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청야학 교사 면접 이야기
"자식에 흉 될까 고졸인 척했어"
아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환경조사표에 혹여나 흉이 될까 싶어, 몇십 년 동안 고졸인 척을 했다는 한 어머니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결심을 미룰 이유가 없었다.
군 생활 20년을 마무리하는 한 해를 보내고,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서막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 부여가 필요했다.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하며 소중한 분들과 인연이 닿았고 그중 한 분의 소개로 '태청야학'을 알게 되었다.
지금 세계 각국의 나라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자국에 사용하니
자주의 의리가
그 안에 들어있지 않음이 없습니다.
이에 타국의 각종 문학을
모두 자국의 문자로 번역 출판하여
자국의 백성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주의 백성이
문자를 알고 시국에 통달하여
무럭무럭 날마다
문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통상 후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어물어물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문에만 매달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국문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1905년 지석영 선생이 고종에게 올린 상소' 중에서 -
창밖 낙엽을 바라보던 11월의 어느 날.
태청야학 교사의 이 낭독을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며 깊숙한 곳에서 설움 같은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분명 나를 그곳으로 이끌기에 충분한 목소리였다.
우리 엄마도, 그리고 장모님도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 시절은 여자가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딸자식 가르치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아들 하나 가르치기에도 버거운 나라 사정이었기에 그렇다.
그렇게 나는 태청야학 교사 면접을 다녀왔다. 면접을 보러 간 주제에 8년째 야학 교사로 봉사 중인 면접관(선생님)께 오히려 되물었다. 야학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것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과연 무엇이냐고.
"처음엔 정보의 비대칭, 즉 (글자를 모름으로써 발생하는) 지식 습득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은 학생(어르신)들에게 제가 배우는 지혜가 훨씬 큽니다."
내가 생각했던 야학 봉사의 본질과 정확히 일치했다. 내 눈빛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렸다.
지금의 잘 사는 대한민국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한 분들이 바로 여기에 오시는 어머님들이다.
1970~80년까지 야학은 정규 교육을 대신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학을 했지만 급격한 노령화와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곳이 늘었다.
운영을 이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열악한 재정 여건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으로부터 일부 운영 예산 지원을 받지만 연간 임대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라 대부분의 운영비는 교사들과 외부 후원금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귀한 시간을 내서 봉사를 하는데, 내 돈까지 내가면서 야학을 이어가려는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8년째 야학 봉사를 하고 계신 교무부장님은 인근 안암동 소재의 학교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솔직히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어머님들과 대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돈이면 거의 다 되는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자본주의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펼쳐지고 있다.
자신들의 행복은 묻어 두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그 시대 산업화의 역군들이 있었기에 분명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시대를 초월해 서로를 보듬어가며 더욱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간다.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20여 년 전 숨진 아들이 쓴 편지를 읽고 싶어 야학에 등록한 어머님.
그 아들은 입대하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어머님은 드디어 '글을 배워 아들의 편지를 소리 내 읽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라는 사연. 편지를 읽어 내려가며 얼마나 가슴이 복받쳤을까.
야학 봉사를 할 수 있는 천운이 만약 나에게 주어진다면,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어루만져드리리라.
"어머님, 지금까지 살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최선을 다해 보답해 드릴게요."
야학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고, 교사들이 늦깎이 학생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