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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리 May 18. 2019

진혼가 by 김남주

5.18 민주화 운동


39년전 광주에선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날이다.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지만

광주에서 태어나 인생의 반을 살았던 내 고향에서의 일.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의 어린시절의 기억은,

조선대학교의 깨진 적이 많았던 창문.

집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일주일에 몇번이고 최루탄 냄새로 눈물과 콧물을 흘렸던 일.

나에겐 흔했던 최루탄 냄새와 고통이었던 일들이 동시대의 내 또래 누군가는 경험한 적 없는 일이라는 걸 나중에 커서 알고 놀랐었다.


중.고등학교 때 광주 시내인 충장로에 놀러를 나가면 이맘때쯤이면 잔혹하게 군인들에게 맞거나 죽어 널부러져 있는 처참한 사진들을 펼쳐놓고 5.18에 대해 외치는 길거리의 풍경.


그리고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풍경.

부끄럽다.


#광주의 오월

#39주년 5.18 민주화 운동




진혼가 by 김남주


1
총구가 내 머리숲을 헤치는 순간
나의 신념은 혀가 되었다
허공에서 허공에서 헐떡거렸다
똥개가 되라면 기꺼이 똥개가 되어
당신의 똥구멍이라도 싹싹 핥아주겠노라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의 싸움은 허리가 되었다
당신의 배꼽에서 구부러졌다
노예가 되라면 기꺼이 노예가 되겠노라
당신의 발밑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신념 나의 싸움은 미궁이 되어
심연으로 떨어졌다
삽살개가 되라면 기꺼이 삽살개가 되어
당신의 발가락이라도 핥아주겠노라
더 이상 나의 육신을 학대 말라고
하찮은 것이지만
육신은 유일한 나의 확실성이라고
나는 혓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나는 손발을 비볐다
 
2
나는 지금 쓰고 있다
벽에 갇혀 쓰고 있다
여러 골이 쑥밭이 된 것도
여러 집이 발칵 뒤집힌것도
서투른 나의 싸움 탓이라고
사랑했다는 탓으로
애인이 불렸다는 것도
숨겨줬다는 탓으로 친구가 직장을 잃은 것도
어설픈 나의 신념 탓이라고
모두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나는 지금 쓰고 있다
주먹밥 위에
주먹밥에 떨어지는 눈물 위에
환기통 위에 뺑끼통 위에
식구통 위에 감시통 위에
마룻바닥에 벽에 천정에 쓰고 있다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쓰고 있다
발가락이 닳아지도록 쓰고 있다
혓바닥이 쓰라리도록 쓰고 있다
 
공포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가장 좋은 무기이다라고
 
3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신념 서투른 나의 싸움은 참기로 했다
신념이 피를 닮고
싸움이 불을 닮고
자유가 피 같은 불 같은 꽃을 닮고 있다는 것을 알 때까지는
온몸으로 온몸으로 죽음을 포옹할 수 있을 때까지는
칼자루를 잡는 행복으로 자유를 잡을 수 있을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어설픈 나의 신념
서투른 나의 싸움
신념아 싸움아 너는 참아라
 
신념이 바위의 얼굴을
닮을 때까지는
싸움이 철의 무기로 달구어질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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