 벅벅 벼르는 시간. 이 쾌감을 위해 쓰는 도중 연필을 깎고 싶은 충동을 참아낸다. 잉크병 모양의 갈색 반투명 연필깎이를 왼손에 비장하게 쥐고 사정없이 연필을 돌린다. 써걱- 싹- 썩- 썩. 육각이 동그라미가 되어 조용해지는 순간. 연필을 꺼내면 짜잔! 다시 개운하게 흑심이 뾰족하다. 며칠이 지나면 어느새 연필이 짧아져있다.
거의 매일 ‘이렇게 쓸 말이 없다니, 아직 2장밖에 못 썼다고? 언제 끝나는 거야’ 타령하는 문장을 적는다. 첫 주는 모닝페이지를 쓰고 싶어서 빨리 일어나고 싶었지만, 다음 주에는 바로 조금 시들해졌다. 손도 아프고 지루했다. 잔뜩 욕이 적힌 날도 있다. 정말 가까운 사람을 욕한 적도 있다. 말이나 글은 커녕 한 번도 머리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마음이었다. 이런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적고 적고 또 적다 보면 어느 순간 처음 보는 내 것이 불쑥 나오는 날이 있다. 생각지 못한 것을 배우고 싶다거나, 갑자기 쓰고 싶은 글이 생긴다거나,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거나. 그럼 모든 것들을 헤치고 진짜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원하던 게 이거였다니?
유용함을 하나 더 찾았는데, 바로 여행을 할 때다. 아침에 일어나 현지인처럼 가벼운 옷차림에 노트와 연필을 챙겨 동네 카페에 간다. 커피와 갓 구운 빵을 두고 모닝 페이지를 적는다. 때로는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는 4-50분이 적당하게 다가온다. 여행을 하면 오래 머물며 그림을 그리거나, 수첩에 무언가를 끼적이는 사람들이 멋졌다. 예술가적인 면모를 뽐내는 그들을 늘 부러워했다. 얼추 그런 흉내를 낼 수 있다. 사실 예술가도 아닌 예술가적 면모이니 그들과 내가 다를 바도 없다. 외국에서는 묘하게 그들이 모르는 언어로 생각을 끝없이 쏟아낸다는 희열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카페에서 멍을 때리면서 머물러봐도 20분을 넘기기 힘들고, 시간을 죽이려다 보면 어느새 손은 핸드폰을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노트북은 무게부터 너무 본격적인 느낌이라 부담스럽다. 이제는 여행지에 도착한 날, 예쁜 노트를 한 권을 사서 아침마다 적고 또 적는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늘 굿모닝은 아니지만, 대부분 굿모닝이다.
집에 뒹구는 연필이 아주 많다. 얼른 이 연필을 다 써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