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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Mar 31. 2017

나의 멘토, 칼 세이건


<에필로그>

<에덴의 용>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코스모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앤 드루얀 공저 

<창백한 푸른 점> 

<지구의 속삭임> 

<혜성> 앤 드루얀 공저





  나는 멘토 멘티라는 시스템의 실효성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 어감이 전달하는 묘한 매력에 비해 실제 실효성에는 큰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나의 경험에 축적된 멘토 멘티의 사례들을 돌아봤을 때, 대부분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연인과 친구 같은 일상적인 관계를 그 기반으로 삼고 있었고, 둘 사이에 오갔던 고민과 해답들 역시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대체 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멘토가 되어 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할까. 반대로 우리는 왜 누군가의 멘티가 되어 정해진 대답이 없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어 할까. 살면서 누군가의 사소한 질문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아는 한도 내에서 대답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정말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 조차도 누군가의 의견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착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 일 역시 있을 것이다. 이들의 이런 행동들은 단지 일상 속 오지랖과 우유부단함의 발로인 것일까. 아니면 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홀로 살아가는데 익숙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멘토 멘티의 관계에 불신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살면서 멘토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이 몇 존재한다. 그중에 한 명이 바로 천문학자 칼 에드워드 세이건 Carl Edward Sagan이다. 그렇다면 칼 세이건은 대체 어떻게 해서 상상으로 밤하늘의 별 너머를 그리던 어린 소년의 마음속 스승으로 남게 되었을까. 칼 세이건과의 첫 만남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던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평생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은하계만도 4천억 개의 별이 있다는 거 알아요?

그 백만 개의 하나 꼴로 행성이 있고,

그 백만 개의 하나 꼴로 생명체가 있고, 

그 백만 개의 하나 꼴로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수백만 개의 문명이 우주 속에 있을 수 있어요.

만약에 우주에 단지 우리뿐이라면 그건 엄청난 공간의 낭비겠죠.



ㅡ엘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영화「콘택트」 




1. 콘택트 Contact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영화광이었다. 정확히는 비디오 광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거주하던 아파트 단지 내의 복합상가에는 한 편의 비디오를 2박 3일의 기한으로 1000원에 대여해주는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인기작이나 최신작은 1박 2일에 1500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그 멋진 장소에 가서 보고 싶은 비디오를 빌리고, 발매 예정작이나 추천작이 적힌 안내 책자를 읽는 것이 11살 소년의 유일한 낙이었다. 영화를 어찌나 좋아했던지 온종일 머릿속은 빌려 놓은 비디오를 볼 생각으로 가득했고, 좀 더 나이가 들어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으려면 창의적인 발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남들과는 다른 시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기 전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항상 영화감독이었다. 어느 시점엔가 과거 할리우드의 주력 소재였던 서부극이 몰락했던 일처럼 90년대는 SF의 황혼기였다. 스타워즈 재개봉 열풍에 스타워즈 붐 세대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손을 잡고 극장으로 와 저마다의 추억을 찾았다. 팀 버튼은 기어코 자신의 삐뚤어진 야심과 재능을 <화성침공>에 녹여냈다. <12 몽키즈>는 당시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훌륭하게 영화 속에 이식했고, <가타카>는 단 한순간도 냉소 주의자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 제임스 카메론이 복원한 타이타닉호 위에서 펼쳐지는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의 사랑 이야기는 세계 영화시장을 집어삼켜버렸다. 그리고 비디오 대여점 사장님의 추천으로 내 손에 들려있던 비디오 <콘택트>는 타이타닉호가 들이 받았던 빙산처럼 마음속 잊을 수 없는 여진을 내 삶에 남겼다.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적 생명체가 본인들의 위치에서 외계를 향해 신호를 보낸다고 가정했을 때, 그 수단은 반드시 '전파'가 될 것이다. 그들이 물 같은 액체 위를 자유자재로 걸을 수 있고, 철과 구리 같은 금속을 주요 식량 삼아 아삭한 야채처럼 씹어 먹고, 메탄과 암모니아를 호흡기로 들이마셔야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생명체라 하더래도, 우리 태양계로 신호를 보내기 위해선 전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정 하에 외계에 있는 지적 생명체를 탐사하기 위해 시작된 SETI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칼 세이건이 펴낸 콘택트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포레스트 검프>를 연출한 로버트 저메키스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이 영화는 내포된 과학적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 그 자체로도 즐기기 충분한 오락영화이자 가족영화이다. 세이건의 원작 자체가 어렵고 복잡한 과학적 개념은 최대한 배제한 채 일반 SF 소설들처럼 쓰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150분이 흐른 후 마지막 쇼트에 적힌 FOR CARL이라는 문구를 보고 원작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때로부터 기산하여, 내가 콘택트를 소설로 접하기까지는 3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세이건 필생의 역작 <코스모스>를 마주하기까지는 10년 남짓의 세월이 걸렸다. 



그렇게 영화 콘택트로부터 시작된 세이건과의 인연은 자연스레 그가 남긴 서적들로 이어졌다. 최상단 사진 속의 책들 외에도 10여권의 세이건의 저작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우혁(퇴마록)과 이영도(드래곤 라자) 이래로 한 명의 작가 서적을 이렇게 많이 갖게 된 건 처음이었다. 그중 <코스모스>는 한 해가 시작되거나 한 해가 끝날 무렵 다시금 무언가 다짐하기 위해 찾게 되는 인생의 책이 되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에덴의 용>은 뇌과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뇌라는 주제를 심도 있으면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포장했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은 신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인 대답이라 할 수 있다. 찰스 다윈의 고뇌가 시작되었던 빅토리아 시대 이래 현재까지 이어지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공방에서, 당신이 진화론과 <종의 기원>의 입장이고 창조론과 <창세기>에 대한 공격적인 논거를 마련하고 싶다면, 이 책은 정말 유용할 것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역사 서적이다. 다만 그 역사는 우리가 흔하게 인식하는 구석기부터의 역사가 아닌, 40억 년 지구의 역사와 생명과 의식의 광막한 시간적 흐름을 다루고 있다. 이런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업적은 필경 어떤 식으로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은 태양계라는 생태계를 다루고 있음과 동시에 인류의 우주와 행성 탐험에 대한 보고이다. 지구와 인류에 대한 무지막지한 격하와 자애스러운 존중이 함께 담겨 있다. <지구의 속삭임>에서는 리더 세이건을 필두로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의 팀이 뭉쳤다. 보이저호에 실려있는 골든 레코드의 창조적인 제작 과정과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수록되어 있다. <혜성>은 표제 그대로 혜성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혜성'은 항상 우리에게 불쑥 다가왔다가 금새 다시 달아나 버리지만, 결국 인류의 기원과 비밀을 풀기 위해 우리 스스로 다가가야 할 존재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에필로그>는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유언이다. 세이건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조차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우리가 별안간 맞닥뜨릴 수 있는 위협과 문제들을 제시한다. 그가 별의 세계로 떠난지 2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던진 화두들은 여전히 과거완료형이라기 보다 현재진행형인 거처럼 느껴진다.






지구 도처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끝없는 바다를 정복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지구의 모습은 바깥세상의 천체들에 비해서 더욱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제왕과 왕자 들은 반성할지어다. 

그대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래서 어쩌면 불쌍해 보이기조차 하는

보잘것없는 한구석의 주인이 되고자 그렇게도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만 하는가?



ㅡ크리스티안 하위 언스, 「천상계의 발견」, 1690년경 





 2. 걱정의 우선순위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대부분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계없이 최소 하나의 장(章)을 할애하여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데 힘썼다. 어떤 책(에필로그)은 오로지 이 주제만을 다루기도 했다. 세이건은 만약 미래를 향한 걱정에도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면, 자신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크게 세 가지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첫째, 핵무기가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것. 둘째, 환경보존이 인류의 우선 과제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것. 셋째, 인권의 보편적 확장에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혹을 제기하는 것. 언뜻 보기에 이런 주제들은 해당 분야의 저명한 학자나 평소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던 이들이 아니더래도, 일반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충분히 거론될 수 있는 주제처럼 보인다. 요는 현재가 아닌 미래에 있다. 1970년대에 세이건은 지구 온난화와 그 밖의 기후변화 그리고 염화불산화탄소(프레온가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거의 최초의 과학자였다. 염화불산화탄소는 90년대에 이르러 전 세계적으로 전폐할 것을 합의하기에 이르렀고, 지구 온난화와 기후 문제는 현재까지도 인류가 헤쳐나가야 할 하나의 지상과제로써 남아있다. 앞의 세 가지 주제와 관련해서 세이건의 선견지명은 또 한 번 (불운하게도)빛을 발하는 거처럼 보인다. 



세계적인 합의를 거치지 않은 핵무기 보유국(북한과 김정은)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그 용례마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환경보존의 그래프 선의 증가폭은 조만간 환경파괴의 그래프 선의 증가폭에 따라잡힐는지 모른다. 세계적으로 인권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여성차별 문제와 성 소수자 차별 문제는 얼마 전 국내에도 큰 화두로 자리 잡았다. 사석이나 넷상 등 어떤 공간에서든지 간에 누군가와의 대화 중에 이런 주제들을 거론할 때면 항상 비슷한 방식으로 대화가 중단된다. "우리는 한 명의 힘없는 인간이고 일개 시민일 뿐인데 우리가 뭘 바꿀 수 있겠어.", "세계적인 강대국들도 규제하지 못 했던 걸 우리가 논의해서 뭐 해.", "여성이나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해 논하기 전에 그 사람들 태도부터 따져봐야 하는 거 아냐." 이런 주장들을 마주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이런 헛웃음은 상대방의 냉소적인 태도나 근시안적인 시야에 대한 조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나의 헛웃음은, 사람들의 저런 반응마저 예상했던 세이건의 선견지명에 대한 경탄에서 기원한 것이고, 그것이 세이건의 전언으로부터 2-30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 정확히 구현되고 있다는 당혹감에서 발현된 것이다. 세이건의 우선순위 최상단에는 핵전쟁의 위협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위치했을지도 모른다. 냉소 주의자와 회의론자들은 일관성이 없다. 



단 한 사람의 생각과 사상의 파급력, 단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인식되는 묘한 변화, 단 한 사람의 투표가 바꿀 수 있는 미래의 크기, 이런 것들을 믿지 않고 경시하면서 대체 어떻게 연인과의 운명적인 사랑을 믿고, TV 육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인생의 황혼기에도 뒤를 돌아보며 웃음 지을 수 있는 광명한 미래를 그린다는 것인가. 적어도 내게는 어불성설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세이건은 그 무엇보다 개인의 관심이 최우선임을 천명했다. 필연적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게 될 문제와 위협들에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 심각성을 몸소 깨닫게 될 때,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견해와 논리를 갖추어 나갈 때, 또 그것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해당 문제들에 관심을 유도했을 때, 이런 과정들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걱정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자 전에 없던 발전적인 사상의 도화수(桃花水)가 될 거라고, 세이건은 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걱정의 우선순위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오늘 하루의 삶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한 달을, 어떤 이들은 한 해를, 또 어떤 이들은 유구한 세월이나 우리의 생이 다한 뒤의 세계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이들 모두 하나의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세이건이 말했듯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한 영향력과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됐을 때의 심적 파급력 등은 결코 무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어쩌면 세이건은 바로 이 점을 깨닫는 것이 논의의 시작점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모래알의 수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모래알의 개수만큼 엄청난 숫자를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 이제 나는 몇 개의 숫자를 만들 것이다.

모래알이 지구를 가득 채운 것보다 클뿐 아니라, 우주를 가득 채운 것보다 더 큰 숫자들을……



ㅡ아르키메데스(기원전 287-212),「모래알을 세는 자」





또 하나의 방랑자 샘(칼 세이건의 아들)에게,

너희 세대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경이를 볼 것이다.



ㅡ칼 세이건,「창백한 푸른 점」 





3. The Life of Cosmos



  칼 세이건은 한 명의 과학자로서 또 저술가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와 권위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세이건은 미국 아이비리그에 속해 있는 코넬 대학교의 천문학 및 우주과학 교수였다. 그의 유명한 제자로는 미국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와, 그와 같은 천문학자이면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코스모스 리메이크판의 해설을 맡았다.)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세이건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풍부한 지성과 그런 지성에 걸맞은 격의 없음을 교육자로서 세이건이 가지는 최고의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평생 지구 밖으로 나간 일이 없지만 그의 시선만큼은 항상 우리 은하계 너머로 고정되어 있었다. NASA에서 우주를 향한 탐사 계획이 시작될 무렵부터 요직을 맡아 탐사 방향을 결정하고 후임 담당자들을 교육했다. 태양계 탐사선인 마리너호, 화성 탐사선인 바이킹호, 목성 탐사선인 갈릴레오호, 아직도 태양계 저 너머를 유랑하고 있을 보이저호 등은 모두 그의 손길을 거쳤다. 그중 보이저 호와 골든 레코드의 제작 과정은 <지구의 속삭임>이라는 책으로 발표되었다. 수많은 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훈장과 표창,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소행성 하나에는 그의 이름이 붙기도 했다. 또 그는 우주 관련 단체 중에서 가장 큰 조직인 행성 협회의 공동 설립자이자 의장이었고, 많은 우주 영화의 배경무대가 되었던 제트추진연구소의 특별 초빙연구원이기도 했다. 오늘날 행성과학 분야에 전념하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의 제자이거나 동료들이고 또는 그의 영향을 받아 꿈을 키운 사람들이다. 



세이건의 대표 서적들로는, 영어로 발간된 과학 서적들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코스모스>가 있다. 이 책을 기초로 제작한 TV 시리즈 코스모스는 전 세계에서 5억 명의 인구가 시청했으며 이는 세계 인구 3%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코스모스는 여전히 세계 어디에서나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책이고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는 저마다의 공들인 코스모스 리뷰가 매일같이 올라오고 있다. 명실공히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과학 서적 중 한 권이다. 뇌과학이라는 주제를 다룬 <에덴의 용>으로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뇌과학이 본인의 연구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뇌과학 분야의 권위자에 필적할 식견과 뇌과학의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은 여지없이 감탄을 자아낸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우주를 향한 꿈을 심어 주었던 코스모스와 퓰리처상의 영광을 안겨 준 에덴의 용에도 불구하고, 세이건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통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세이건의 영적 동반자이자 이 책의 공저자였던 앤 드루얀의 소개처럼 이 책은 <창세기>의 과학전 버전인 듯 느껴진다. 지상의 모든 생물들이 친척이거나 조상 격인 하나의 세포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는,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과학의 진화가 주는 핵심적인 생물학적 통찰이다. 이 책은 종교적인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려 한 듯 보이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 '영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이건의 유일한 소설 작품으로는 <콘택트>가 있다. 평생을 외계 지적 생명 탐사에 받쳤던 자신의 삶과 경험이 고스란히 책 속에 녹아들어 있고, 과학을 주제로 한 책 임에도 불구하고 온갖 시적 은유와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사색으로 가득한 멋진 작품이다. 



이와 같은 화려한 약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칼 세이건의 최고 업적으로 꼽는 것은, 바로 과학의 대중화이다. 그는 이 세상 여느 과학자 못지않게 과학의 실용성을 강조했고 과학적 사고의 중요성과 그로 인해 도달할 수 있는 깊이를 대중들에게 체감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일정 부분 성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의 테두리를 넓혀 주었으며 어렵고 복잡한 과학적 개념을 알기 쉽게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바쳤다. 이런 칼 세이건의 노고를 바라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에서의 천문학과 물리학의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한때, 수많은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문학과 물리학은 이제 의대와 기계공학, 전자공학, 화학공학 등의 학문에 그 자리를 내주었고, 수년간 지속되어온 공무원 열풍에 다시 한 번 움츠러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넓은 세계를 너무 어려운 개념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의 순수한 꿈과 호기심을 지리멸렬한 싫증과 회한으로 뒤바꿔 버리고 있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 아닐까, 이런 부끄러운 생각들이 들었다. 얼마 전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재치 넘치는 강연으로 역사 붐이 일어난 일을 보았다. 사람들은 서로가 가진 각종 역사 지식을 뽐내고 의견을 교환하기 바빴으며,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는 각 시대의 역사서적들로 즐비했다. 이런 추동은 단지 한두 명의 선생님의 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하는 쪽은 수용하는 학생들이 아니라 가르치는 선생들이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이나 정립이 아닌 제2의 칼 세이건이 아닐까. 나의 입장에서는 부동이었던 멘토 멘티에 대한 관념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칼 세이건은 수많은 동료 과학자들에게 영감과 동기부여를 준 인물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을 한 명 꼽는다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도킨스는 세이건과 함께 무신론과 불가지론을 핵심 주장으로 삼았던 인물임과 동시에 신다윈주의의 상징 같은 인물이었다. 이에 관한 한 도킨스는 세상 그 누구보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연구(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를 펼쳤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저술가로서 도킨스보다 세이건을 높게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문체이다. 세이건의 문체가 지성과 낭만의 효율적인 조화라면 도킨스의 그것은 너무 날카롭고 명쾌하다. 물론 두 인물 모두 최고의 과학 저술가임에는 틀림없다. 앞의 내용이 무색하게도, 세이건은 많은 동료 과학자들에게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했다. 비판의 요지는 대강 이러하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너무나 맹신했던 덕분에 순수 물리학의 관점에서 빚어질 수 있는 과장과 오류를 유발하고 있다. 야심과 과시욕의 충족을 위해 과학을 도구로써 이용한다. 동료 과학자들이 힘들게 일궈 온 이론들을 별거 아닌 거처럼 보이게 만든다 등의 이유들이 그것들이다. 기묘사화를 통해 조광조를 처형하려던 훈구파가 중종에게 올린 상소문에 적혀 있던 숱한 사유들 중에, 조광조가 자신들의 위훈을 삭제하려 했던 시도가 기묘사화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거처럼, 많은 동료 과학자들이 세이건을 비판했던 직접적인 이유 역시 세이건이 자신들의 이론의 가치를 격하시켰던(대개 그러하듯이 일방적인 주장 외에 명확하게 밝혀진 사실관계는 없다.) 일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세이건은 조니 카슨의 토크쇼였던 <투나잇 쇼>에 출연해 조니에게 이런 동료들의 날선 비판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이에 세이건은 위트 넘치고 멋진 대답으로 응수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고

그 참된 가치를 깨달아 그것을 숭배하는 세상이 가치 있을까요? 

아니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한 원대한 꿈과 호기심을 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세상이 가치 있을까요? 

저는 강력하게 후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앞으로의 남은 여생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그렇게 칼 세이건은 열 살 소년의, 스무 살 청년의, 서른 살 애어른의 멘토가 되었다.  







칼. 

우주의 비밀은 얼마나 풀었습니까. 

퀘이사의 근원은 밝혀낸 건가요.

광활한 우주 안에 우리 인류의 다음 고향이 있던가요.

그곳에서 보는 우리 은하수 은하의 경관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별이 지고 수많은 별이 태어나는 코스모스 안에서 안주하며 머무를 곳은 찾았습니까.

오직 전파만이 신호를 보낼 수단이라는 걸 당신이라면 모를 리가 없겠지요. 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위에서. 

당신이 들려줄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허블의 눈길조차 닿지 않는 곳을 탐험한 형형색색의 모험담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FOR CARL





  출판사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사이언스북스를 비롯 여러 출판사에서 산발적으로 출간된 책들과 미출간된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판형, 새로운 디자인, 새로운 가격으로 출간하는 일대의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천문학자, 과학 저술가, 과학 번역가 들의 자문과 번역으로 번역을 다듬고, 세이건 서거 이후 20년간 변화된 과학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보강한 다음, 전문적인 편집 역량을 바탕으로 가독성을 강화해 출간함으로써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쉽게, 좀 더 값싸게 칼 세이건의 사상과 과학이 가진 비전을 맛볼 수 있게 할 예정이라니 여러모로 기쁜 소식이긴 하지만, 기존 칼 세이건의 저작들을 보유 중인 독자들로서는 왠지 모르게 분한 소식이기도 하다. 현재 기획되어 있는 서적들은 총 12종이며, 그간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발간된 서적 외에『브로카의 뇌』,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우주적 연결』이 추가될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 브로카의 뇌를 시작으로 연달아 출간 예정이라고 하니 칼 세이건의 팬들이나 과학 서적의 애독자들은 필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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